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차] 생각을 바꾸니 웃는다

세입자의 슬픔을 담아

by 정은

생각에 질 수 없다.

갑작스러운 소동이 하루를 망쳐버린 것 같아 화가 났다. 하지만 이사 스트레스와 불안한 마음에 내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다.

이유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이사 가야 할 이유를.


1. 거실 방충망이 헐거워서 자주 창틀에서 빠지고, 손가락이 찔리기도 해서 불편하다.

2. 집안 곳곳, 옷장 안까지 개미 출몰이 잦다. 일일이 셀프 방역하는데 시간을 많이 쓴다.

3. 거실 타일은 늘 먼지가 깔린 듯하다. 게다가 금방 오염된다. 타일도 좋은 걸 써야 한다는 걸 알았다.

4. 안방 바닥에 깔린 마루가 수축되서 사이사이 벌어진 틈이 많다. 안 고쳐준다고 해서 일일이 틈새를 메꾸는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

5. 주방이 매우 협소하다. 수납 공간은 충분하지만, 요리할 때 필요한 공간은 부족하다.

6. 문 열어놓고 지내는 앞집이 너무 시끄럽다. 현지 음식 냄새는 늘 우리 집까지 들어온다.

7. 동향인 데다 해가 강해서 책 기둥의 빛바램이 심하다. 책장이 햇빛을 보면 안 되기 때문에 가구 이동에 한계가 많다.

8. 욕조가 없다. 일 년에 몇 번 없지만, 가끔은 거품 목욕을 하고 싶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음이 좀 가라앉는다. 이사를 가라면 가도 괜찮겠다는 마음이 든다.

요즘 집값도 오르고, 괜찮은 집이 없다는 소문이 많아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이 집을 떠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을 비웠다. 손에 꼭 쥐고 있다고 해서 내 뜻대로 되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안다.


아무리 집이 없다한들 우리 식구 지낼 곳 어디 없겠는가. 집값이 비싸졌다면, 그만큼 또 더 열심히 일해서 벌면 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또 전투적으로 일을 해보려고 한다. 어려운 문제를 잊기엔 바쁜 게 가장 좋다. 다른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러다 상황이 바뀌어 지금 사는 집에 계속 살게 된다면? 그땐 또 신나게 이 집에 살아야 할 이유를 서른 가지쯤 찾으면 된다.

떠나도 좋고, 머물러도 괜찮다. 중요한 건 지금의 나와 우리 가족이 괜찮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게 오늘도, 정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당분간 이 풍경을 기억하기 위해 창밖을 자주 봐야겠다. 추억은 비움이 아닌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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