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의 달인이 되지 못한 호랑이의 밤 5분 정리

오늘의 어수선함을 내일로 넘기지 않기 위해

by 정은

집안 정리는 평생의 과업이다.

나도 한때 정리의 달인이 되고 싶어 100일 정리 프로젝트를 시작한 적이 있다. 하지만 결국 100일을 채우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100일은 참 묘한 시간이다. 100이라는 숫자는 인내의 가장 힘든 고비인지도 모른다.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던 호랑이도 뛰쳐나가게 만드는 시간. 그러니 내가 중도 포기한 것도 이상할 건 없다(라고 위안을 얻는다). 나는 정리계의 호랑이다. 정리하는 인간이 되지 못하고 중도 포기한 호랑이.


그럼에도 코로나로 집에만 갇혀 지낼 때부터 생긴 정리 습관은 있다. 거실과 주방만큼은 잠들기 전에 정리하기. 종일 지내야 하는 집이 정신없으니 짜증만 나고 점점 지쳐갔다. 오늘의 어수선함을 내일의 나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아서 정리를 시작했다. 그건 일종의 마음 수련이었다.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를 시작하고서 마주하는 다음 날 아침의 거실 풍경은 나에게 짧지만 강한 고요와 평화를 주었다.

매일의 정리 루틴에 익숙해진 요즘은 거실을 정리하는데 5분 정도 걸린다. 거실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책과 컵을 정리한다. 책은 거실 책꽂이에, 필기도구는 책꽂이 한편에 있는 연필통에 넣으면 된다. 그다음에 식탁 위에 남은 소소한 먹거리 봉지들과 컵, 접시들을 정리한다. 저녁을 먹은 지 한참 되었어도 여전히 주방에 올려져 있는 간장과 식용유 같은 것들도 제자리에 넣어준다. 마지막으로 저녁 설거지 이후 사용한 컵들을 씻으면 정리는 끝난다. 아무것도 올려진 것 없는 테이블과 식탁, 그리고 씻을 컵 하나 없는 싱크대. 이건 내일의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물론 하루의 시작하면서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을 시작으로 금세 개수대에 컵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럼에도 지저분한 풍경을 먼저 마주하면 그날은 할 일이 더 많게만 느껴지기 때문에 아무리 피곤해도 꼭 지키고 있다. 하루의 시작은 중요하다.


물론 이런 5분 정리가 가능해진 건 아이가 크면서 육아 전쟁이 끝난 덕분이다. 아이가 한창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온 집안을 놀이터처럼 활용하던 때는 5분 정리는커녕 아이를 재우다가 함께 잠들기 일쑤였고, 그 5분이라도 빨리 잠들고 싶었다. 그때는 그렇게 사는 게 당연한 때이다.


하지만 육아 전쟁이 끝났다고 해서 세상이 평화로워지는 건 아니었다. 곧바로 사춘기 전쟁이 시작됐다. 맞서 싸우면 안 되는 이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내가 선택한 전략이 집안 정리였다. 밤마다 집안 정리를 하는 건 승리를 위한 밑작업이다.


나는 끈기가 부족한 사람이지만, 코로나19와 사춘기 전쟁처럼 정리를 하게 만드는 이유가 계속 생겼다. 생각해 보면 나는 집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정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춘기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라기보다, 그 전쟁 속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아이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서. 오늘도 잠들기 전 거실 테이블을 한 번 훑어본다. 아무것도 올라와 있지 않은 식탁과 싱크대를 확인하고 나면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다.


비록 정리의 달인이 되지 못한 호랑이지만, 이렇게 하루를 정리하고 잠드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나에게는 충분한 평화다.

사춘기들…



매거진의 이전글걸어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