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비우고 있을까
지인이 이사를 한다고 했다. 멀리 떠나는 건 아니고,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다른 동으로 옮긴단다.
일주일 전, 거실에 박스가 하나둘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사 하루 전날에 들러보니, 이미 살림이 많이 줄어 있었다. 짐이 많지 않아 이삿짐센터 없이 가족 셋이 2~3일 동안 셀프로 옮겼다고 했다. 전자 피아노와 책장 같은 큰 짐들도 카트로 옮겼단다.
세 식구의 살림이 그렇게 가볍고 단출하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 집이야말로 언제든 호찌민을 떠나야 한다면 당장 캐리어 하나에 필요한 것만 담아서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바라는 모습을 그분은 살고 있었다.
베트남에 사는 한국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주거에 정성을 다하고, 누군가는 언제든 떠날 마음으로 가볍게 산다. 나는 언젠가 이 나라를 떠날 날을 생각하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지금의 적당한 살림에 만족한다. 많이 가질수록 베트남에서의 삶의 무게도 무거워지는 것 같아 살림은 더 이상 늘리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니 불편하거나 아쉬움은 크게 없다.
오늘 아침엔 볕이 좋았고, 미세먼지도 없었다. 보송보송한 잠자기를 기대하며 이불 빨래를 하고, 베란다에 널어놓고 외출한 사이에 폭우가 쏟아져 돌아오자마자 다시 빨래를 해야 했지만, 건조기가 없는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분도 마찬가지였다. 베트남에서 살아야 하는 기간이 정해져 있으니, 늘 가볍게 살고 있다. 둘 다 언젠가 가볍게, 망설임 없이 떠나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지만, 그분은 나보다 훨씬 더 가볍게 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
짐이 적을수록 이사는 쉬워지고, 비울수록 삶은 가벼워진다. 비움 프로젝트라고는 하지만, 작은 것들만 열심히 버리고 있을 뿐, 여전히 큰 것들 앞에서는 망설이기 일쑤다. 꼭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산다고 생각하지만, 난 너무 많은 걸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무엇을 얼마나 더 비워야 할까. 침대와 냉장고를 다 정리하고 풀 옵션 집으로 이사 가면 될까? 그럼 많이 가벼워질까? 방 두 곳에는 침대가 있어야 하고, 방 하나는 서재용으로 비어있어야 한다. 거기에 책장과 수납장까지 넉넉하게 있는 풀옵션 집을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사는 현실이다. 그렇기에 당장 버리는 것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그럼에도, 가벼운 삶을 꿈꾸며 나의 짐을 다시 들여다본다.
어쩐지 오늘따라 미니멀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나무가 옆으로 꺾일 듯이 세찬 바람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 점심을 먹으면서도 베라다의 이불 빨래가 걱정됐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날씨에는 차를 타고 집에 가기도 힘들다. 집에 간들 빨래가 멀쩡할 리 없다. 이미 다 젖어버렸을 거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마음을 비웠다.
"다시 빨지 뭐."
예전 같았으면 온통 빨래 걱정에 빠져 있었을 테지만, 요즘 나는 이런 사소한 걱정은 잘하지 않는다. 걱정한 들 달라지는 게 없다는 말이 이제야 귀에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