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앞두고 알게 된 것들

호치민에서 살다 보니 가벼운 삶을 생각하게 된다

by 정은

조금 더 가볍게 살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지만, 가지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벼운 삶과 멀어지던 나의 일상에 기회가 찾아왔다. '이사'.

집안 정리를 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이사다.


갑작스럽게 이사를 하게 되어, 대대적인 집안 정리를 시작했다. 미루고 미뤘던 집안 살림 비우기이다.

호치민에서 집을 렌트할 때는 보통 2가지 옵션이 있다. 노옵션과 풀옵션. 노옵션은 말 그대로 가구나 가전이 거의 없는 집이다. 보통 기본적인 주방 싱크대와 에어컨, 붙박이장 정도만 있는 대신 월세가 조금 더 저렴하다. 반대로 풀옵션은 생활에 필요한 가구와 가전이 대부분 갖춰진 집이다. 침대, 소파, 식탁, 냉장고, 세탁기, TV 같은 기본 가전이 이미 세팅되어 있다.


요즘에는 노옵션 집을 찾기 힘들다. 새로 이사가게 될 집도 웬만한 건 다 갖춘 풀옵션이다. 소파도 있고, TV도 있고, 침대도 있고, 테이블, 냉장고, 세탁기도 있다. 문제는 나에게도 그 모든 것이 있다는 것이다. TV, 침대, 테이블, 냉장고... 다! 집주인이 침대 하나와 세탁기는 빼주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고민이다. 침대 하나는 어떻게 정리해야 할까. 냉장고는 어디에 놓아야 할까. 지금 집에서는 수납공간이 넉넉한 신발장을 팬트리처럼 사용하고 있는데 그 물건들은 이제 어디에 넣어야 할까.


자려고 누워서도 새집에 이사 가면 냉장고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가 걱정돼서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이사는 가야 하니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한다. 물건을 덜어낼 계획을 하면서 걱정도 같이 덜어내는 중이다. 가져가지 못할 가구와 가전들은 미련 없이 처분하기로 했다. 결정이 힘들 뿐, 그 후에는 진격이다. 그릇도 하나라도 덜 가져가겠다는 전투적인 자세로 정리하고 있다. 꽉 찬 냉동고는 이사 전까지 야무지게 '냉장고 파먹기'를 하면서 비우기로 했다.


사고 싶었던 건조기를 안 사서 다행이다. 장식장을 꼭 하나 들이고 싶었는데, 그동안 마음에 드는 장을 찾지 못해서 정말 다행이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다시 하면 깨닫는다. 이고 지고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라면, 가벼운 게 제일이다.


이사 가는 집에서는 오래 살고 싶지만, 언젠가 또 이사를 나가야 할 것이다.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정착하지 못하는 해외에서 살아가는 사람에게 물건은 자산이 아니라 짐이 된다. 베트남에서는 한국과 필수품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덜 가지고 있다고 해서 아쉬울 것도 없다. ‘언젠가는 쓰겠지’ 하며 샀던 물건들도 지금은 다르게 보인다. 오래 쓸 수 있을지보다, 다음 이사 때도 가져갈 수 있을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사를 앞두고 사고 싶었던 물건들에 대한 욕심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그래서인지 버리는 일이 아깝기보다 오히려 홀가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물건이 줄어들수록 마음도 조금씩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이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깨닫는다. 내가 정말 필요한 것은 많지 않다는 사실을.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나면 집도 훨씬 단순해지고, 생활도 덜 복잡해진다. 가볍게 사는 삶은 거창한 결심이 아니라, 이렇게 하나씩 덜어내는 일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어쩌면 이사는 집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삶을 조금 더 가볍게 만드는 기회인지도 모른다.


이사는 힘들지만, 나는 기회를 잡은 것이라고 위로를 해본다.

열심히 버리는 사람이 있으면 더 열심히 물욕을 채우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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