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컨슈머도?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서 판단합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개인 사업자입니다. 4년 전까지는 소비자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개인 사업자이니 사업자 입장에서 할 이야기가 많을 수 밖에는 없고, 이 글을 읽으시는 대부분의 비 사업자 분들께서는 동의를 안 하실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렸 듯이 사람은 자신의 기준에서 생각을 하니깐요. 당연히 저도 계속 회사를 다녔다면 이런 글도, 음성 콘텐츠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http://www.podbbang.com/ch/1780825?e=24134223
제가 하는 일 중의 하나가 해외 상품의 구매 대행입니다. 말 그대로 해외직구를 직접 하시지 못하거나 귀찮아하시는 분들께 수수료를 받고 대신 해외 상품을 구매해서 한국으로 보내는 일련의 작업입니다. 이때 중요한 점은 제가 어떤 물건을 직접 파는 게 아니고 소비자 분께서 구매를 원하는 상품의 링크(해외 홈페이지 주소)를 주시면 그 홈페이지에서 제가 대신 구매를 하고, 그 상품을 주문해서 해외 국가에서 저희가 받은 후에 한국으로 보내는 배송 업체에 맡긴다는 점입니다. 정상적으로 거래가 완료되면 좋겠지만 당연히 문제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사기 거래]
소비자 분께서 저희한테 주신 해외 사이트 자체가 사기 사이트인 경우가 있고, 마찬가지로 소비자 분께서 저희한테 알려주신 판매자가 사기 거래자일 수도 있습니다. 그걸 몰랐으니 소비자 분께서도 저희한테 구매를 요청하셨던 겁니다. 그런데 해당 사이트가 혹은 판매자가 사기인지 아닌지는 소비자뿐만 아니라 저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단지 소비자 분께서 구매를 요청한 사이트/판매자한테 대신 구매를 할 뿐입니다. 그런데 대다수의 소비자 분들은 사기 거래로 결론이 나면 대행을 맡긴 저한테 책임을 묻습니다.
이런 거죠. 형이 동생한테, 어떤 사람에게 물건을 전달해 달라고 했는데 그 사람이 동생한테 물건을 받고 잠수를 탄 겁니다. 이때 형이 동생한테 책임지라고 하는 거...
위의 예시로 든 형제 이야기와 실제 저와 소비자 간에 갈등이 다른 것일까요? 물론 대부분의 분들은 또 묻습니다. 수수료를 받았으니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소비자 분들도 사기 여부를 몰라서 저희한테 구매를 요청했는데 저희라고 알까요... 저는 중개자일 뿐입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사기를 친다고 해서 그 온라인 쇼핑몰이 책임을 지지 않는 것처럼 저희도 사기 판매자/사이트/가품에 대해서는 어떠한 책임도 질 수가 없습니다.
[배송]
간혹 배송 중에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희는 대행업체이지 배송 업체가 아닙니다. 실제 배송을 하는 업체에 물건을 맡기는 것까지가 저희가 하는 배송 업무의 전부입니다. 배송 업체에 물건을 맡기는 순간 저희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습니다. 이런 때에 배송 중에 분실이나 파손이 발생하면 저희한테 책임지라고 하는 소비자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경위나 문의/항의는 저희가 당연히 해드리는 게 맞지만 물건 자체의 보상은 저희가 아닌 실제 배송 업무를 담당하는 배송 업체와 해결을 봐야 되는 내용입니다. 배송 업체에 항의나 문의를 해 달라고 하면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고, 당연히 해드리는 게 맞지만 배송 업체에서 발생한 일을 그 배송 업체에 택배를 맡긴 저희한테 책임지라는 건 저희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많습니다.
저희한테 책임을 묻겠다는 그 심정은 이해가 갑니다. 외국 업체에 문의를 하고, 항의를 하자니 막막하고, 같은 한국 사람인 저한테 항의하는 건 더 편하고, 더 빠르고, 당연히 그래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겠죠. 하지만 제 입장에서도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합니다. 구매한 상품은 제가 특정 사이트나 판매자한테 구매하라고 광고나 홍보를 한 것도 아니고, 소비자 분께서 직접 지정한 곳에서 대신 결제만 했을 뿐인데 구매한 상품이 가품이고, 구매한 사이트/판매자가 사기이면 제가 책임져야 한다...?
