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차] 평화롭지 않은 하루

정리의 힘이 발휘되는 시간

by 정은

물건도 마음도 함께 정리하며 사는 요즘이다. 하루하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아이도 학교에 간다며 일찍 집을 나섰다. 일정도 여유로워서 모든 게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아이가 양호실에 있으니 집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침에 밥도 잘 먹고 갔고, 컨디션도 좋았는데 무슨 일일까. 체육시험이 있었는데 뛰다가 다친 걸까? 걱정스러웠다.

아이를 픽업해서 바로 데려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직접 양호실에 와야 한다고 했다. 양호실 선생님은 한국어 통역을 도와줄 한국인 고등학생까지 불러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아마도 내 아이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라, 스스로 상황을 설명하고 통역하긴 어려울 거라 판단하신 듯하다.

아이는 몸이 아프거나 다친 건 아니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 같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동안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가 터져버렸던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부모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에게 상황 설명도 잘해주시고 도와주셨다. 평소 웬만하면 양호실에 발도 들이기 힘들다고 하는데, 아이의 힘듦을 알아봐 주셔서 참 감사했다.

오늘 하루는 일찍 가서 쉬는 게 좋겠다고 해서 아이를 조퇴 시키고 집에 왔다. 집으로 오는 길,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쓰러지듯 잤다. 저녁이 되어서야 기분 좋은 얼굴로 일어났다.


낳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는데, 왜 이렇게 신경쓰이는 일은 많은지 모르겠다. 매번 어렵다.


"엄마, 난 힘든 일이 많거든. 근데 말을 못하겠어. 어른들이랑 친구들은 다 내가 엄청 밝은 아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힘든 생각 하는 거 안 믿어줄 것 같아."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누구나 힘든 상황은 있는 거라고, 나도 그럴 때가 많았다고. 그리고 네가 말했을 때 너를 이해하고 응원해 줄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아이 : 엄마, 근데... 나 힘든 거 알았어?
나 : 그럼, 알고 있었지.
아이 : 근데 왜 얘기 안했어?
나 : 내가 너한테 얘기하면 네가 더 힘들 수 있으니까,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엔 이렇게 든든한 네 편이 되어 줄 수 있잖아.
아이 : 그렇구나.
나 : 앞으로는 더 편하게 얘기해도 돼.
아이 : 응. 알겠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오늘은 물건 정리보다 마음 정리가 더 시급한 날이었다. 내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무엇보다 다행인 건, 내가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도 한 달 사이에 제법 단단해졌나 보다.


아이를 힘들게 했던 선생님에 대해서도 아이와 함께 생각 정리를 해보았다.

첫째, 그 선생님은 너만 다그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비슷하시니, 그나마 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너뿐 아니라 선배, 후배, 다른 선생님들도 그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셋째, 곧 한 학년이 끝난다. 시험도 다 끝났으니 당분간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다. 그것도 정말 다행이다.


오늘까지 쌓였던 힘든 마음을 잘 비워내고, 그 자리에 단단함이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조용히(속으로는 매우 분주하게) 정리했다.

아마도, 지난 한 달 동안의 정리 중 가장 큰 정리가 아니었나 싶다.

비 온 뒤 맑아진 하늘에 무지개가 뜬 것처럼. 괜찮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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