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차] 일요일은 비움을 쉬어 볼까?

안 버린다고!!

by 정은

어제 정리한 옷들을 A와 B동생에게 나눠주었다.

버릴 건 버리고, 나눌 건 나누는 비움 프로젝트.

작아진 옷이 있다는 건 내 아이가 건강하게 잘 크고 있다는 증거이니, 나눔을 할 때는 늘 감사한 마음이다. 내가 누군가의 따뜻한 사랑 덕분에 옷과 책, 장난감을 물려받은 것처럼, 나 또한 그렇게 받은 사랑을 잊지 않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흘려보내는 사람이고 싶다.


엄마, 그래도 추억을 조금 남기면 안 돼?

좀 억울하다. 일요일이니까 비우는 일은 쉬어가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필요했던 건 이면지였다. 학년이 끝나고 아이의 노트를 모아 보면 깨끗하게 남은 면이 꽤나 많았다. 그냥 버리거나 남겨두자니 아까워서 깨끗한 종이들을 잘라서 메모지로도 쓰고, 연습장으로도 쓰고 있었다. 마침 일 년 동안 잘 쓰던 이면지가 다 떨어져서, 혹시나 쓰고 남은 노트 없냐고 물어보러 갔을 뿐이다. 정말로 무언가 버릴 것을 내놓으라고 간 건 아니었다.


그래도 희생을 통한 성과는 있었다. 다 쓴 노트는 없었지만, 책꽂이에서 안 쓰는 다이어리 2권과 작은 연습장 한 권을 얻을 수 있었다. 치사해도 그게 어디인가. 자기 손에 들어온 모든 것은 소중하다며 단 하나도 못 버리게 하는 녀석이 2개나 내어줬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면지를 구하지 못한 나는 내 방 책꽂이 앞을 어슬렁거리다가 한 구석에 있던 쓰다 남은 노트도 발견했다. 예전에 공부하던 흔적이 남아있던 노트였다. 버리는 물건은 아니지만, 재활용할 수 있는 물건을 찾으니 잠시 큰 성공을 이룬 듯한 기분을 누렸다.


나는 일요일마다 새로 시작될 한 주간의 스케줄을 요일 별로 직접 손으로 써서 정리한다. 손으로 써 내려가다 보면 일주일동안 해야 할 일이 입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다. 요일마다 해야 할 일을 시뮬레이션하기도 하고, 날마다 얼마나 여유 시간이 있는지도 가늠해 본다. 그리고 할 일을 눈에 펼쳐놓으면 마음의 부담감을 더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된다. 월요일을 시작하는데 완충 작용을 해주는 것이다. 나름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고, 루틴이다. 일을 끝내고서 하나씩 지워나가는 쾌감은 덤이다.


생각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 싶은 일요일.

버릴 것은 한쪽에 모아두고, 휴일을 즐긴다.

어떻게 즐기냐고?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게 가장 좋다.


[5일 차 버린 것]
-다이어리 2개
-손바닥 만한 노트 한 권(재활용 가능한 부분은 잘라서 묶어둘 예정)
-정말 어울리지 않는 핑크색 린넨 셔츠와 낡은 티셔츠 1
KakaoTalk_20250511_215453923.jpg 강박이 되지 않도록, 쉬어가는 날. 달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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