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딸
고추장 가져갈까?
-아니
김치 많이 가져갈까?
-아니.
호치민에 오기 전부터 엄마는 바빴다. 엄마가 말하는 목록을 들어보면, 과연 그걸 비행기에 다 실을 수 있을까 싶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에게 하나라도 더 가져다주고 싶은 엄마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출발 이틀 전부터는 수화물 무게를 맞추느라 짐을 계속 빼는 고생을 하셨다고 한다. 고추장도 못 가져오고, 맛있다고 챙겨놓은 김치도 못 가져오셨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오랜만에 와서 지내면서 웬만한 한국 식자재는 다 있는 마트에 가 보더니 굳이 한국에서 많은 걸 무겁게 들고 오지 않아도 되겠다며 안심하셨다.
한 달 동안 엄마가 계시는 동안 우리 집 냉장고는 꽉꽉 차 있었다. 집에서 먹을 일이 많지 않았는데도, 엄마는 마트에서 싸다고, 신기하다고, 좋은 거라고 식재료를 사다 날랐다. 그리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드셨다. 왜 안 먹느냐고 타박도 많이 들었다. 밥 해주려고 오신 거냐, 그냥 엄마가 편하게 쉬다 가셨으면 좋겠는데, 엄마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냉장고가 꽉 차야 마음이 든든한 옛날 분이시다.
엄마가 한국으로 가시고 가장 먼저 한 일은 냉장고 비우기였다. 아까워서 넣어둔 남은 음식들을 정리하고, 사다 놓은 재료 중에 시든 것들도 다 정리했다. 싱크대를 열다가 깜짝깜짝 놀랐다. 엄마가 계시는 동안 주방을 내어드렸었는데, 여기저기 빈 공간마다 김, 미역으로 채워져 있었다. 엄마는 못 말린다. 비닐봉지를 담아두는 통도 엄마가 어느 하나 버리지 않고 넣어둔 비닐봉지들 덕에 터져나갈 지경이었다.
그리고 호치민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으니 저렴한 마늘을 잔뜩 사다가 까서 다진 마늘 많이 만들어 두고 가겠다며 출국 전날 내내 마늘만 깐 엄마 덕에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슬퍼할 새도 없이 한 시간 동안 마늘을 갈았다. 차곡차곡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은 다진 마늘을 사진 찍어서 엄마에게 보내드렸고, 엄마는 매우 만족해하셨다.
맥시멀 라이프를 사는 엄마와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나의 생활 습관은 참 다르다. 예전엔 이 문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지만, 지금은 잘 싸우지 않는다. 멀리 떨어져 지내느라 자주 못 만나는 것도 죄송한데, 싸우면서 모녀 지간 감정 상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뒤늦게 철든 나는 엄마가 계시는 동안 엄마가 사고 싶은 식자재를 마음껏 살 수 있게 해 드렸고, 냉장고를 가득 채우든, 비닐봉지가 넘쳐나든 상관하지 않았다. 나이 들어가는 엄마를 보니, 함께 있는 시간만이라도 즐겁고 편하게 해드리고 싶었다.
이 집에서도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는 건 나 혼자다. 남편과 아이의 일상을 보면 맥시멀 라이프다. 싸워서 무엇하겠는가. 미니멀의 장점을 계속 보여주는 수밖에. 가볍게 살아도 불편하지 않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주면 된다. 그래서 무리하지 않는다.
지금도 냉동실 한 칸을 가득 채운 다진 마늘을 볼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일 년 동안 다진 마늘 값은 굳었다. 그리고 종종 맥시멀한 냉장고와 주방이 되어도 좋으니, 엄마가 자주 오셨으면 좋겠다.
[8일 차 버린 것]
-칫솔(새것으로 교체)
-세탁망 역할을 못하는 세탁망(세탁이 끝나면 지퍼가 열려 있는 이상한 세탁망)
-냉동실에 보관 중인 식품들(버렸다는 표현보다는 하나씩 꺼내서 먹는 중)
-더이상 쓰기 힘든 몽당연필 9개
*버리지 못한 것
달랏에서 산 방울 달린 털모자. 방울이 다 해졌는데, 꿰매 달라고 함.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버릴까 하다가 다시 넣어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