적어도 제가 받는 수수료에는 사기나 배송 중 발생하는 파손/분실에 해당하는 비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 비용을 받지 않고, 책임지겠다는 게 아니고, 그런 건 보장할 수 없으니 그에 해당하는 비용은 받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겠다는 겁니다. 왜? 책임을 지려고 해도 질 수가 없는 내용/상황이니깐... 할 수 없는데 할 수 있다고 말했다가 못하면 그건 사기이지만 애초에 안 받고 안 하는 건 문제가 될 게 아닙니다. 당연히 "그런 내용을 몰랐다", "고소하겠다"고들 합니다. 확실히 이런 경우에는 소비자가 사업자보다 더 유리한 거 같습니다. 어디에 신고하고, 평가를 좋지 않게 남기는 등 소비자의 결정에 따라 사업하는 저는 그 이후에 어떠한 영향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제 기준에서 아니다 싶은 것까지 다 받아들일 생각은 없습니다. 전에는 무조건 제가 아쉬운 소리를 했고, 좀 손해보고 좋게 좋게 해결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애초에 위와 같은 문제가 생길 거 같은 건들은 제가 거절하고,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발생하면 위에서 말한 내용을 언급하고, 절대 보상 불가를 고수합니다. 신고나 고소를 한다고 해도 아닌 건 아닌 겁니다.
물론 그러다 보니 해외직구 쪽은 예전보다 매출이 많이 줄었습니다.
이런 상황들 때문에 아래 링크의 글도 쓰게 된 겁니다.
[관련 글 : 투자만 분산하나? 사업도 분산하면 안 되나?]
내 기준을 고수하면서 내 사업에 타격을 입더라도 나는 그 사업이 아닌 다른 사업에서도 매출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사업에 집중할 때보다 훨씬 타격이 줄어드는 겁니다. 그리고 포기할 건 포기하고, 욕먹을 건 먹고, 감수할 건 감수하면서 계속 사업을 하다 보면 또 어느 순간 조금씩 회복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해야지 내 기준을 버리게 되는 소비자의 요구까지 모두 맞춰주어서는 내가 하는 사업을 내가 못해먹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소비자들이 내 사업을 이용은 하겠지만 대신해주는 건 아니니깐요. 물론 소비자가 소비를 해주어야 내 사업이 유지되는 건 맞지만 논리에 어긋난 요구까지 맞춰주면 계속해서 동일한 문제가 발생될 수 밖에는 없습니다. 그 자체로도 사업 유지 여부와 관련이 없지 않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마음에 드는 곳에서 소비를 하고, 내가 안 해주는 것을 해주는 다른 업체가 있으면 거기에서 소비를 하는 게 서로가 좋은 거지, 굳이 마음에 들지 않고, 다른 곳에서는 해주는 걸 안 해주는 저를 통해서 거래를 할 필요는 없는 겁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확실하게 선을 긋는 게 서로한테 감정/시간/비용적으로 이득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런 제 생각에 동의하시는 분들 위주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적어도 해외직구 사업에서는 이 분들을 통해 대부분의 매출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특징은 한 번이 아니라 꾸준하게 여러 번 거래를 한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제 서비스에 문제가 있었다면 이런 분들조차도 생기지 않았을 겁니다. 예전에는 내가 뻣뻣하게 사업을 진행했을 때 잃게 되는 것들에 전전긍긍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걸 다 잡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제 사업의 효율성과 일관성을 더 중요한 잣대로 삼으며 사업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해결보다는 문제의 방지에 더 초점을 두는 겁니다. 그게 더 효율적인 게 해외직구의 특성상 어쨌든 문제가 발생하면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게 있기가 힘듭니다. 소비자는 소비자의 기준으로, 저는 사업자의 기준으로 서로 자신들의 말만 할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내 말만 해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