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점령된 공공공간을 사람들에게 돌려주자
2005년 어느날, 샌프란시스코의 아트 디자인 스튜디오 리바(Rebar)의 존, 매튜, 블레인 세 사람은 문득 도시의 공공공간이 자동차에게 지나치게 많이 할애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디를 가도 걷거나 쉬어갈 만한 공간은 적었고, 자동차를 위한 공간만이 존재했다. 실제 샌프란시스코 전체 면적의 약 25%가 도로 공간인데, 도로의 70~80%가 차량 통행과 주차에 사용된다는 것을 확인한 이들은 자동차에 점령된 공공공간을 사람들에게 돌려줄 수 있는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제도의 빈틈을 찾아냈다. 바로 노상 주차미터기에 주차료를 수납 후, 공원으로 이용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4시간의 주차료를 지불한 후, 자동차를 주차하는 것이 아닌 인조 잔디를 깔고 벤치와 화분을 두어 공원으로 꾸민 후 마치 공원처럼 4시간 동안 그 공간을 이용했다. 중간에 주차관리원이 찾아왔지만, 주차관련 규정 어디에도 주차장을 공원으로 이용해서 안된다는 내용은 없었기 때문에 주차관리원이 이들을 저지할 명분이 딱히 없었다. 주차시간이 다 되자 철거하고 떠났다.
이들은 이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기록하였고, ‘파킹(Park(ing))’라는 작품으로 웹사이트에 올리자 전 세계에서 이 작품을 재현하고 싶다는 문의가 오기 시작했다. 이 호응에 힘입어, 전세계 어디서든 누구나 ‘파킹(Park(ing))’을 쉽게 구현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만들었고, 2006년부터 1년에 한번 자동차로부터 도시 공간을 되찾는 연례 행사 ‘파킹데이(Park(ing) Day)’를 시작했다. 파킹데이는 미국 내 도시뿐 아니라 캐나다, 호주, 유럽, 일본 등 다양한 대륙의 도시에서 동참하였고, 현재까지 매년 이어지며 수백개 도시에서 수천명의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차 공간이 사회적 교류, 예술적 표현, 놀이를 위한 공간으로 재구성되는 글로벌 실험으로 자리잡으면서, 자동차의 공간이라 여겼던 도로공간이 ‘사람의 공간’일 수 있다는 인식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게릴라 팝업이 공공 프로그램이 되다
게릴라에서 시작한 파킹데이의 영향력은 샌프란시스코시청까지 닿게 되었다. 파킹데이가 시작된 지 3년 후, 2009년 샌프란시스코시는 도로변 주차공간에 파클렛을 조성하는 시범사업을 추진하게 된다. 샌프란시스코시는 파클렛을 공공 프로그램으로 도입할 때, 파클렛의 설치 비용과 운영 및 유지관리를 고민했다. 빠듯한 시 예산을 할애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여 지역사회 주도의 파클렛을 구상하였다. 파클렛을 원하는 자가 신청하면 시가 공공공간인 도로공간 활용을 승인/허가해주고, 설치부터 유지관리까지 신청자가 부담하는 방식이다. 이 구조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파클렛을 원해야 했다. 파클렛 공간 자체가 매력적이어야 하고, 이를 통해 도시 환경 개선, 지역경제 활성화 등이 체감되어야 했다. 그리고 설치 후 유지관리할 주체가 존재해야 했다.
샌프란시스코시의 페이브먼트 투 파크 홈페이지에 따르면 시범사업은 총 4건 추진되었고, 지역 단체와 협력 1건, 개별 상인과의 협력 3건을 추진하였다. 지역 단체와의 시범사업으로는 ‘노에 밸리 파클렛’이 있다. 노에 거리의 주차장 2칸에 보도와 높이를 맞춘 기단부를 만들고, 그 위에 벤치, 화분, 펜스, 카페 테이블을 배치하여 공공공간이자 인접한 카페의 테라스로 활용할 수 있는 파클렛을 조성하였다. 파클렛의 조성 비용은 시의 보조금으로 충당하였고, 조성 이후 유지관리는 ‘노에 밸리 협회’에서 담당한다.
