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재 저,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읽고
그가 말했다.
“글쎄요, 저는 제 인생 초반이 잘 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동그르르 장난 같은 말들이 오고 갔던 대화 속에서 툭 하고 나왔던 그의 말이 무거워서, 나는 적잖이 놀라 가만히 쳐다보며, 어설픈 위로랍시고
“그러면 이제 갈수록 잘 풀리겠군요?”라고 질문도, 축복도 아닌 어설픈 말을 건넸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음... 솔직히 말하면 아직 제 인생에서 봄날은 오지 않은 것 같아요.”
나는 말문이 턱 막히고 만다.
그는 더 설명하지 않았지만, 나는 쉼표와 쉼표 사이 그가 꽤 오래 지녀왔을 한숨을 읽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자신에 대해 말을 아끼던 그가 퍼즐 조각처럼, 아니면 헨젤과 그레텔이 남기고 간 빵조각처럼 놓고 간 이야기들을 천천히 열어보면, 그의 마음을 가늠할 수도 있었다.
전반전을 꽤 열심히 뛰었을 우리의 삶에서 아직 봄날이 오지 않았다면, 남은 후반전에선 어떤 행복이 와야만 당신에게 봄이 올 수 있을까, 나는 문득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그날 그에게 할 뻔한 말들이 있었다.
“우리가 모르는 새 지금도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봄날이지 않을까요?” 혹은 “지금 이루신 것만으로도 충분히 봄날이 왔다고 믿어지는 걸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 말들은 내가 진정 전하고 싶었던 위로를 담지 못한 채, 얄팍하게 둥둥 떠다닐 것이고, 가벼운 위로는 곧 나를 부끄럽게 할 것임과 동시에, 때로는 그가 괜히 이 얘길 꺼내게 됐다고 자책하게 하거나, 또는 마음에 생채기를 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 후로, 종종 그의 말을 떠올렸다.
나의 봄날은, 이미 지나갔는가?
고등학교 때 당시에 가장 친하던 친구와 짝사랑하던 아이의 별명을 ‘봄날’로 정하고 혼자 설렜던 기억은 있다. 그게 봄날이라면 애저녁에 지나갔다.
내 인생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라면, 문득 그려지는 기억들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내 가장 빛나던 순간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가장 어둡게 했었다. 그럼 그 날은 봄날이었을까? 그때는 따뜻했었나? 문득 매우 어려운 질문을 던진 그가 야속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정희재 작가의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의 도입부에서, 어쩌면 내가 그에게 건네고 싶었던 말을 찾았다.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당신, 참 애썼다.
사느라, 살아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 정희재 <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 중에서
아, 참으로 담담히도 전해진 위로였다.
곧바로 책을 붙잡고 다 읽어냈지만, 이 도입부 작가의 말만큼 마음에 와 닿는 글귀는 없었다.
‘늘 한 발짝 차이로, 버스처럼 비껴가던, 희망들’이 덤덤하게 말하던 그의 얼굴과 겹쳐 지나갔다.
당신의 봄날이 부디 아직 오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은, 조금 무섭기도 하고, 책임감이 없어 이기적이기도 하고, 너무 뻔하고 식상한 위로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그가 가장 필요로 하는 말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그를 만나게 된다면, 어쩌면 조금 이상할 수도 있는 위로를 건네고 싶다. 봄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일 뿐, 언젠가는 다가와 문을 두드릴 것이라고 책임감 없는, 그러나 애정이 가득한 이 한 마디를...
“참 애쓰셨어요. 부디 당신의 봄날이 아직은 오지 않았기를 마음 깊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