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일] 디지털 세상 속 아날로그 인간

전화기를 전화기라고 했을 뿐인데

by 정은
나 : 얘들아, 선생님 전화기 못 봤니?
학생 : 전화기요?
나 : 아, 여깄다!! 선생님 전화기 찾았어.
학생 : 그게 전화기예요? 그건 전화기가 아니잖아요.
나 : 이게 전화기 아니면 뭐라고 그래?
학생 : 폰이요.
나 : 전화를 하는 기계니까 전화기도 맞지 않아? 그럼 뭐라고 그래?
학생 : 줄이 달린 걸 전화라고 하고, 스마트폰은 폰이라고 하거나, 핸드폰이라고 하죠.


스마트폰을 '폰'이라고 부르는 걸 누가 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전화기'를 찾다가 옛날 사람이 돼 버렸다. 아이들 말에 따르면 전화기는 수화기에 줄이 달린 옛날 물건이고, 지금 우리가 쓰는 기계는 전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유튜브도 보고, 게임도 하고, 인터넷도 할 수 있으니 '전화기'가 아니라 '폰'이라고 해야 한단다. 아이들 말도 일리가 있다. 요즘 쓰는 전화기는 단순한 통화 도구가 아니다. 내 전화기도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안 오는 날이 더 많기는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폰'도 '전화기'를 뜻하는 영어 단어인데, 왜 '폰'은 되고, '전화'는 안 된다는 걸까.

억울한 마음에 중고등학생들에게도 물어봤지만 대체로 의견은 같았다. "선생님, 전화기라고 하는 건 좀 올드해요." 내가 그렇게 옛날스러운 사람이었던가? 말 습관이라는 게 쉽게 바뀌는 것도 아니라 나도 모르게 자꾸만 '전화기'라는 말이 튀어나오니, 당분간 아이들에게 올드한 이미지를 바꾸기는 어려운 것 같다.


전화기 논쟁(?)은 좀 억울하긴 했지만,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 맞다.

아날로그에서 AI형 인간으로 변화해야 하는데, 아직은 어렵다. 매주 직접 노트에 간단하게 손으로 일주일 일정을 한눈에 보기 좋게 정리하는 게 좋고, 한 달 계획은 탁상 달력에 메모하는 게 더 익숙하다. 일정에 변경이 생기면 바로바로 고치기도 좋다.

노션도 써보고, 얼마 전에 다시 아이폰 스케줄러도 사용하려고 일정을 모두 입력했지만 습관이 안 되어서 있으니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폰에 정리한 일정은 한눈에 들어오지 않으니 날짜 확인 외에는 열어볼 일이 없었다. 노션이 좋다고 해서 다양한 페이지를 만들어 인터넷 첫 화면으로 설정해두기도 했지만, 내 일상은 큰 변화 없이 매주 반복되는 일과이기 때문에 아날로그 방식으로도 충분히 관리가 가능했다.

요즘은 회사 출근을 안 하니 더 필요성을 못 느끼지만, 회사에 다닐 때도 디지털 도구가 업무 능률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물론 내가 제대로 프로그램을 활용하지 못한 문제일 수도 있고, 태생이 디지털 세대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노트북 배경화면에 일주일의 시간표를 띄어놓고, 일요일 저녁이나 월요일 아침에 한 주의 일과를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을 끝낼 때마다 하나씩 빨간 볼펜으로 지워가며, 이만큼 하루를 살아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좋다. 그 소소한 성취감은 디지털로는 대체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주변 사람들은 내가 최신 기기를 잘 다루고, 디지털에 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최신 프로그램을 잘 활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 필요에 따라서만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가장 최신의 것들에 무조건 적응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트렌드라고 해서 따라 하고 바꾸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변화에는 관심을 두지만, 익숙함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나름대로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오늘도 사용하지 않는 어플 몇 개를 정리했다. '폰'의 무게가 가벼워진 건 아니지만, 화면이 정리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비움은 나에게 맞는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KakaoTalk_20250619_003549621.jpg 디지털 세대와 함께 살아가는 아날로그 세대. 열심히 따라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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