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그리고 좋아해
좋지 못한 연애의 끝. 그 순간 복수심 같은 걸로 만들어 낸 이상형. 이걸로 만났던 사람들을 판단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이 사람은 내 이상형의 기준에서 부족한데 좀 아닌 걸 하는 생각으로 외모로만 사람을 재고 따지고 판단해서 결론을 내렸다. 뭐~ 외모가 다가 아니지라고 말만 하면서 한 번 자리잡기 시작한 이 잘못된 기준은 내 안에 뿌리를 깊게 내렸고, 나 자신을 외모밖에 보지 못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나갔던 소개팅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 첫인상은 여전히 가지고 있던 내 이상형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았다. 그냥 오늘 만남을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만 하자. 라며 인사를 하고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이상형의 기준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대화를 하면 할수록 기분이 묘했다. 왜 이렇게 편하지? 내가 억지로 대화를 이어가려고 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자연스럽지? 그 사람은 말이 많은 나의 이야기를 중간에 끝는 법이 없이 끝까지 들어주었고 그게 억지로 참고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나에게 모든 신경과 관심을 쏟아서 집중하는 모양이었다.
때론 조금 더 내쪽으로 몸을 기울이기도 하고, 환하게 웃어주기도 했고, 예쁘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말하기도 했다.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나 마음을 난 언급하지 않았는데, 그러니까 자신은 어떤 것 같냐며 나에게 묻기도 했다. 두 번째 만났을 땐 처음 만났을 때, 항상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데리러 가고 데려다주느라 힘들었다는 나의 말을 기억해서 이번엔 자기가 나를 데리러 오겠다며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기도 했다. 함께 드라이브를 갔는데, 그때 본 그의 웃는 얼굴은 정말 예뻤다. 온 세상에 우리 둘 만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모든 순간들을 통해서 나의 마음은 점점 그에게로 향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다음을 기약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서운하고 답답했던 나는 이런 생각을 전했고 그가 나에게 말했다. 난 아직 사실 잘 모르겠다.라고, 근데 넌 어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좋지도 싫지도 않아. 그 뒤에 그는 좀 더 만나고 생각해보려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만 정리하는 게 낫겠다고 말했다. 난 알겠다고 했고 그런 생각을 존중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라리 잘됐지 뭐.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잘되지 않았다 괜찮지도 않았고 좋지도 싫지도 않은 것도 아니었고 좋았다. 아주 많이. 잃고 싶지 않았고 계속 생각이 나고 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가 던진 잘 모르겠다는 그 말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다.
사람의 내면을 보고 그 사람 자체를 봤었어야 했는데 재고 따지느라 진짜 좋은 사람을 빨리 알아보지 못했고 그 아까운 시간들을 흘려보냈고, 솔직하지 못하고 용기가 부족했고, 자존심 세우느라 말하지 못했던 진심, 모든 게 후회됐고 결국 그렇게 놓친 인연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정말 사랑받는 연애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날 사랑한다고 해도 그 진심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믿을 수가 있을까. 진심을 다해서,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쉽지 않다. 어렵다. 그리고 아직 내가 사랑받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 것 같아서,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다시 나에게도 기회가, 어떠한 인연이 찾아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