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가는 중입니다

어딘가에 도착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by 정은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바빴던 날들.

이 머나먼 호치민 땅에 한 집에 붙어 사는 가족이라고는 남편과 나, 딸 이렇게 셋뿐인데, 동시다발적으로 각자에게 일이 생기면서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다른 데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어쨌든 가족들에게 생긴 일을 감당하는 건 내 몫이기도 했다.


가족의 무게도 자녀의 무게도, 삶은 참 무거웠다. 웃는 것도 힘들었고, 먹는 것은 사치스러웠다. 밤마다 잠을 자는 게 아니라 기절하는 것 같았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면 모든 것이 리셋되어 아무 일 없이 흘러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상황만큼이나 마음이 힘들다보니 사람도 잘 만나지 않았다. 누군가를 만나면 내색하지 않으려 해도 내 어려움이 속절없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 한동안 스스로를 고립시켰다.


그래도 일상은 흘러갔고, 살아야 했다. 일상이 무너지면 겨우 겨우 붙들고 있던 마음까지 무너질 것 같아 하던 것들은 멈추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그런 다짐으로 일주일에 한 번 있는 PT를 받으러 갔다. 몸을 힘들게 움직이면 잠시라도 문제 상황에서 멀어지고, 마음도 단단해지지 않을까 하는 은근한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순간 찾아온 두려움에 숨이 막히면서 현기증으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울고 싶었다.


회피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른 곳으로 떠나면 나아질까. 수없이 고민하고, 의논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도전이 가능할까.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는 해결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밉고 답답할 때가 있어도 어려울 때 얘기할 상대는 남편이었다.


그렇게 애쓰는 와중에 중학생 딸아이는 그동안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가족과 나누는 시간이 없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럼 그동안 우리 가족의 식탁 교제는 무엇이었으며, 오늘 낮까지도 손 꼭 잡고 다니며 이야기 나눈 것들은 다 무엇이었냐며 되묻고 싶었지만, 사춘기 아이에게 이해받지 못할 테니 그저 내가 참을 수밖에. 아이의 바람대로 매일 밤 가족 대화의 시간을 만들었다. 그렇게 상황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버텼다. 때로는 울고, 때로는 화도 내면서 솔직하게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다.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우리의 상황에 그리 멋진 반전은 없었다.(앞으로도 그런 반전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상황 대신 변한 건 마음이었다. 우리는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분명히 노력한 만큼 해결될 거라고 주문처럼 외웠다. 상처가 천천히 아물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나아졌을까, 상처는 얼마나 아물었으려나.


여전히 불안하고 위태롭지만,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우리의 삶이 더욱 단단해지길 간절히 기대하면서 서로 아무렇지 않은 듯 웃는다. 웃는 시간이 많아졌고, 행복이라는 마음을 느끼고 있다. 우린 꽤 괜찮아진 것 같다.


50대, 40대, 10대. 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았다. 여전히 배울 것 투성이인 각자의 삶에서 필요한 태도를 갖기 위해 배우고 있다. 살아가기에 무거운 삶이지만 힘을 내어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렇게 걸어가고 있다. 어제를 걸었고, 오늘을 걷고. 내일도 걸어갈 거다.

그러다 보면 어디엔가 도착할 것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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