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놓은 것도 나쁘지는 않은 듯...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 건 아니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걸 너무나도 힘들어합니다. 스스로를 워크홀릭이라고 말하고 다니는 이유 중의 하나죠.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였다면 그 일이 해결되지 않는 한 그 스트레스는 절대 사라지지 않고, 어떻게든 해결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일을 해결했다면 또 다른 일을 해야만 또 마음이 편합니다. 그냥 하루가 이런 식이고, 그런 하루가 30일, 6개월, 1년 내내 반복됩니다. 학생 때는 학생의 일을 하면서, 사업자일 때는 사업을 하면서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렇게 하면서 지치기도 하고, 도저히 뭘 할 수 없는 상태도 겪었지만 이제는 그런 것도 일상이 되어서 그럴려니 하고 계속 일만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도 한 번씩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계획이나 일정 없이 남해나 동해 쪽으로 2~4일 정도 떠나기도 합니다. 많아 봐야 1년에 두 차례 정도? 갑자기 훅 떠나서 산이나 바다를 다니기도 하고, 근처에 사는 지인들이 있으면 만나자고 무작정 연락도 합니다. 연락받은 쪽은 갑작스러운 연락에 황당하겠지만 가정과 거리 때문에 누굴 만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에 어지간하면 만날 수가 있었습니다. 안된다고 하면 제가 더 기다리면 되고, 시간도 맞추었으니까요. 약속 시간이 될 때까지 그저 저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카페에서 일하고, 잠은 모텔이나 찜질방에서 자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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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한 명이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와 대전에서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저도 그 만남에 조인하기로 했습니다. 둘 다 가정이 있어서 만나기가 쉽지 않고, 대전에 사는 친구는 항상 먼저 서울 쪽으로 왔었기 때문에 이번에 한 번 대전도 가고, 만나기 어려운 두 친구도 한 번에 만날 겸 대전에 가기로 덜컥 결정한 겁니다. 두 친구가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다음 주에 대전으로 가는 거라서 저도 진짜 가게 될지는 의문이었지만 평일이니 교통편을 구하지 못할 일은 없을 거고,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으면 갈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대전에 2박 3일로 갔다 왔습니다. 계획대로 두 친구도 만나고, 2년 전쯤에 우연치 않은 통화로 대전에 산다는 걸 알게 됐었던 친구한테도 연락해서 만나고 왔습니다. 이 친구는 거의 15년 만에 만난 친구였습니다.
모두 하는 일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상황도 달랐습니다. 그저 학생 때 인연이 있어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그저 지금까지 연락처가 있는 지인들일뿐입니다. 제 상황에서는 부담 없이 연락할 수 있었고, 상대방도 제 연락을 받아줘서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무슨 목적이 있던 것도 아닙니다. 그냥 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겨서 어느 날 갑자기 연락해서 보자고 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만나서 옛날 이야기 하고, 사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보험/결혼식/다단계...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보자고 한 게 아니니까요. 노트북을 가지고 갔고, 대전에 있는 카페에서도 일을 하기는 했지만 대전에 있는 3일 동안은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평소와는 다른 환경에서 너무 반가운 사람들과 헤픈 이야기만 하다가 왔습니다. 이런 일상이 제가 퇴사했을 때 기대하고 계획했던 일상이었습니다. 하지만 퇴사해서 고정 수익은 없고, 계속 나이만 먹는 상황이 되니 그저 지독하게도 현실적인 현실을 보내야만 했고, 그렇게 5년에 시간이 흐른 겁니다. 체념을 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조금은 안정이 되어서 그런 건지, 그것도 아니면 나이가 먹으니 공허해져서 사람이 만나고 싶었던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평소와는 다른 3일을 보내고 왔고, 앞으로도 자주 이러려고 합니다.
다시 일상으로
평소와 다르게 일에서 거리를 둔 시간이 무려(?) 3일이나 되었지만 마음이 불편하거나 후회가 되는 게 전혀 없습니다. 언급했던 것처럼 앞으로는 어떻게든 그런 시간을 더 가지려고 노력을 할 겁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오히려 그런 시간을 통해서 바로 지금 제 일이 더 잘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휴식을 취해서 재충전이 되어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그런 뻔한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수치와 계약이 늘었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우연히 타이밍이 그렇게 맞은 것도 있지만 오히려 방치했더니 다른 해결의 실마리가 생긴 것도 있고, 대전에서 지인들과 이야기했던 시간은 물론 대전과 인천을 버스로 오고 가던 시간 동안에 했던 생각, 떠오른 아이디어들이 바로 제 사업에 도움이 되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겁니다. 너무 신기하기도 했고, 이게 맞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친구/지인이라는 거 말고는 어떠한 접점도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현실적으로 얻은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심지어 제 일적으로 말이죠.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일부러 제 일과 거리를 두기 위해서 대전에 갔던 것인데 재미있게도 그런 과정에서도 일적으로 많은 것들을 얻어 온 겁니다. 아무래도 몸은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머리까지는 그러지 못했던 거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지인들과의 대화가 그런 쪽으로 제가 유도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부쩍 그런 제 이야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주변 지인이 늘어난 것도 한몫했을 수도 있습니다. 제 주변 대부분이 가정이 있고, 그러다 보니 투잡/외주/사업 등을 통해 부가 수익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친구들이 많거든요. 이런 수단을 "파이프라인"이라고들 말하더라고요. 저는 처음 듣는 말인데 무슨 의미인지는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월급 이외의 부가적이고 새로운 수익의 출처를 파이프라인이라고 표현하는 거겠죠.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휴식도 취하고, 반가운 사람들도 만나고, 제 일적으로도 더 잘되고 있습니다. 매번 이럴 수는 없겠지만 일단 한 번 겪었으니 조만간 또 한 번 이런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이거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