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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un 01. 2024

고수. 서양에선 허브, 우리에겐 풀

고수의 고수

뜨끈한 우동에 고수를 듬뿍 올린 맛.

한국에선 몰랐던 맛이고, 내 인생 뒤늦게 알아버린 별미다.

어느덧 익숙해진 베트남 맛에 고수가 없으면 음식이 심심할 지경이다. 한국에선 나도 고수가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면 비누 맛이 난다며 못 먹겠다고 했었다. 

"그런 걸 어떻게 먹어!!!!"


언제부터 고수를 즐기게 되었는지, 언제 고수에 대해 도전이란 걸 했는지는 모르겠다. 워낙 많은 베트남 요리에 올려져 있기도 하고, 다른 야채들과 함께 다져서 나오기도 하니 살면서 자연스레 익숙해졌다. '고며 들었다'라고 해야 하나. 볶음밥에 고수가 없으면 밥이 느끼하게 느껴지고, 남들이 안 먹겠다고 한 쪽으로 치워둔 것들도 오롯이 내 차지다. 

그리고 고수의 하이라이트는 우동이다. 기본 고수 토핑에 추가로 고수를 듬뿍 올려서 우동 한 젓가락에 고수 한 줄기를 같이 먹는다. 무슨 맛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우동에 고수가 들어간 맛?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맛이 고수다. 부조화 속의 조화 같은 맛이라고 해야 하나.


고수 사랑은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이다. 누구에게 추천할 수도 없고, 내가 좋아한다고 남에게 폐를 끼쳐서도 안 된다. 주말에 함께 일하는 친구와 종종 점심 먹으러 가까운 우동집에 간다. 고수 토핑을 올려주는 바로 그 집이다. 베트남 생활 5년 차가 된 친구는 여전히 고수를 못 먹는다. “언니, 맞은편에 앉은 저한테도 고수 냄새가 나요.” 작은 풀이 냄새도 꽤 강하다. 그래도 냄새는 괜찮다고 하지만, 조심스럽다. 그래서 빨리 먹어 치운다. 서로의 배려다.


가끔 외국인 손님에게는 고수를 비롯한 향채를 빼고 주는 식당들이 있다. 

"Nguoi Han Quoc~" (여기 한국인이야.) 

직원이 주방에 이렇게 주문을 전달하는 건 외국인 손님이니 향채를 빼달라는 뜻이다. 잘게 다져서 쌀국수 위에 올려진 향채를 걷어내는 게쉽지 않으니 식당 측의 배려다. 하지만 고수를 좋아하는 나에게는 심심한 맛이다. 먹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서 주문을 할 때 꼭 얘기한다. 

"베트남 사람들처럼 부탁해요."


남편 말로는 외국에서는 고수를 허브라고 한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고수를 무시하듯 '고수풀'이라고 부른단다. 무시라기보다는 익숙해질 수 없는 낯섦 때문이 아닐까. 허브는 먹을 수 있는 것이고, 풀은 먹을 수 없는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호칭. 


베트남식 깨진 쌀과 누룽지가 들어간 볶음밥을 주문한다. 
베트남 간장에 빨간색 또는 연두색 땡초를 넣어 휘휘 저어 매운맛을 가미한 다음 고추를 뺀다.
볶음밥에 땡초의 매운맛이 가미된 간장을 얹고, 고수와 함께 먹는다.
행복한 한 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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