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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27. 2023

어린이가 반장이 되었다

칠전팔기의 정신

학교에서 돌아온 어린이의 어깨가 한껏 솟아올라 있었다. 드디어 반장이 되었다며 한참을 자랑했다. 그야말로 칠전팔기의 정신으로 이루어낸 성과이니 내 일인 양 축하해 주었다.


반장이라고는 하지만, 그 무게를 누릴 수 있는 기간은 2주다. 지금의 담임선생님은 2주에 한 번씩 반장을 뽑으신다. 그러다 보니 성적이나 인기와는 상관없이 학년이 끝나기 전에 누구나 한 번은 반장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인기 있는 친구들이 우선적으로 반장이 되는 것 같기는 하다.  


2주마다 하는 선거지만 담임선생님은 매번 반장 후보 지원을 받고, 반 친구들 앞에서 1분 연설을 시키신다. 연설 내용은 한국이나 프랑스학교나 비슷하다. "제가 반장이 되면 우리 반을 위해~~~~." 학생들은 후보 등록을 하기 위해 직접 손을 들어 지원해야 하고, 미리 반장 후보 연설 원고를 써서 학생들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해야 한다. 좋은 선생님이다.


학년이 시작되고 첫 반장 선거가 있던 날, 아이는 2표를 받아왔다. 한 표는 4학년 때부터 같은 반이었던 절친 덕이고, 또 한 표는 친하지도 않은 남자아이가 써줬다고 했다. 아쉬움은 있지만, 자신은 전학 온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학생들을 잘 모르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자기도 본인의 이름을 썼으면 3표는 받았을 거라며 꽤나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반장이 되고 싶지만, 투표에서는 친한 친구인 다른 후보의 이름을 적을 줄 아는 마음 씀씀이가 기특했다. 그 후로도 어린이는 꾸준히 반장에 지원했고, 이번에 뽑히기 전까지 매번 낙방했다. 


"이번에는 10표 밖에 못 받았어."

"반장 된 애랑 3표 차이밖에 안 났어. 아까워." 

"또 안 됐어. 이젠 반장 선거 안 나갈래."


2주마다 선거가 돌아온다고는 해도 언제가 반장 선거일인지 모르니 간간이 이번에는 누가 반장이 되었다는 결과만 아이에게 들었다. 어느 때는 자신이 없었는지 후보 지원도 안 했다고 하니 나름 속상한 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선거에 '출마'하는 아이가 대견했다. 게다가 아이의 득표수는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으니 아이의 자존감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수많은 고민을 하고 프랑스학교에 보내기로 결정하면서 세운 원칙은 아이의 학교 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반장 지원도 스스로의 선택이고, 방과 후 활동도 함께 고민하고 의견을 충분히 나눈 후에 결정했다. 성적표를 받아와도 구체적인 것까지 알 수 없으니, 수고했다고 말해줄 뿐이다. 대신 성적표를 받은 스스로의 만족도를 물어봤다. 스스로 이건 잘한 것 같고, 이건 좀 아쉽고, 저건 좀 부족하다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프랑스어로 배우는 과학과 역사가 어렵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보라고 했다. 책 읽기 좋아하는 아이니 관련된 이야기책을 읽으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을 해주었으니 이후는 아이에게 믿고 맡기는 수밖에 없다. 


학교 생활에서 공부만큼이나 중요한 게 친구 관계다. 친구 관계는 부모가 관여하기에 더 힘든 영역이다. 5학년이 되고서 어린이는 두 번의 절교를 겪었다. 한 번은 텀방학하는 날 절교를 당해 방학 내내 마음을 끓여야 했다. 전학 오고서 처음으로 친해진 친구의 절교 선언이었기 때문에 아이도, 나도 속상했다. 아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뭔가 오해가 있었던 듯한데 서운함과 화가 잔뜩 느껴지는 친구의 문자에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그 집 엄마와 연락을 하기에도 의사소통이 어려우니 그저 개학을 기다릴 뿐이었다. 다행히 서로 어색한 개학 첫날을 보내고, 둘째 날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친구가 되었다. 스스로 먼저 다가간 아이의 용기를 칭찬해 주었다. 오해로 절교를 선언했던 친구도 우리 집 아이에게 먼저 다가와줘서 고맙다고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친하게 지내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절교의 이유를 모른다.


