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차] 버리는 연습은 살아가는 연습이다

정리는 끝이 없다

by 정은

주방에 있는 플라스틱 정리하는 날.

주방에서 아예 플라스틱 제품을 안 쓰는 건 어렵겠지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보기로 했다. 정리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족의 건강은 물론 지구 환경까지 돌아보게 됐다. 구석구석 숨어있던 플라스틱을 꺼내보니 여전히 꽤 많았다. 이미 한 차례 버렸던 숟가락, 포크도 꽤 나왔다. 다른 데를 뒤져보면 또 나올 것 같다. 늘 느끼는 거지만, 한번 자리 잡은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영화관에서 샀던 캐릭터 컵, 물병, 구석에 숨어 있던 반찬통까지 모두 꺼냈다. 주방에도 예쁜 쓰레기는 많았다. 나는 더 이상 쓰지 않겠지만, 누군가에게는 아직 필요한 물건일 수 있을 테니 따로 모아 두었다.


이렇게 모아둔 것을 바로 쓰레기장에 갖다 버리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몇 년 전에 바닥이 긁힌 프라이팬을 버리려고 내놓았을 때, 그걸 본 베트남 친구가 멀쩡한 걸 왜 버리냐며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그 후로는 어떤 물건이든 버릴 때는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조심스럽기도 해서 일단 따로 모아두었다가 정리하는 편이다. 그때 그 친구는 나를 꽤나 부자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겠다고는 했지만, 아직 유리병이나 스테인리스 용기로 바꾸는 실천까지는 하지 못했다. 새로운 물건을 사는 것도 고민되기 때문이다. 정리한다면서 또 다른 소비를 하는 건 아닐까, 오히려 지금 있는 것들을 끝까지 쓰는 게 더 맞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혹시 정리라는 이름 아래, 통장이 텅장이 되는 또 다른 소비 습관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당장 바꾸기보다는, 먼저 나의 ‘사용 습관’을 살펴보기로 했다. 무엇을 자주 쓰고, 무엇이 꼭 필요한지 하나씩 들여다보는 중이다. 일단은 사용하지 않는 것들부터 정리하고 버리고 있다.


조금 느리더라도 제대로 바꾸고 싶다. 버리는 것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시 채울 때는 신중하고 싶다. 덜 갖고, 덜 버리고, 더 오래 쓰는 쪽으로. 지금은 그저 '불필요한 것들을 덜어내는 시간'일 뿐이지만, 언젠가는 그 빈자리를 더 건강한 것들로 채울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정리는 끝이 없다.

하지만 그 끝없는 과정 속에서, 나는 조금 더 가볍고 건강해지는 삶을 배워가고 있다.

조금씩, 천천히, 하지만 분명히 나아가는 중이다.


KakaoTalk_20250528_235111855.jpg 굿즈의 유혹은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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