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아이가 학교 끝나고 친구 집에서 놀다 오겠다고 했다. 오랜만에 남편과 저녁은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로 했다. 음식과 함께 온 일회용 수저를 보고 잠시 고민에 빠졌다.
'새로 온 건데, 여행 가거나 어디 나갈 때 쓰지 않을까? 숟가락도 튼튼한데...'
비움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나는 ‘사용하지 않는 일회용품은 보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이런 작고 사소한 습관 하나를 바꾸는 일도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몇 시간 동안 일회용 수저 세트는 테이블 위에 그대로 놓여 있었고, 지나다닐 때마다 보면서 생각했다. '버릴까? 말까?'
결국은 버리기로 했다. 마음을 정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아무 미련이 남지 않았다. ‘별거 아닌 걸로 너무 고민했나?’ 싶기도 했지만, 내게는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건 ‘일회용품’이라서가 아니라, ‘새것’이었기 때문이다.
정리를 하면서 나에 대해 알게 된 습관들이 있다.
습관적으로 일회용품을 보관한다.
미리 쟁여두는 물건이 너무 많다.
'언젠가' 쓸 것 같아 서랍 속에 넣어둔 물건을 잊고 지낸다.
눈에 보이는 곳은 깨끗한데, 보이지 않는 수납장은 엉망이다.
왜 '새것'을 버리는 데 망설일까?
왜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이유로 물건을 쌓아두는 걸까?
첫 번째 질문의 답은, 물건 하나하나에 의미를 과하게 부여한 내 태도에 있고, 두 번째 질문의 답은 아마도 불안함 때문일 것이다.
나는 ‘미니멀리스트’도 아니고, 물건에 특별히 애정을 쏟는 타입도 아니다. 그저 정리를 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날마다 버리고 비우는 것이 때로는 부담이 된다. 혹시 나는 지금, 불필요한 에너지를 들여 또 다른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조금 다른 방향에서 정리를 이어가 보기로 했다. 지치지 않기 위해, 나만의 기준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해보기로 했다.
1. 결정하기 어려운 물건은 '임시 보관 박스'로
당장 버릴지 말지 결정하지 못한 새 물건이나 애매한 물건은 일단 따로 모은다. ‘결정의 날’을 매주 정해 일주일 안에 냉정하게 판단한다. 버릴 것인지, 다시 쓸 것인지, 자리를 찾아줄 것인지.
2. ‘미리 쟁여두기’는 불안의 표현임을 인정하기
나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미리 쟁여두는 습관이 있다. 하지만 이제는 "없어도 괜찮아", "나중에 필요하면 다시 생각해 보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로 했다.
3. 수납장은 언제나 여유롭게
눈앞에 어지러운 물건을 무조건 밀어 넣는 건 회피다. 겉으로는 깔끔해 보여도, 그건 정리가 아니라 은폐다. 필요하다면 수납장으로, 애매하다면 임시 박스로 보내자. 수납장에는 항상 여유가 있어야 한다.
겉으로는 깔끔해 보이지만, 수납장 속은 어수선한 집. 그리고 겉으로는 괜찮은 척하지만, 마음속은 뒤죽박죽일 때의 나. 서랍 속의 정리 상태는 내 마음과도 닮아 있었다. 내가 나를 더 자주 들여다보고, 진짜 필요한 것을 구별하는 연습을 한다면, 언젠가는 내 마음도, 내 집도, 가벼워질 수 있지 않을까?
정리는 결국 삶의 태도이자 방향이다. 불안으로 쌓아 올린 물건들 속에서, 나를 지켜줄 기준을 세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