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이 없으면 실패를 하지 않는 건 맞는데...
스포일러 잔뜩 있는 영화 리뷰 영상은 정말 많이 보지만 한 편의 영화를 끊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최근에는 언제인지 기억에 없습니다. 영화 리뷰를 보고 "이 영화 진짜 괜찮다...!"라고 생각해도 어차피 찾아서 보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스포일러 나오는 건 상관이 없고, 어차피 그 스포일러 기억도 못합니다. 그런데 기생충을 일부러 시간과 돈을 들여서 본 이유는 딱 두 가지입니다.
1. 세계 영화계에서 하나의 역사를 만들었다고 해서...
2. 아는 형님이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굉장히 찝찝했다고 해서...
기생충이 세계 영화계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건 솔직히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아는 형님이 말한 그 찝찝함은 분명 저와도 상관이 있을 거였기 때문에 기생충을 본 건 두 번째 이유가 더 큽니다. 첫 번째 이유는 그만큼 훌륭한 작품이라는 검증이 끝난 영화이기 때문에 적어도 보고 난 후에 시간 아까웠다는 생각은 들지 않겠지라는 걱정을 덜어줬을 뿐입니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기생충에 숨겨진 봉테일을 알기 위해 리뷰 영상을 찾아봤고, 그제야 그 형님이 말한 '찝찝함'이 뭔지 알 거 같았습니다. 사람마다 생각이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찝찝함'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저도 '찝찝함'이 생겨 버렸다는 점입니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어떤 것부터 해야 할지를 모르겠네요...
말하고 싶은 게 생겼다는 건 어쨌든 지금의 제 상황에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투영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는 건 나와는 맞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두 번의 휴학을 하면서 뭔가 나만의 일을 해보려고 했지만 어리다는 거 말고는 특별함이 없었던 제가 남들과 다른 방법으로 나만의 길을 찾기는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 입사를 했지만 그럼에도 과장이 되기 전에는 퇴사를 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나름에 준비를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다닌 지 7년이 조금 안되었을 때 진짜로 퇴사를 해서 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게 3년 조금 안됐네요!
다행히 대학생 때 휴학을 했을 때보다는 좀 더 일이 잘 풀리고 있습니다. 그 후에 일들은 정말 많고 복잡하고 할 말도 많지만 그냥 종합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 일이 진행은 되고 있고 할 것도 많지만 분명 어느 경계는 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습니다.
일하다 보니 내 '선'을 넘는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내가 그 사람들의 '선'을 넘은 거겠지만 누가 봐도 그 사람의 '선'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당했지만 경험이 생겨 나중에는 그런 사람들에게 잘못을 강제적으로라도 받아내는 방법을 알게 됩니다. 당연히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제 돈과 시간을 들여 돈으로써 보상을 받아내는 방법입니다.
이런 일이 또 반복됩니다.
어느 순간 저는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었고, 주변에 관계가 좋지 않은 사람들이 생겨 났으며, 그중에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아무 일도 없었던 친구들과도 관계가 소원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을 인지한 건 퇴사하고 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입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을 해왔었습니다. 왜? 회사는 전쟁터이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건 아닐 테니깐요...
뭐 문제없었습니다. 누가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소리를 지르면 나는 무시하고, 그래도 그 사람이 오버를 한다? 그럼 그 사람의 무논리를 논리로 받아치거나 고소를 하면 되니깐요... 제가 하는 일의 바운더리에서는 적어도 잘못한 사람이 결국 손해를 보게 되었습니다. 단지 저는 정신적 스트레스를 시간으로 이겨내면 됐습니다. 이것도 사업의 일부분이니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조금씩 조금씩 걸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하지 못했던 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조금씩 지치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그래 너네는 짖어라... 나는 간다'였는데 지금은 그 짖음에 제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고, 어떤 경우에는 꽤 오랫동안 멈춰서 있기도 합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런 의문도 듭니다.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데도 뭐 하나 더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점점 없어지고 있고, 나이만 계속 하나씩 착실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주변에 짖음에 저의 의심까지 더해져서 예전과 같은 추진력이나 의지도 찾기 힘들어집니다. 대학생 휴학 때도 결국은 한계를 느끼고 복학을 하고 입사를 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는 조금 다릅니다. 한계는 아닙니다. 계속해볼 만합니다. 뭔가 동력을 잃어버린 느낌? 아니... 뭔가 더 근원적인 어떤 문제?
이때 기생충을 봤고, 제 의구심? 혹은 궁금증에 대해 답변이 될 수 있는 약간의 힌트를 얻게 된 겁니다. 물론 그게 답은 아닙니다.
[계획]
제게 남은 찝찝함이란 이런 겁니다. 누구나 계획은 가지고 있고, 목표도 있습니다. 그리고 노력도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기생충에서 대놓고 나온 카스테라, 치킨집 체인점처럼 말이죠! 평범한 사람들이 회사에서 나오게 되면 가장 쉽게 접근하고 시도할 수 있는 방법들인데 대부분은 오래 못 가는 게 현실입니다. 즉, 계획은 실패하고 맙니다. 기생충의 기택은 "계획이 없으면 실패하지 않는다"라고 말하지만 그 역시도 애초에 계획이 없던 건 아닙니다. 계획을 갖고, 체인점도 해보고 발레파킹도 했지만 생각처럼 되질 않으니 체념하고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그렇게 말을 한 겁니다. 정말 무책임한 행동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내용은 영화를 볼 때는 몰랐는데 기생충을 본 후 리뷰 영상을 보면서 알게 된 겁니다. 이래서 봉테일 봉테일 하나 봅니다. 정말 말도 안 되고 썡뚱맞다고 생각한 부분이 많았는데 그러한 설정들이 다 이유가 있었고, 대사 하나하나도 그냥 지나가는 게 없었습니다.
수능 공부를 할 때도, 대학생 때도, 회사를 다닐 때도. 퇴사를 하고 사업을 하는 지금도... 저는 늘 계획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미뤄지고, 수정되기만 할 뿐입니다. 성과가 없지는 않지만 처음에 말한 것처럼 어느 경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 본질 혹은 내 상황을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건가? 기생충에서처럼 내 겉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내 몸에 냄새까지는 바꿀 수는 없는 건가?
나도 시간이 지나면 결국 기택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걸까?
Yes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단지 쉽지 않아서라고, 좀 더 노력하면 된다고 답하면 이것 또한 결국 경계는 넘지 못하고 나와 타협하는 또 똑같은 쳇바퀴의 시작점은 아닐까?
기택의 아들 기우처럼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기택에게 사과하는 기우처럼 체념하고, 수석을 다시 원래의 자리로 갖다 놓게 되는 건 아닐까?
제 상황과 딱 맞물려서 어두운 현실을 보여주는 기생충을 보면서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겁니다. 포기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단지 전이라면 혼자 묵묵히 넘어갔을 상황에서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고, 의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저를 보면서 제가 선택한 이 길을 한 없이 걷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뭔가 끝장을 내거나 어떠한 성과, 혹은 어떤 드라마틱한 제 환경의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거나 그런 시점이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또 다른 '계획'이 필요한 것뿐입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그 계획은 잘되는 경우보다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퇴사를 할 때 몰랐던 것도 아니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지는 않습니다. 그냥 말도 안 되는 선택을 하게 만들었던 예전의 '그 뭔가'가 많이 약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예 없어지기 전에 어떤 결과나 또 다른 선택이 필요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