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기준을 바꿔야겠다.
어린이들의 대화를 듣다 보면 재미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삶의 철학이 담겨 있기도 하다.
어린이 1 : 나 이번에 중국어 시험 42점 맞았다.
어린이 2 : 오, 잘했네.
어린이 1 : 지난번에는 27점이었는데, 엄청 잘 봤지. 앞으로도 계속 오를 거야.
어린이 2 : 맞아. 진짜 잘했어.
나 : (이렇게 칭찬하는 걸 보니 외국 학교에서는 50점 만점인가 보네.)
어린이 1 : 넌 이번에 88점 맞았지?
어린이 2 : 응. 88점 맞았어.
나 : 잠깐만, 88점? 100점이 만점이니?
어린이 1,2 : 당연하죠!!! 100점이죠.
나 : 42점 잘 본 거라고 해서 50점 만점인 줄 알았어.
어린이 1 : 얘는 중국어 잘해요. 전 중국어 어려워요.
나 : 그 점수 괜찮아?(나, 혹시 꼰대 마인드인가?)
어린이 1 : 네. 못하는데, 이번에 올랐잖아요.
밝고 긍정적인 어린이들이다. 늘 고민이 많은 나에게 이 대화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맞다, 이렇게 생각해야 하는데. 난 왜 늘 부족한 것만 바라보며 살았을까.’
42점을 받은 아이는 88점을 받은 친구를 부러워하지도, 자신의 점수를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88점을 받은 아이 역시 자랑하거나, 친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그저 즐겁게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서로 비교하지 않았고, 비교할 이유도 없어 보였다.
나는 어떤가.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비교의 늪에 빠진 채 살아가고 있다. 사는 곳을 비교하고, 자녀를 비교하고, 학교를 비교하고, 직업을 비교한다. 비교는 끝이 없다.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만 봐도 많은 사람들이 비교가 행복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아간다. 그건 절대적인 행복의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 아닐까? 상대적인 기준에 익숙해진 우리는, 늘 나보다 나은 누군가를 기준으로 삼고 비교하며 살아가다보니, 행복할 겨를이 없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어린이들의 대화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줬다. 다른 누군가보다 잘했는지가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나아졌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비교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과거의 나’가 되어야 했다. 어린이들의 건강한 자아가 부러웠다.
하지만 어른으로 살면서 비교하지 않는 삶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고 보면 비움도 용기가 필요하다. 버리고 싶지만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것들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내 자존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물건을 버리는 게 아니라, 그 물건에 담긴 ‘내 기준’을 버리는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다는 기준. 비교가 일상이 된 생각 때문에 나는 버리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아이들을 보면서 배운다.
집을 정리하면서도 계속 배운다.
오늘 내게 큰 가르침을 준 아이들이 계속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길 응원한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어린이들의 그 마음을 지켜주고 싶다.
비교 당하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