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엄마와 편집자 딸이 함께 만들어낸 진솔한 삶의 무늬 “오래전부터 엄마는 문학소녀였고, 시를 써왔어요. 엄마에게 ‘시’라는 존재가 고단한 삶을 견디게 해주는 신앙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엄마의 시를 책으로 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지는 꽤 오래되었어요.”
많은 여성들은 결혼 이후 자신의 이름 대신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엄마로 불리며 살아간다. 김정숙 시인 역시 그랬다.
하지만 수십 년을 시를 쓰며 살아온 엄마가 2020년 「숲의 잠상」으로 직지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것을 계기로 편집자로 십 년간 일해온 딸은 엄마의 시를 하나로 엮어 세상에 선보이기로 마음 먹었다.
이번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87편으로 기존의 다른 시집들에 비해 많은 편이라고 한다. 오랜시간 시를 쓰며 살아온 엄마의 시 중 엄선해서 선보이는 반짝이는 언어들은 차곡차곡 모여 삶의 무늬를 이뤘다.
엄마에게 선물하고 싶은 시와 시간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 여성의 일생을 가만히 그려본다. 그리고 우리 엄마를 생각한다. 엄마는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글을 읽고 쓰며 살아가는 나를 보며 종종 자신도 한때는 문학소녀였다고 말하곤 한다. 그런 엄마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
수척해진 그늘마다 잘 빚은 경단에 팥고물 묻히듯 굴러가고 싶은 햇빛은 담담하다 그늘을 오래오래 어루만지고 있다 --- 「야위어가는 그늘」 중에서
누군가의 엄마로 고단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때때로 찾아오는 행복에 감사해하며, 자신이 가야할 곳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묵묵히 나아가는 시인의 시를 통해 엄마의 지난 시간과 현재의 삶, 앞으로의 날들이 담담하면서도 넉넉히 위로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