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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10. 2023

청소하는 마음

혼자 청소하는 이유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모두 제쳐두고 청소를 했다. 매일 쓸고 닦는 청소 말고, 모든 것을 꺼내서 뒤집고, 가구 배치를 다시 하는 청소였다.


애초에 이사 들어갈 때 위치를 잘 정해서 다음 집으로 이사 갈 때까지는 가구 배치를 건드리지 않는다는 지인은 대청소를 했다는 나를 되려 신기하게 생각했다.


"어디서 그런 에너지가 나와요?"

"계속 같은 위치면 답답하지 않아요?"

각자 입장의 차이.


사실 청소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여기에서 말하는 청소는 매일 쓸고 닦는 청소다. 먼지 많은 베트남이기도 하고, 집에서 여자 둘이 흘리고 다니는 머리카락이 많아져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두 번은 청소기를 밀지만, 여전히 귀찮고 하기 싫은 일이 집안을 쓸고 닦는 일이다.  


하지만 가구 배치를 바꾸고 불필요한 물건들을 버리는 일은 매일의 청소와는 다른 영역이다. 덕분에 학교 갔다가 돌아온 아이와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이 놀랄 일도 많다. 크지도 않은 작은 집에서 뭘 그리 바꾸냐고 타박한다. 이전이 더 나았다는 불평도 한다. 그래서 청소 작업은 늘 혼자 있을 때 은밀하게 한다. 남편과 아이모두 이런 상황에 익숙하기도 하고, 집안의 모든 상황은 '엄마'에게 맡긴다는 전제가 있어서 원래대로 돌려놓으라는 큰 저항은 없다.


얼마 전에는 아이가 거실에서 선생님과 수업을 하는 동안, 나는 수업 시간 동안 아이 방에서 일을 하기로 했다. 아이 책상에 앉자마자 아이가 지나가며 했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책상이 이쪽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 생각이 없었는데, 막상 아이 책상에 앉으니 '지금 당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수업에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작업을 시작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책장을 제외한 책상과 침대, 서랍장 위치를 모두 바꾸었다. 아이가 수업이 끝났을 때는 이미 새로운 방이 만들어져 있었다.


"어때?"

"엄마는 정말 대단해. 책상 위치가 이렇게 바뀌니까 훨씬 좋아."


어쩌면 애초에 집안 꾸미는 재주가 없어서 이렇게 자주 옮기면서 몸이 고생하며 시행착오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주 정리하지 않고, 물건을 버리지 못해서 쌓이고 쌓이다가 때마침 버려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어쨌든 인생은 자기만족이니까.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언제 그런 에너지가 나오는지를.

무언가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을 앞두었을 때나, 스트레스받을 때, 속 시끄러운 일이 있을 때, 관계의 어려움을 느꼈을 때 나는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힘과 에너지를 쏟을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바탕 집중해서 집을 정리하고 버리고 나면 속이 후련하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일에 대한 긴장감도 풀리고, 불안했던 마음도 어느 정도는 너그러워진다.


마음이 불편할 때마다 대청소하는 습관은 불면증으로 고생하던 20대 후반에 생겼다. 그날도 하루를 꼬박 불면증으로 못 잤다. 너무도 괴로웠던 새벽에 몸이라도 피곤하면 기절하듯 잠이 들까 싶어서(이미 일 때문에 피곤에 찌든 상태였지만) 달밤에 체조하듯 가구 위치를 바꾸고 대청소를 했다. 기대와 달리 그 고생을 하고도 잠은 결국 못 잤다. 무려 이틀 연속으로. 그래도 뭔가 모르게 개운했다. 그때부터 뭔가 일이 안 풀리거나 긴장이 될 때면 대청소를 했다.


오늘도 대청소를 하겠다는 계획은 없었다. 즉흥적이었다. 거실 책상으로 출근은 했지만, 늘 해왔던 일상이었는데도 뭘 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런 아침이었다. 괜히 거실을 둘러보다가 눈에 거슬린 책장 위치를 옮기다 보니 일이 커졌다.


오늘도 이유는 있다. 다음 달부터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 혼자 하는 일도 아니고 어느 회사와의 협업이다. 그 일을 앞두고 과연 잘 해낼 수 있을지 긴장하고 걱정하는 마음이 커서 막막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잠시 잊고 집정리를 끝낸 지금은 밥도 한 그릇 뚝딱 먹고, 도전하는 새로운 경험이 될 거라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렇다고 2월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전에는 스트레스받을 때 어떻게 해소하냐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잠을 자려는 노력도, 먹어서 풀겠다는 마음도, 쇼핑으로 잊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뭔가를 해결하는 나만의 방법이 없는 자신이 못나게 느껴지기도 했고, 나라는 사람은 늘 스트레스를 온몸으로 떠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대청소의 이유를 아는 지금은 머뭇거리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스트레스받을 때 뭘 하세요?"

"가구를 옮겨요."


그렇다고 우리 집이 늘 반짝거리고 깨끗한 건 아니다. 대청소와 매일 쓸고 닦는 청소는 정말이지 다른 영역이다. 매일의 청소는 나에게 넘사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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