최근에 있었던 또 다른 아이의 절교 선언은 며칠 동안 계속 돼서 힘들었다. 아주 친한 친구는 아니었지만, 학교에서 노는 무리가 같다 보니 절교한 둘로 인해 주변 친구들마저 눈치를 보며 갈라져 놀아야 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속상했지만 나서서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래도 괜찮아. 모든 사람이 다 널 좋아할 수는 없어. 너와 생각이나 성격이 다른 사람도 있을 수 있어. 네가 힘들다면 억지로 그걸 감추며 놀 필요는 없어." 


절교 선언을 한 친구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아이도 나도 기다려보기로 했다. 대신에 아이에게 몇 가지를 부탁했다. 


절대로 편을 나누지 말 것
그 친구에 대해 나쁜 얘기 하지 말 것
혹시 똑같은 상황에서 화를 내더라도 같이 싸우지 말 것. 


담대한 척 학교에 보내고서 더 이상은 서로 속상한 일이 없기를 얼마나 바랐는지 모른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친구가 먼저 "그날은 미안했어"라며 사과를 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그 시간을 견뎌준 내 아이에게도, 먼저 용기 내어준 그 친구에게도 고마웠다. 


그렇게 아이는 강해지고 있었다. 따로 가르치지 않아도 스스로 수없이 경험하며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해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서 살아가 주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아이의 인생을 앞에서 진두지휘하기에 나는 역량이 부족하다. 그저 옆에서 뒤에서 격려하고 응원하고, 가끔은 안내자의 역할을 하는 그런 엄마이고 싶다. 


4학년 때 전학을 가고 1학기 반장 선거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너도 나가고 싶어?"라고 물어봤다. 그때 아이는 "난 학교에서 식당 찾아가는 길도 모르는데 반장을 어떻게 하겠어."라며 손을 내저었다. 전학생들끼리 손잡고 점심시간에 식당 찾아가다가 막다른 길에 도착해서 한참을 웃었다는 얘기를 하고는 "내가 반장 하면 우리 반은 망할 거야." 라며 웃었다. 생각보다 참 쿨한 녀석이다. 나는 닮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랬던 아이가 5학년이 돼서 매번 반장에 도전하고 있다는 게 참 의외였다. 그리고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시절 부끄러워서 반장이 되고 싶다고 손 한 번 들어보지 못하고, 반장 후보 추천은 딱 한 번 받아본 나로서는 내 아이의 당찬 모습이 부럽고, 멋있었다. 

당당히 반장이 되었지만, 당선 4일 만에 베트남의 최대 명절인 Tet(한국의 설과 같지만, 공식 연휴가 일주일이다)으로 방학을 했다. "다른 반장들은 2주 동안 하는 반장을 하는데, 이번에는 Tet 때문에 3주나 반장을 할 수 있어. 엄청 좋아." 남들보다 일주일이나 더 반장의 왕관을 쓰게 되었으니 타이밍도 참 좋다. 

그런데, 프랑스학교의 반장은 어떤 일을 할까.


그래서 반장이 되면 하는 일이 뭐야?


수업 시간에 화장실 가고 싶은 애들이 있으면 같이 화장실 가주는 거야. 가끔 어떤 애들은 화장실 간다고 하고서 복도에 있는 다른 아이들 가방을 열어보거든. 그래서 반장이 같이 가는 거야. 나는 이번에 반장 후보 연설에서 친구들이 수업시간에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해도 절대로 귀찮아하지 않고 계속 같이 가주겠다고 했어. 그리고 아직 한 번도 반장을 못 해봐서 꼭 하고 싶다고 했어.
그리고 우리 반 책도 엄청 많이 들고 다녀야 돼. 한 번에 20권 넘게 들고 간다니까. 나 그런 거 엄청 잘해.


진지하게 반장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아이의 모습에 웃을 수 없었다. 

그저 나는 오늘도 내 아이를 응원한다.   

뭐든 최선을 다하길. 

열심히 그 의무를 잘 해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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