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라는 신세계
해외에서 열세 번째 새해를 맞이하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계속 한국에 살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까. 한국에서 사는 지금의 나라면 어떤 책을 주로 읽고 있을까?
지금의 남편과 결혼은 했을까, 계속해서 같은 일을 하고 있을까 하는 질문이 아닌 어떤 책을 읽고 있을까가 궁금했던 것은 지금의 내가 읽는 책의 장르가 예전과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한국에 살던 20대 후반까지의 내 독서 취향은 주로 소설과 에세이, 여행, 인문학 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부분의 시간에 재테크 관련 경제 도서와 자기 계발, 사회, 역사, 과학과 관련된 책을 읽고, 머리가 지칠 무렵 소설을 읽고, 에세이를 읽는다. 그게 베트남에서 살아서인지,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심사가 바뀐 때문이지는 모르겠다. 아마 두 이유 모두가 맞겠지만, 첫 번째 이유로 많이 뒤처졌다고는 생각하고 있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전자도서관을 이용하게 되면서부터다. 한국의 도서관은 매우 고맙게도 나 같은 사람을 위해 어디에서든 읽을 수 있는 전자도서관 서비스를 운영 중이다. 읽고 싶었던 소설을 실컷 읽고 전자도서관을 뒤적거리다가 제목이 끌리는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엄마 주식 사주세요>.
뒤늦게 재테크(=주식)라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개미 중의 티끌 같은 개미가 된 상황이었고, 주식창의 파란색이 뭔지 빨간색이 뭔지도 헤깔리던 무지함을 조금이라도 벗어나고자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만난 또 다른 세상은 놀라웠다. '이런 세상을 나만 모르고 살았던 건가?' 남들은 다 알고, 나만 모르고 살았던 것 같았던 경제 관련된 책을 찾아서 계속 읽었다.
그러다 보니 처세술에 대한 책을 읽게 되고, 마인드컨트롤에 대한 책, 성공술, 대화법, 경제 일반, 미래... 등등 여러 분야의 책을 읽게 되었다. 개중에는 신간도 있지만, 많은 책들은 각 분야의 스테디셀러였다. 이미 내가 한국에 살던 때부터 있었던 책들. 하지만 그때는 조금도 관심 갖지 않았던 책들. 지금 읽어도 조금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책들이다.
그때 읽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까?
그야 알 수는 없지만 마음은 조금 더 편하고, 통장 역시 조금은 더 채워져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기 시작한 지 2년. 여전히 주식을 포함한 재테크는 어렵고, 통장은 가볍지만, 세상을 보는 내 시선은 조금 달라졌다. 도로 위 수많은 오토바이는 이 나라 경제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엄청난 젊은 인력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커피 한 잔을 사면서도 사회, 경제적인 흐름들도 조금씩은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과 베트남,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문화 속에서 공존하며 살아가다 보니 나라마다의 문화 차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배우는 마음도 생겼다.
청소년 소설과 어린이동화도 읽는다. 처음에는 아이와 같이 읽기 시작했고, 몇몇 학생들과 독서 수업을 하면서 읽어야 했다. 자극적이지 않고 따뜻한 이야기들이어서 이제는 내 아이나 수업과 관계없이 먼저 찾아서 읽는다. 어린이와 청소년 비문학도서도 도움이 많이 된다. 특히 어린이 경제도서는 경제 지식과 용어가 부족해 일반 경제 도서를 읽기 어려운 내 수준에 딱 맞아서 경제 도서를 읽는 초반에 자주 읽었다.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는 나의 경제입문서다.
만약 독서 수업을 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청소년과 어린이책, 그림책에 관심을 가졌을까? 그 또한 학생들에게, 부모님들께 감사하게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다른 인생을 경험하고 상상하는 것이 즐거웠다면, 지금은 세상을 배워가는 즐거움이 크다. 덕분에 이번 한 해를 지지하는 힘이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별 다를 것 없이 자고 일어나니 해가 바뀌었지만, 그럼에도 올해가 기대되는 것은 책을 읽으며 내 마음이 달라졌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