사랑의 다섯가지 언어
나랏말쌈이 서로 사맞디 아니할세
“여보야, 나 어디가 좋아?”
“다 좋지. 그걸 뭘 매번 그렇게 물어?”
“그러니까 다 뭐~~? 구체적으로 세 개만 얘기해봐~”
“다 좋아. 다.”
이럴 때 참 재미없다 싶다. 이남자.
괜찮다. 이런다고 질 내가 아니다. 나에게는 또 다른 남자가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미래의 남의 남자에게 물었다.
“아들, 아들은 엄마 어디가 좋아? 세 가지만 말해봐.”
“상체”
빵 터진다.
“또?”
“하체”
여지 없이 터진다.
“그 다음엔?”
“다~”
향후 10년이면 남의 남자가 될테지만(현재 초5) 아직까지는 내 스타일의 내 남자다. 참으로 사랑스럽다.
결론적으로 보면 남편과 아들은 둘 다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다 좋다는. 하지만 여자에게는 천지 차이,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로 들린다. 사실 이건 뭐 내가 머리, 가슴, 배로 나뉘는 곤충도 아니고 상체, 하체라니 좀 어의가 없기도 하지만 아이는 그만큼 내가 다 좋다는 표현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풀어서 하는 거다. 그렇다. 맥락이 다르고 디테일이 다르다. 사랑을 나눌 때도 남자들은 한 가지 목표만을 상정하고 달려든다고 하지만, 여자는 다르다. 전희와 후희가 본론만큼 혹은 본론보다 중요하다.(40금)
근래에 ‘사랑의 5가지 언어’ 라는 책에 대해 보다 자세히 배울 기회가 있었다. 교회 자매님들이 모여 세미나까지는 아니고 간단한 활동모임을 하였더랬다. 그 주제가 바로 <사랑의 5가지 언어>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나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인지 알아보는 것이었다.
사랑에는 5가지 언어가 있는데, 사람마다 주로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고 한다. 그 5가지는 바로, 함께 하는 시간, 봉사, 스킨십, 인정하는 말, 선물이다. 체크리스트로 나의 사랑의 언어를 체크해보기 전에 스스로에 대해 가볍게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음. 나는 함께 하는 시간이 중요해, 그리고 인정하는 말도 중요하지, 스킨쉽도 나름 중요한데.. 아 5가지가 나름 다 중요한 것 같아... 선택 장애는 이럴 때도 해당되는 것인가...아...’
그런데 막상 체크리스트를 해 보자 결과는 내 생각과는 조금 다르게 나왔다. 문항은 보기의 두 가지 항목 중 내가 더 선호하는 언어의 방식을 골라내는 방식이었다. 말하자면 이상형 월드컵처럼 아무리 현빈과 권상우가 둘 다 잘생겼어도 한명은 반드시 떨어뜨려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30개의 문항이 있었다.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비슷한 문항을 여러 번 넣는 주도면밀함까지 있는 나름 과학적인 문항도구였다.
검사 결과 나의 사랑의 제 1언어는 ‘봉사’였다. 나는 남편이 내 옆에 아무것도 안 하고 있기만 하는 것보다(함께하는 시간) 종아리를 주물러 주는 편(봉사)이 훨씬 좋다. 그저 시간만 같이 보내는 것보다, 나름대로 할 일이 많고 바쁜 나를 위해 매일의 설거지를 해 주는 것에 남편이 나를 사랑한다고 느낀다. 퉁퉁 불어터진 짜파게티라 할지라도 토요일 점심엔 누군가가 만들어준 간편식을 먹으며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나인 것이다. (결혼한 여자는 남이 해주는 음식이 제일 맛있다는 만고의 진리)
체크리스트로 친정 엄마의 사랑의 언어도 알아보았다. 엄마의 제1언어는 놀랍게도 선물이었다. 나에게는 선물이 사랑의 언어로서는 제일 꼴찌다. 단 한 항목도 선물이 더 좋다는 답변이 없었다. 리 단위까지 들어가야 하는 시골에 사는 엄마는, 게다가 온라인 쇼핑 같은 건 결제할 줄도 모르는 엄마는 손에 자극이 없는 부드러운 주방 세제부터 싱싱한 제철 과일에 이르기까지 누군가가 무언가를 사 줄 때, 그 사람의 사랑을 느끼는 것이었다. 방물 장사도 아닌 나에게 이것저것 사달라고 부탁하시는 엄마가 간혹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이 체크리스트를 해 보며 엄마를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사랑의 언어도 달라짐을 우리는 그날 활동을 하면서 느꼈다. 개인차도 물론 있겠지만 연령대마다 조금 다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20대 때에는 나도 선물이 좋았고 그저 함께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를 돌보아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느껴서인지 봉사가 제일로 좋다. 내가 나이가 더 들면 엄마처럼 선물이 제일 좋아지려나. 두 번째로 스킨십을 사랑의 언어로 꼽은 엄마를 보며 우리 집에 머무시는 동안 좀 더 자주, 아니 매일 하루에 한 번 씩 안아드려야겠다 다짐해 본다.
인정하는 말과 스킨십이 좋다는 남편에게는 그가 원하는 방식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노력을 좀 더 기울여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역시 여보야!”
“아니 왜~~여보는 왜 모르는 게 없어?”
남편이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은 과장된 표정까지 더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여보도 앞으로는 조금만 더 노력해 줄래? 왜냐면 내 사랑의 두 번째 언어가 ‘인정하는 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