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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Jan 04. 2021

오늘 나는 씩씩했다. 프로이별러의 자세

할 수만 있다면 경험하고 싶지 않은 일.

오늘 또 한 가정과 이별했다. 한 달 새 벌써 3번의 이별이다. 한 친구는 이미 북경으로 떠났고, 오늘 만난 친구는 며칠 뒤면 쿠웨이트로 떠난다. 그리고 열흘 뒤면 그동안 정들었던 학생이 한국으로 돌아간다.

세상이 변해 언제든 온라인에서 만날 수 있다며 서로를 위로했지만, 그래도 이별 앞에서 마음은 단단해지지 않는다.


갑자기 쿠웨이트로 떠나게 된 친구를 만났다.

새로운 아파트에 이사 오면서 만나게 된 무루네 집. 비슷하게 프랑스학교에 보내며 엄마들도, 아이들도 급격히 친해졌다가, 코로나 확산으로 도시 전체가 셧다운 됐을 때 두 집은 가족이 되었다. 두 집의 외동딸들은 외로울 틈 없이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서로의 집을 왕래했다. 서로의 세컨 하우스처럼. 서로가 코로나 19를 견뎌내는 버팀목이었다.  

그렇게 두 집을 한 집처럼 지내다가 두 달 전 무루네가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도 아쉽고 서운했는데,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쿠웨이트로 간다니 마음의 갈피를 잡기가 힘들었다.


평소처럼 만나야지 하면서도 바로 집을 나서지 못하고 책장 앞을 서성였다. 뭔가를 주고 싶은데 비행기 탈 때 책 선물은 너무 무거우려나 싶어 망설이다가 친구에게 줄 책 한 권을 골랐다. 서로 마음 아프게 울지 말자며 평소처럼 웃고 떠들었지만, 이별의 순간은 아쉬웠다.


나 : 이모가 책을 선물로 주면 읽을래?

아이 : 네. 읽을 것 같아요.



딸아이와 어떤 책을 선물해줄지 의논을 하고는(선물한 책은 다시 사주기로 약속을 하고) 얼른 집으로 올라가 책을 가져다가 선물해주었다. "이 책은 이래서 네가 읽었으면 좋겠고, 이 책은 저래서 읽었으면 좋겠어."


농담처럼 진담으로 8살 꼬마 무루를 붙들고 횡설수설 떠들었다.


나 :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면 두바이에서 만날 거야. 그러니까 아랍 말 열심히 배워서 우리 데리고 다녀야 돼.

아이 : 네.

나 : 두바이는 아이스크림이 엄청 비싸대. 그러니까 용돈도 많이 모아서 우리 아이스크림도 사줘야 돼.

아이 : (진지하게) 네.

나 : 두바이에 좋은 데도 많이 알아놔야 돼. 그래야 우리 데리고 놀러 다니지.

아이 : 워터파크 있어요.

나 : 그래! 이모도 돈 많이 벌어서 갈게. 우리 두바이에서 꼭 만나자!


코로나 19. 먹여주는 거 아니고 설정 샷.

평소 같았으면 "안녕~ 또 만나!" 하고 헤어졌겠지만, 똑같은 "안녕~"이라는 인사를 하면서도 발걸음은 떨어지지 않았다. 이별을 외면하고 싶은 우리 집 아이는 장난치듯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 버렸다. 나는 몇 걸음 가다 돌아보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멈춰 서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그들이 돌아보면 또 손 흔들어주고... 그래도 울지 않았다. 한 번 터지면 참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에. 많이 겪었는데도 적응 안 되는 이별이다. 평생 우리가 몇 번이나 더 만날 수 있을지.

아이도 잘 버텨 주었다. 어린 나이에 자꾸만 이별을 경험하게 하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잘 참았다고 스스로 토닥였지만 여전히 슬픈 밤.

그래도 잘 버텼다.

글로벌 시대... 적응해야지.

오늘 너 참 씩씩했다.

진짜 프로이별러가 되자.



친구에게 선물해준 책


<알로하, 나의 엄마들> 이금이 작가

최근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다. 하와이 1세대 여성들의 삶을 담은 책은 호치민에 살고 있는 나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탈리아 남편과 결혼해 외국 생활만 하고 있는 친구에게도 같은 위로와 공감이 되어줄 것 같아 이 책만큼은 가져가 달라고 부탁했다. "격리 생활하면서 읽기 좋은 책일 거야"

집으로 돌아와 미국에 있는 친구에게 위로 SOS를 요청했다가 "너도 꼭 읽어!" 하게 된 책.


<동의> 레이첼 브라이언 글, 아울북 펴냄

너와 나 사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우리 집 아이가 열 번도 넘게 읽은 책이어서 아이와 만장일치로 선물하기로 한 책이다.  "꼭 너 자신을 소중하게 지켰으면 좋겠어. 싫으면 싫다고 얘기하고. 항상 그런 용기를 가진 아이로 자라라고 주는 책이야." 헤어짐을 앞두고 급하게 떠들던 나의 말을 이해했겠지? 일러스트가 많아서 아직 한국말이 서툰 꼬마 무루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


<이솝우화>

쉽고 짧은 이야기들이라, 꼬마 무루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선물했다. 한국인 엄마가 읽어주기에도 부담 없는 두 세 페이지짜리 단편들 모음. 한 권이라도 더 주고 싶어서...



2주 간의 격리 생활에 도움이 되길...

아, 책에 짧은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잊어버렸다.

역시...

내일은 또 씩씩하게 하루를 살아내야지.

다행히 내일부터 개학이다. 정신없이 학교 다니다 보면 아이도 허전함을 털고 일어나겠지.

큐브 천재 친구의 마지막 큐브 수업...

.

.

.

.

수많은 시간에 네가 함께 있었다.

마음을 내어줘서 고마웠다.

잊지 못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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