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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러브 Nov 14. 2023

시간 여행자가 훔쳐본 미래 일기

5년 후의 내 모습, 로망이 현실이 되기까지

‘가을이 너무 짧다. 봄, 여름 갈-, 봄. 이라더니 가을이 쓱~ 훓고만 지나갔다.’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어제는 밀린 원고를 마무리 짓고 마감기한을 간신히 맞추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낸 후 그제서야 편안히 침대에 몸을 뉘였다. 시계를 보니 밤 11시 58분이다. 원고 마감기한을 2분 남기고 편집자에게 메일을 보냈으니 적어도 마감기한을 넘긴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선방한 나 자신을 칭찬해주는 밤이다. 밤 9시 반이면 자던 예전의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모두가 잠든 밤, 호텔 로비에서나 봄직한 커다란 스탠드에 은은한 조명을 켜두고 글을 쓰는 일은 이제 나에게 익숙한 일이 되어버렸다.   

   

  50대 중반의 남편은 여전히 회사를 씩씩하게 잘 다니고 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처럼 회사에서의 성과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회사 생활이 불안하다며 늘 나에게 맞벌이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설파하던 그 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내가 평생 벌여 먹일테니, 회사따위 때려치워” 라며 쿨하게 말하고 싶었지만, 두 아이를 키우는 외벌이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무너진 건강은 내가 꽤 오래 해왔던 일도 한정 없이 내려놓게 만들었더랬다.   

  

  그런데 5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다. 거대 난소낭종 수술 후 엄마라는 사람의 건강의 중요성과, ‘자기 자신이라는 몸뚱아리’가 없으면 타인에게 무엇도 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매일 꾸준히 운동을 했던 덕택에 수술 전보다 건강해졌다. 건강해진 몸으로 예전부터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싶었지만 오래동안  제쳐 놓았던,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전에는 컴퓨터 폴더 안에서만 잠자고 있던 글을 하나씩 꺼내 브런치 스토리에 올리고 발행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브런치 작가가 된지 만으로 5년째 되는 날이다. 5년동안 구독자는 조금씩 꾸준히 쌓였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이 종이책으로  출간 된 것이 그새 2권이나 되었다. 나머지 2권은 전자책으로만 발간되어 손으로 만질 수는 없지만 똑같이 소중한 내 새끼들이다. 그리고 이 전자책들은 국내 뿐 아니라 아마존에서도 살 수 있는 책이 되었다.  외국의 독자들이 영어로 번역된 내 책을 읽는다니. 아직 그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지가 않는다. (실사를 핑계로 해외여행을 가야할 판이다.) 


  진짜 내 새끼들은 그 사이 무럭무럭 커서 한명은 대학생이 되어 서울로 떠났다. 중학생 때부터 대학은 무조건 지금 사는 곳을 떠나서 갈 것이며, 엄마 아빠는 행여 따라올 생각조차 하지 말라며 엄포를 놓던 딸이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반에서 중상위권 정도 하던 딸은, 고등학교 가서는 약사라는 자신의 꿈을 점차 구체화시키더니 자라고 해도 밤늦게까지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다. 그리고 결국 원하는 학교, 원하는 과에 입학을 해서 학교 생활을 잘 해나가고 있다.       


  둘째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어 밤 10시가 되어 집에 들어온다. 나를 닮은건지, 대문자 F인 그 아이는  특유의 섬세함으로 때로는 남편보다 더 세심하게 내 감정을 읽어준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루 종일 글 쓰느라 피곤했을 엄마를 위해 세탁기를 돌려놓고는, 움직인 김에 씽크대 위에 널부러진 컵과 식기들을 정리해 식기세척기에 넣어 시작 버튼을 누르고는 조용히 자기 방으로 들어가 남은 공부를 마무리한다.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해온 유튜브가 어느덧 구독자가 10만이 넘어, 얼마전 실버 버튼을 받고는 자랑스럽게 벽에 걸어 두었다.      


  이제 브런치 글쓰기 연재 방식을 조금 바꾸어 실시간 발행으로 바꾸었다. 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다. 매일 글 한편씩을 쓰고, 매일 퇴고를 해서 올리는 삶이 5년간 지속되었더니 굳이 종이를 출력해서 퇴고하는 작업을 하지 않고도 글을 발행 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브런치에 올리기 전에 메일링 서비스를 받고 싶은 독자들을 위해 메일링 서비스도 시작했다. 나의 글을 조금이라도 빨리 보려고 한달에 얼마간의 구독료를 기꺼이 내주는 그들을 위해,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글이 되기 위해 오늘도 나는 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 일상 속의 반짝이는 순간과 글감들을 찾아 어슬렁 거린다.      


  내일은 작가로서의 삶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들과 함께 오랜만에 애정하는 베이커리에 가서 유기농 빵과 생과일 쥬스를 사서 근교로 나가야겠다. 소풍 기분이 나도록 김밥도 사가야지. 캠핑 의자를 펴놓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그간의 마감시간의 압박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갖고 싶다. ‘내일의 독자’들을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잘 살아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 말이다.  


    



일기의 마지막은 이런 메모로 마무리 되어 있었다.    

 

p.s 혹여 시간여행자가 이 일기장을 본다면, 이미 꿈이 이루어졌다고 지레 좋아하며 초심을 잃지 않기를 바라오. 당신의 소망을 이뤄내는 것은 당신의 간절함이며, 당신만이 해 낼 수 있는 꾸준하고 부지런한 실행력에 달려있다오.

     

부디 글을 삶으로 살아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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