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차] 사슴의 날?

책 정리는 시작도 못하고

by 정은

책을 정리하다가 더 이상 책꽂이에 여유 공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버리는 책은 없고, 새로운 책은 계속 들어왔으니 당연하다. 정리해야 하는데, 아직 책 정리는 자신이 없다. 그냥 버려져 파지가 되는 것은 아깝고, 나눔을 하자니 누가 가져갈까 싶다.

한국이라면 중고서적으로 팔거나, 당근으로 나눔을 해도 될 텐데, 여기에서는 그마저도 번거롭고 어렵다.


책은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오늘의 고민이다.

정리하고 싶은 책들은 있다.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친구가 급하게 주고 간 열 권 정도의 책은 모두 자기 계발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자기 계발서를 잘 읽지 않는다. 내 마음을 끌어당기는 책도 없다. 그게 벌써 3년 째다.

몇 달 전에도 다른 지인이 아이에게 읽으라며 또 책을 열 권 정도 주고 가셨지만, 지금껏 아이도 나도 읽지 않고 있다. 둘 다 책을 좋아하지만, 받은 책들 모두 우리의 책 취향과는 다르다. 게다가 오래된 책들이라 아이도 눈에 만족스럽지 않은지 읽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버리지는 못하겠다. 언젠가는 방학 때라도 읽지 않을까? 아니, 평생 안 읽을 걸 뻔히 안다. 집에 남은 책이 그 책들 뿐이라고 해도 안 읽을 것 같다. 그런데도 못 버리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이쯤 되면 책 문제도, 비우고 정리하는 문제도 아니다. 그저 버리지도 못하면서 생각과 고민만 많은 성격 탓이다. 고민만 하다가 생각의 무게를 버티지 못해 포기하고 방치하기 때문이다.


생각에도 신호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적절히 멈춰줘야 한다. 지금은 잠시 멈춰야 할 때이다.


고민 많은 날에도 웃을 일은 있다.

8살 학생이 간식을 들고 왔다. "오늘 사슴의 날이래요."

엄마에게 '스승의 날'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아이에게는 '사슴의 날'이라고 들렸나 보다. 귀엽게도 그럴 수 있다. 그렇게 '사슴'이 된 나는, '사슴'이 되지 않기 위해 열심히 가르쳐야겠다. 책을 버리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언젠가, 학생들이 읽지 않을까? 아무래도 그것도 아닌 듯하다.


정리하자. 대신,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를 고민하자.


[9일 차 버린 것]
-아이가 유치원 때 쓰던 작은 밥그릇과 국그릇
-7년 전쯤 유행하던 바캉스 밀짚모자
-어린이 옷걸이(아직 쓸만한 데, 걸 수 있는 옷 사이즈가 이제는 없다)
-서랍 속 여러 프린트 자료들
KakaoTalk_20250516_000508865.jpg 나는 사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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