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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Dec 09. 2020

아무튼 버텼다

2020 호치민

코로나로 인해 맘 졸이며 살아온 호치민에서의 1년.

처음에는 무서워서 한국에 가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안전하게 잘 지내고 있다.


구정 연휴 때 옆집 지인 가족과 만둣국을 먹으며 “중국에서 박쥐를 잡아먹어서 전염병이 돌았다던데...?” 며 나누던 식탁 토크. 그때까지만 해도 남의 나라 이야기였다

무섭게 번진, 이름도 낯설던 ‘코로나’.

아이는 구정 방학이 끝나고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확진자가 많지 않았지만, 베트남 정부의 방침은 강했다. 계속된 휴교령 연장과 온라인 수업. 이동을 금지하는 셧다운까지.

베트남은 국경을 닫았고, 5월이 되어서야 학교에 갈 수 있었다. 아이의 프랑스어 실력은 프랑스어권 아이들과 달리 형편없어져 있었다. 봉주르 밖에 모르는 까막눈이지만 아이와 함께 숙제에 매달렸다.

엄마는 프랑스어를 몰라.
하지만 네가 도와달라고 하면
엄마는 최선을 다해 도와줄 거야.


학교를 왜 매일 가는 게 중요한지, 아이는 느끼지 못하지만, 나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홈스쿨링 못할 아이, 홈스쿨링 못 시킬 엄마라는 것도.


한국에서는 지금도 학교에 정상적으로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다행히 이곳은 5월 이후 정상적인 일상을 살고 있다. 그 하루하루가 정말 감사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침마다 물을 챙겨주고, 가방을 챙겨주듯 매일 새 마스크를 챙겨줘야 한다는 것. 마스크는 어느새 당연해졌다.


베트남이 늘 코로나 안전지대였던 것은 아니다. 가을 텀 방학 때 관광지로 유명한 다낭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기 시작했다. 중국인들의 밀입국 때문이라고 했다.

다낭은 봉쇄됐고 방학을 맞아 다낭에 갔던 사람들은 발이 묶였다. 호치민으로 돌아온 사람들도 무조건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남편의 하노이 출장이 많았던 시기였는데, 하노이에서도 확진자가 나온 상황이라 남편의 하노이 출장마다 혹시라도 하노이가 봉쇄될까 마음 졸여야 했다.

봉쇄령의 효과로 다낭 코로나 사태는 정리되었다.

가까운 바다로 여행도 다녀왔다. 호텔 룸과 수영을 할 때 빼고는 항상 마스크를 쓰고 있어야 했지만, 좋았다. 오랜만에 갖는 여유도, 바다도.


경제는 힘들지만 그래도 살다 보니 12월.

3달 가까이 없던 지역 감염.

하지만 얼마 전, 또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것도 호치민시 안에서. 학교를 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는 무섭다. 수천만 원이라는 외국인의 코로나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으니 무조건 조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일본을 다녀온 베트남항공 승무원이 문제였다. 승무원들은 절반의 격리 기간을 기숙사에서 보내는데, 두 번은 음성이었지만, 세 번째에서 양성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문제는 이 승무원이 규정을 어기고 기숙사 방에 친구도 부르고, 어머니도 만나고, 대학교에도 갔다. 기숙사 방에서 같이 잤던 영어학원 강사 친구가 코로나 확진이 됐고, 어머니도 확진됐다.

영어 학원은 문을 닫고, 수강생들은 격리하고, 확진자와 접촉한 수강생들이 다니는 대학들에는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리고 확진자가 나온 지역의 학교들도 휴교했다. 확진자의 간접 접촉자가 방문한 국제학교도 검사 결과가 나오는 이틀 동안 휴교 통보가 날아왔다.

다행히 현재까지 접촉자들 모두 음성이라고 한다. 모두가 또다시 안도하며 조심스럽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만약을 대비해 마스크는 부족하지 않게 조금씩 계속 사두고 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코로나 일상에서의 긴장감이다.


메이드 인 베트남 마스크는 아쉽다. 사소하다고 여겨지는 대단한 기술의 차이를 매일 느낀다. 한국에서 받은 마스크는 코 부분을 누르면 코에 맞게 밀착되는데, 여기 마스트는 아무리 코 부분을 눌러도 평평하기만 하다. 마스크와 코 사이의 틈이 꽤 넓은데... 어린이용도 마찬가지다. 브랜드를 바꿔서 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심지 같은 게 들어있지만, 기능을 발휘하지는 못한다.


백신이 나왔다지만, 해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까지  차례가 올까? 의문이다. 조심하는 수밖에. 그래서 오늘도 나는 열심히 마스크를 쓴다.


아무튼 2020 잘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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