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얼마 전 드라마에서 보게된 한 장면이 쉬이 잊히지 않고, 계속 생각나서 그 장면에 대해 짧게 얘기보려고 한다.
지난 11회에서 지운은 세자 휘에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 후 그에 대한 대답으로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길 것을 부탁하는 휘를 위해 시강원 서연관 자리를 내려놓고 궐을 떠나 도성 밖에서 환자를 돌보는 의원 생활을 했다. 휘를 만나기 전의 삶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절친한 벗이자 휘의 든든한 조력자인 현은 지운을 만나고 돌아와 휘에게 그의 안부를 전해준다.
그 후 휘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에 문득 어느 날 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풍경 소리를 들으면 아무 걱정도 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던 아주 어릴 적 어느 그리운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휘를, 벗들이 깊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그리고 지운은 이내 조금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혔다.
"이 소리와도 비슷하지 않습니까? 저하께서 좋아하시는 풍경 소리 말입니다."
라는 말과 함께.
풍경의 방울에 물고기 모양의 얇은 금속판이 달려 있는 이유는 물고기가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것처럼 수행자는 잠을 줄이고 언제나 깨어 있어야한다는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쌍둥이로 태어나 여아라는 이유만으로 버려져 절에서 자라온 아이가 오라비인 세손의 죽음으로 남장을 하며 세자가 되어 살아가는 과정에서 휘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언제나 깨어 있어야 했다. 마치 풍경 안 물고기처럼.
그리고 지운은 휘에게서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보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른 이들에게 곁을 주지 않고 언제나 날이 잔뜩 서 있는 사람. 궁궐이라는 낭만적이지만 누구도 자유롭지 못한 풍경 안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아름답지만 너무도 외롭고 쓸쓸한 존재.
그래서 지운은 궐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휘가 외롭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풍경 소리가 좋다는 휘의 말에 저하는 이제 더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지금처럼 자신과 벗들이 저하의 곁에 함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픈 마음을 대신해 장난스레 술잔을 부딪히며 웃어보였다.
그리고 그런 지운의 마음이 닿아,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에 비로소 휘도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어린시절 세손이 죽기 전 지운과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 이후 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야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보고 다가와주는 지운이 있고, 마음놓고 술잔을 부딪힐 수 있는 벗들이 함께 있기에.
다시금 바람이 불고, 풍경 소리가 들렸다.
다정하고 즐거웠던 밤이 지나고 홀로 남은 휘는 풍경을 바라보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후 두사람은 다시 만나 우여곡절 끝에 휘가 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이 장면은 유독 선명하게 마음에 남았다.
아마도 그 후로도 위태로운 삶을 이어가는 휘에 대한 걱정과 다른 이들은 잘 알지 못하는 자신의 진짜 모습을 알아봐주고, 함께하겠다 다짐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주는 위안의 힘을 더욱 크게 느낄 수 있는 장면이어서 그런 것 같다.
어쩌면 모두 자신의 삶에 이런 사람이 다가와주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고, 사랑해주는 이. 그렇게 진심을 다해 나를 연모하는 이.
혹은 내가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그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언제나 곁에 있고 싶고, 안고 싶고, 마주서서 얘기하고 싶고, 함께 있고 싶을 만큼 온전히 나를 살아있게 하는 이를.
그래서 말할 수 없는 비밀에 의해 외롭고, 아름답지만 위태로운 사랑을 시작한 그들을 진심으로 응원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