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 예고 없는 전화가 불편한 이유

by 정은

오늘 아침, 평소 자주 연락하지 않던 지인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시간 괜찮을 때 통화할 수 있을까?"
아직 아침 8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회의가 있어서 준비를 하다가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슨 일일까? "통화할 수 있을까?"라는 그 분의 말이 '가벼운 수다'는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예전에도 몇 번, 예상치 못한 통화에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 지인이어서 긴장도 됐다.


사실 나는 전화포비아가 있을 만한 세대는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화가 싫은 건 아니다. 반가운 전화도 있다. 단지 ‘예고 없이’ 오는 깊은 이야기, 갑작스러운 무게에 대비하지 못한 채 받는 통화가 불편한 것 같다. 특히 평소 연락이 드문 지인에게 갑작스러운 통화 요청을 받으면, 마음 한구석이 조마조마해진다. 내가 이 분을 싫어해서도, 피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그냥, '무슨 일이지?'라는 긴장감과 '내가 이 이야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우리 가족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은 걱정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대화의 예고편’이 있었으면 좋겠다.

“○○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시간 괜찮을 때 통화하자.”

이런 한 문장만 더해줘도 마음이 훨씬 느긋해질 것 같다. 괜한 상상도 줄어들고, 여유도 생길 테니 말이다.


요즘은 메시지로 대부분의 소통과 감정을 주고받는 시대다. 그만큼 전화는 더 ‘특별한 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전화에는 더 섬세한 에티켓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전화 포비아라는 말이 괜히 생겼을까.


어떻게 답을 해야 하나 하다가, 일단 회의가 있기도 해서 끝나는 대로 연락을 하겠다고 했다.

"지금 바로 통화는 어려워요. 그런데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네요. 간단하게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다행히 내가 걱정했던 내용은 아니었고, 답장을 받으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오늘은 ‘예상치 못한 긴장’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상대가 나쁜 건 절대 아니다. 다만, 그 짧은 메시지를 계기로 내가 왜 그렇게 긴장했는지를 돌아보며, 내 안에 쌓여 있던 작은 불안들을 발견하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혼자 신경 쓰며, 전화를 받기 전까지 오만 가지 상상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필요하면 표현하고,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가볍게 털어내려고 노력한다.


이 변화는 아마도, 39일간의 ‘비움 프로젝트’ 덕분일 것이다. 겉으로는 물건을 비우는 일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내 마음도 함께 정리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비움은 단지 물건을 줄이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연약한 내 마음의 흔들림을 가라앉히며, 관계 속에 쌓인 감정을 가볍게 풀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비우고 싶었던 것이다.


작지만 분명한 변화, 그래서 나는 오늘도 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38일] 고마움을 꺼내 쓰는 방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