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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Mar 15. 2024

이런 날 저런 날

심심한 보통의 하루

뭐라도 써보겠다고 앉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겠는 날. 요즘은 오늘 같은 날이 많은 게 문제다.

제발 좀 한가해져라 한가해져라 할 만큼 바쁜 게 얼마 전이었는데, 막상 시간 여유가 생기니 생각을 놓아 버렸다. 글을 쓰는 힘도 근육이라는데, 바쁘게 산 1년 동안 근육이 다 소진되었나 보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아무튼 쓸 게 없다. 학생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는 주변의 모든 게, 네가 오늘 한 모든 일이 글쓰기 재료라고 하면서도, 정작 나는 쓰지 못하고 있다. 이건 아이들에게는 비밀이다.


해외에 살면 뭐 하나. 돌아다니지를 않는데.

일이 없으면 집에만 있는 게 좋고, 간간이 잡히는 약속이 취소되면 은근히 좋아하며 집밖으로 나가질 않으니 도무지 쓸 거리가 없다.


학생들이 우리 집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멋지다던데 그 멋진 풍경에 대해 쓸까?

풍경을 보면서 난 뭘 하지? 청소를 하지. 그게 전부다.


오늘 만든 음식에 대해서 써볼까?

요리는 정말 자신 없다. 어느 책에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한 끼를 대접할 수 있는 레시피 두세 개는 익혀두는 게 좋다고 해서 딱 그만큼만 할 줄 안다. 겨우 미역국과 모양 망가진 계란말이가 전부인 저녁 식탁. 아, 밥은 오늘도 따끈하게 맛있게 지어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오늘 뭔가에 집중했던 건 가상화폐다. 에너지도 없고, 돈도 없지만, 호기심은 넘치니 뒤늦게 가상화폐 거래소에 아이디를 만들겠다고 혼자 요란했다. 첫 번째 거래소는 은행 계좌까지 개설해서 등록했지만 해외 거주여서 거절됐고, 두 번째 거래소는 어떤 문제 때문인지 은행 영업점을 직접 방문해 달라고 해서 포기했다. 세 번째 거래소는 은행 등록까지 마쳤는데 최종 고객 확인 단계에서 신분증 확인하다가 10번의 오류가 났고, 하루 인증 횟수가 초과되었다는 메시지가 떴다. 문제가 뭐였을까.


그리고 이번에 안 되면 포기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한 네 번째 거래소에서 눈물겹게 성공했다. 은행 계좌 연결까지 끝내니  이제부터 거래가 가능하다는 메시지가 떴다. 마치 나의 끈기를 칭찬받은 것 마냥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다. “나도 계좌 있어요!”

해외에 사는 게 이렇게나 힘든 일이다.


어제오늘 이틀 동안 본인 계좌 인증을 하면서 통장에 들어온 돈만 '10원'이다. 1원씩 열 번이나 계좌인증을 했다니. 다시 생각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마 전 하루 동안 어떤 사람이 본인 계좌 인증으로 15만 원을 모아서 은행들이 시스템을 보완할 것이라는 기사를 봤는데, 그 집념만큼은 대단한 것 같다.


아무튼 그렇게 힘들게 가상화폐 거래소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지만, 아는 게 없으니 쳐다만 보는 중이다.


이 글은 가상화폐 투자 도전기가 아니다. 아마도 그런 글을 쓸 일도 없을 것 같다. 오랜만에 느낀 호기심이 이끌어낸 '가입 도전기'일 뿐이다. 한국에서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해외에서는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 하루. 보통의 심심한 하루에 자극적인 양념이 조금 추가됐다.


글은. 쓰면 써진다.


심심한 건 심심한 거고, 바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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