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변하는 중이다
서랍을 열 때마다 기분이 좋다. 늘 빡빡하게 채워져 있던 서랍에 여유 공간이 생기니 볼 때마다 마음에도 여유도 생기는 듯하다. 당장 며칠 뒤에 이사를 가려고 정리하는 게 아니니, 천천히 조금씩 정리하는 느긋함이 있다. 그래도 명색이 버리기 프로젝트라 평소보다 더 눈여겨가며 집안을 살피다 보니,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줘야지 했던 물건들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귀찮아서 다시 서랍에 넣지 않고 지저분하게 방치해 둔 물건들도 치워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할 때 한 바퀴 돌면서 하나 정리하고, 일하다가 또 생각났을 때 한 바퀴 돌면서 하나 정리하고, 그렇게 일주일을 해보니 벌써 거실이 많이 깔끔하게 정돈됐다.
예전에는 팬트리처럼 쓰는 신발장 문이 열려 있는 게 싫었다. 남편과 딸아이에게 제발 좀 문 좀 닫고 다니라고 잔소리했다. 안 쓰는 물건, 언젠가 쓸 것을 계획 없이 팬트리에 쌓아두다 보니 매우 지저분했었다. 지금은 신발 몇 개를 정리하고, 쌓여있던 물건들을 상자에 담아두었을 뿐인데, 팬트리 문이 열려 있어도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흡족한 마음에 잠시 바라보게 된다. 그래도 문은 좀 잘 닫았으면 좋겠다. 도대체 왜, 신발장 문을 안 닫는 건지 모르겠다. 열고, 꺼내고, 닫고. 이게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나처럼 바쁘게 일하는 사람은 몰아서 치우기보다는, 매일 한 두 개씩이라도 버리거나 치우는 습관을 들이는 게 훨씬 더 맞는 것 같다. 한 번에 다 하려면 금세 지쳐버리고, 애초에 귀찮은 마음에 나중으로 미루게 된다. 그리고 그 나중은 쉽게 오지 않는다. 하지만 하루에 하나를 버리겠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주 작은 마음만 슬쩍 먹으면 가능한 일이었다.
여러 자기 계발서를 읽고, 자기 계발 관련 유튜브 채널을 봐도 실천은 하지 않는 게 나였다.
첫째, 일단은 그걸 한다고 해서 변화될까 싶은 의심이 있었다.
둘째, 그런 '특별한' 습관을 만드는 건 나를 제외한 다른 '특별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왜 읽고 보냐고?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 새로운 시각이 궁금하니까.
셋째, 현실과 거리감이 많이 느껴졌다. 내가 읽었던 자기 계발서들이 유독 그렇게 현실과 동떨어진 느낌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자기 계발서를 좋아하지 않았다. 유튜브 영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정말 저런 걸 하는 사람이 있다고?
넷째, 그렇게까지 변화하고 성공할 의지가 없었다. 귀찮고 번거로운 건 딱 질색이었다.
다섯째, 아무리 훌륭한 조언이어도 남이 시키는 걸 잘 따라 하지 않는 유별난 성격이다. 그러나 스스로 깨달으면 잘 따르는 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여러모로 자기 계발은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며 하는 게 맞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말을 나는 좋아한다. 어수선한 게 너무 싫어서, '제발 좀 버리자'라고 시작한 일이 이렇게나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될 줄은 몰랐다. 유튜브에서 어느 전문가가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버려 보세요"라고 말한 것이 내 귀에 콱 박혀 버릴 줄은 몰랐다. 이것도 나의 변화할 '때'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스스로 물건을 정리하게 만드는 노하우도 알게 됐다. 책상이든 뭐든 아이방의 가구 배치를 조금 바꿔주면 된다. 얼마 전부터 가구 위치를 바꾸고 싶다는 아이와 의논해서 일단 책상 위치만 바꿔보기로 했다. 책상과 침대가 마주 보는 구조로 바뀌면서 책상에 먼지가 쌓이지 않게 물건을 올려두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니 알겠다며 스스로 정리를 시작했다. 그리고, 책상 위를 정리하라고 말했을 뿐인데, 서랍까지 깨끗이 싹 정리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게다가, 그 책상에 앉아서 스스로 공부를 하는 더 놀라운 기적까지 일어났다. 정리는 마법이다.
잔소리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하고 실천하며 변화를 만들고, 그 변화를 통해 좋아지는 기분을 경험하는 것. 나는 내 아이가 그런 멋진 경험을 많이 하면서 크면 좋겠다.
버리려고 꺼내 놓은 인견 이불이 있었다. 아이가 정말 좋아하지만, 너무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도 나고 찢어진 이불이었다. 아쉬워하는 아이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서 대충 실로 꿰매다가 아이 침대 위에 올려놓았다. 이불을 발견한 딸아이가 고맙다며 꽉 안아주고, 뽀뽀까지 받았다. 정말 좋아해서 버리고 싶지 않았단다. 버리지 않길 잘했다. 꿰매는 과정이 정말 귀찮았지만, 이젠 실을 바늘에 끼우는 것도 쉽지 않지만, 하길 정말 잘했다. 덕분에 사랑 받는 엄마가 됐다.
100일 비움 프로젝트는 버리기만 하는 게 아니다. 조금은 번거롭지만 고치는 수고를 통해 물건에게 제자리를 찾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6일 차 버린 것]
-책 2권
-장난감 상자
-작은 인형과 펭귄 조명
-일회용 반찬통
*배운 것 : 버리는 것보다 고쳐서 쓰는 게 좋을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