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힘이 발휘되는 시간
물건도 마음도 함께 정리하며 사는 요즘이다. 하루하루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오늘은 여느 때보다 평화로운 날이었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아이도 학교에 간다며 일찍 집을 나섰다. 일정도 여유로워서 모든 게 좋았다.
그러나 언제나 변수는 있는 법.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지금 아이가 양호실에 있으니 집으로 데려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아침에 밥도 잘 먹고 갔고, 컨디션도 좋았는데 무슨 일일까. 체육시험이 있었는데 뛰다가 다친 걸까? 걱정스러웠다.
아이를 픽업해서 바로 데려오면 되는 줄 알았는데, 직접 양호실에 와야 한다고 했다. 양호실 선생님은 한국어 통역을 도와줄 한국인 고등학생까지 불러 상황을 설명해 주셨다. 아마도 내 아이가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라, 스스로 상황을 설명하고 통역하긴 어려울 거라 판단하신 듯하다.
아이는 몸이 아프거나 다친 건 아니었다. 시험에 대한 부담이 컸던 것 같다. 긴장을 너무 많이 해서 그동안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가 터져버렸던 것이다. 아이의 이야기를 다 들은 선생님은 부모님이 오셨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에게 상황 설명도 잘해주시고 도와주셨다. 평소 웬만하면 양호실에 발도 들이기 힘들다고 하는데, 아이의 힘듦을 알아봐 주셔서 참 감사했다.
오늘 하루는 일찍 가서 쉬는 게 좋겠다고 해서 아이를 조퇴 시키고 집에 왔다. 집으로 오는 길,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서는 점심도 먹지 않고 바로 쓰러지듯 잤다. 저녁이 되어서야 기분 좋은 얼굴로 일어났다.
낳으면 아이들은 알아서 큰다는데, 왜 이렇게 신경쓰이는 일은 많은지 모르겠다. 매번 어렵다.
"엄마, 난 힘든 일이 많거든. 근데 말을 못하겠어. 어른들이랑 친구들은 다 내가 엄청 밝은 아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러니까 내가 힘든 생각 하는 거 안 믿어줄 것 같아."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누구나 힘든 상황은 있는 거라고, 나도 그럴 때가 많았다고. 그리고 네가 말했을 때 너를 이해하고 응원해 줄 사람이 주변에 많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아이 : 엄마, 근데... 나 힘든 거 알았어?
나 : 그럼, 알고 있었지.
아이 : 근데 왜 얘기 안했어?
나 : 내가 너한테 얘기하면 네가 더 힘들 수 있으니까,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지. 그리고 오늘 같은 날엔 이렇게 든든한 네 편이 되어 줄 수 있잖아.
아이 : 그렇구나.
나 : 앞으로는 더 편하게 얘기해도 돼.
아이 : 응. 알겠어. 그래서 있잖아 엄마....
오늘은 물건 정리보다 마음 정리가 더 시급한 날이었다. 내 마음도, 아이의 마음도.
무엇보다 다행인 건, 내가 아이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나도 한 달 사이에 제법 단단해졌나 보다.
아이를 힘들게 했던 선생님에 대해서도 아이와 함께 생각 정리를 해보았다.
첫째, 그 선생님은 너만 다그치거나 미워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에게 비슷하시니, 그나마 공평하다고 볼 수 있다.
둘째, 너뿐 아니라 선배, 후배, 다른 선생님들도 그 선생님에 대해 알고 있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셋째, 곧 한 학년이 끝난다. 시험도 다 끝났으니 당분간은 마음 편히 지낼 수 있겠다. 그것도 정말 다행이다.
오늘까지 쌓였던 힘든 마음을 잘 비워내고, 그 자리에 단단함이 자리 잡으면 좋겠다.
그렇게, 오늘 하루를 조용히(속으로는 매우 분주하게) 정리했다.
아마도, 지난 한 달 동안의 정리 중 가장 큰 정리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