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느리고 느린

일주일 성공을 축하하며

by 정은

오늘 읽은 동화책 <느리고 느린 가게>.

나무늘보 아가씨가 숲 속 마을에 식당을 여는 이야기다.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식당이 생긴다는 소식에 기대한다. 나이가 많은 산양 할아버지는 이제 편하게 식사할 수 있겠다며 좋아하고,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 멧돼지 엄마는 정신없는 아침에 식사 해결할 곳이 생겼다며 신나 한다. 결과는 어땠을까? 개업날 아침 식당 앞에는 길게 줄이 늘어섰지만, 아무도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한다. 식당 주인이 느리고 느린 나무늘보 아가씨였기 때문이다.

"정--말--미--안--합--니--다--! 파--이--의--반--죽--이--..."

마을 사람들은 투덜대고 화를 내며 돌아가지만, 3일 뒤에 다시 재정비해서 오픈한다는 소식에 또 한 번 믿고 줄을 선다. 이번에는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책으로 확인해 보길)

모든 것이 느리고 느린 나무늘보 아가씨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빨리 할 수 있을까이다. 최선을 다해서 감자를 깎지만, 하나 깎는 데 반나절이 걸린다. 그래도 손님들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계속해서 새로운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계속해서 실패를 하지만, 그럼에도 나무늘보 아가씨는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을 빠르게 바꾸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속도에 맞는 시스템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자신을 무리해서 바꾸기보다는 자신에 맞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 주민들도 멋지다. 기다리다 지쳐서 화를 내고 갈지언정, 식당이 재오픈할 때마다 원하는 음식을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손님들의 기대가 나무늘보 아가씨를 변하게 하지 않았을까?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을 위한 책이지만, '느림'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여러 번 읽은 동화였지만, 오늘 책에 대한 생각이 다르게 다가온 건, 비움 프로젝트 때문이기도 하다. 욕심부려서 빨리 정리하겠다고 하다가 금세 지쳐버리는 것보다는, 지금처럼 천천히 조금씩 버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게 훨씬 더 좋다. 느릴지언정 미루지 않는다. 하루에 하나를 버려도 성공했다는 그 만족감이 좋다.


점점 더 빨라지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은 느리고, 느리고, 또 느리다. 그래도 대부분 개의치 않는다. 엘리베이터도 느리고, 지하철 교통 카드 인식마저도 느리다.

차가 막혀서 늦을 것 같아 발을 동동거리고, 감정이 요동치는 건 나 혼자일 뿐 기사 아저씨는 느긋하다. 심지어 심하게 차가 막혀서 기사 아저씨에게 미안할 지경인데,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기사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스타벅스에서 주문을 위해 오래 줄 서 있는 건 여전히 힘들다. 오늘 아침에도 그랬다. 앞에 있던 사람은 직원과 무슨 대화를 그리 하는지, 주문은 하지 않고 한참 무언가를 묻고 대답하기를 반복했다. 직원들과 눈이 마주쳐도 미안한 기색은 없다. 당연한 고객 응대처럼 생각한다. 결국 답답한 건 나 혼자다. 직원에게 어플로 주문하겠다는 사인을 보내고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을 했다. 그때까지도 그 사람은 계산을 마치지 않았다. 맙소사-


베트남에서는 한국 사람처럼 급하고, 한국에 가면 베트남에서처럼 행동이 느리다. 그래서 한국에 가면 종종 눈치가 보인다. 나름 빠릿빠릿하다고 생각하는데, 그새 계속 시스템이 빨라지는 한국에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적응할만하면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것.

빠른 한국 사회와 느린 베트남 사회 중에서 무엇이 더 좋은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베트남에 사는 동안에는 조금은 이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천성적으로 성격이 급해서 나 혼자 발 동동 구르고 붉으락푸르락하기도 자주 하지만, 그래봐야 나 혼자 이상한 사람이 되니, 어우러져서 적당히 느린 삶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다.


비움을 시작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이다. 그런데 아직 건드리지도 못한 공간이 있다. 주로 내가 사용하는 서재 겸 공부방이다. 안 읽는 책, 오래된 책, 이상한 책이 꽤 있지만 아직은 정리할 자신이 없다. '책'이라는 이유로 말이다. 아이가 이제는 커서 안 읽는다고 꺼내준 책도 아직 떠나보내지 못했다. 내가 읽을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서재 정리에 대해 생각과 부담은 많지만 나무늘보 아가씨처럼 조금씩 느리게 나의 속도대로 정리해 보기로 했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100일 즈음에는 나도 나의 느리고 느린 비움을 성공해 낼 수 있지 않을까?


7일 차.

버리는 것에 대한 강박을 비우고, 생각을 내려놓자.

비움이 생각이 아니라 습관이 되기를 기다리자.


[7일 차 비운 것]
-아이가 유치원 때 만들어 아직 버리지 못한 작품 몇 개
KakaoTalk_20250514_000836521.jpg 사진으로 간직할게. 하나 새로 그려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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