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의 허니문

숨만 쉬어도 즐거운...

by 소소

명예퇴직을 하고 이제 한 달.


직장에서는 송별회며 회식이며 마지막 어수선한 행사들이 있었고, , 집에서도 꽃다발도 받고 평소보다 비싸고 맛있는 것도 먹으며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단단히 찍었다.

다음 날부터 눈을 떴을 때 정해진 시간에 쫓겨 어디론가로 헐레벌떡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평안했다. 내 머릿속의 오만 가지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뇌 속이 마치 텅 비어버린 것처럼 고요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단 하루 만에 말이다.


딱히 새로운 것을 시작한 것은 없다. 일주일에 각각 두 번씩 가던 운동과 악기 레슨을 퇴근 후 저녁 시간대가 아니라, 낮 시간으로 옮겨서 여유 있게 가게 되었다는 것뿐이다. 퇴근을 하고 급하게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식구들 저녁준비까지 해두고서야 운동이며 악기며 배우러 다녔는데, 이제는 그렇게 시간에 쫓길 필요가 없다. 오전에 설렁설렁 거리구경까지 해가면서 느긋하게 다닌다.

낮 시간에 창문 가득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에 환기를 하고, 다림질을 하고, 거울을 반질반질 닦는 여유도 생겼다. 조용한 집에서 원두를 핸드드립으로 갈고, 필터 지를 접어 똑똑 떨어지는 커피 방울 소리와 멋진 커피 향도 만끽한다. 소파 팔걸이를 베고 누워 유튜브 여기저기 헤매다 깜짝 졸기도 한다.


집에서 사용할 새 노트북 컴퓨터도 장만하고, 읽어야 할 책들도 있고, 글 쓰려고 공책도 사고, 브런치스토리 작가도 되었고, 노션도 공부해 두었는데 아직은 가만히 앉아서 내 마음을 돌아볼 시간은 없다. 차차 해보려고 한다. 아직은 텅 빈 낮시간에 적응하는, 혼자만의 시간의 첫 단추이니까... 지금은 숨만 쉬어도 즐거운 퇴직의 허니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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