BID가 만들고 관리하는 파클렛
‘노에 밸리 협회’는 CBD (Community Benefit District, 커뮤니티 혜택 지구) 를 운영하는 비영리 단체이다. 샌프란시스코의 CBD는 미국 BID의 샌프란시스코 버전으로, BID는 Business Improvement District, 업무개선지구를 의미한다. BID로 구역이 지정되면, 해당 구역 내 건물주 및 사업자는 BID 세금을 별도로 내게 된다. 시는 이 세금을 따로 모아, BID 운영관리주체에 구역 관리 보조금으로 지급한다. BID 운영관리주체는 이 재원을 활용하여 해당 구역의 미화, 보안, 공공공간 개선, 문화이벤트 등을 추진하여 해당 구역이 지속가능한 업무상업지구로 기능할 수 있도록 매니지먼트 한다. 샌프란시스코시는 기본적인 BID 모델에 주거가 포함된 복합지역을 포괄하기 위하여 CBD, Community Benefit District 커뮤니티 혜택 지구라는 자체적인 모델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노에 밸리 협회’는 노에 밸리 CBD를 운영관리하는 비영리단체로, 파클렛은 노에 밸리 CBD의 보행환경을 개선하고 체류 인구를 늘려 상권을 활성화할 수 있기에 환영받을만한 프로그램이었다.
카페 주인이 운영하는 파클렛
개별 상인과의 협력을 통한 시범사업으로는 ‘콜럼버스 애비뉴 파클렛’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파클렛은 ‘카페 그레코’가 유지관리주체이다. 카페 그레코 앞 주차공간 2칸에 기단부를 설치하여 보도와 높이를 맞추고 화분, 벤치, 카페 테이블, 자전거 거치대를 조성하였다. 공공공간이자 카페 테라스로 이용될 수 있는 공간이 조성된 것이다. 이 파클렛은 시 예산이 투입되지 않았고 ‘웰스 파고 재단’과 ‘일리커피’의 기부금으로 충당되었고, 일부는 카페 주인과 지역사회 기부금이 보태졌다고 한다.
당시 주변 상인들이 주차공간을 없애는 것에 대해 반대했던 것과 달리 카페 주인인 한나 슐레이만은 주차 대신 공공 휴식공간과 카페 테라스가 생기는 것이 매출에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참여하였다. 그는 이미 걸어서 2분 거리에 공영 주차장이 있어 주차 공간은 충분하며, 시 입장에서도 주차 요금보다 카페 매출 상승에 따른 소득세 수입이 더 많아질 거라 주장했다. 그리고 실제로 파클렛이 조성되자, 주변 상인들이 파클렛 설치 방법을 문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시범사업 이후 2010년부터 ‘페이브먼트 투 파크(Pavement to Parks)’라는 공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파클렛이 정식 운영되기 시작하였다. 시는 파클렛 매뉴얼을 발간하여 파클렛 신청 절차와 역할, 디자인 가이드 등을 제공하였다. 이제 파클렛 설치를 원하는 시민이나 단체 누구나 파클렛을 신청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의 파클렛은 보도의 연장선이자 ‘공공을 위한 열린 공간(Public Open Space)’으로 정의되어 누구나 24시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운영되어야 했고, 테이블 서빙과 같은 상업적 활동은 금지되었다. 제한 속도가 40km/h 이하, 경사도 5% 이하인 도로의 주차장에만 설치할 수 있고, 교차로 모퉁이에서 최소 추차장 한칸 이상 떨어져있어야 하는 등 파클렛 설치 위치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 규정하였다. 또한 보도와 높이를 맞추기 위한 플랫폼 설치에 대해 상세한 단면도, 빗물 배수에 대한 가이드, 설치 유의사항, 유지관리 사항 등이 제공되었다. 신청자가 이웃 동의를 받고, 가이드를 준수하여 제안서를 제출하면 시에서 검토하여 승인하는 절차로 진행되며, 이때 신청자가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후 공공공간 점유, 행정처리비용 등 파클렛 수수료를 시에 납부해야 한다. 이러한 신청자의 재정적 및 유지관리 부담과 주차공간을 없애는 것에 대한 주변 이웃의 반대나 부정적 시선에도 불구하고, 2015년 기준 56개의 파클렛이 설치되었다.
파킹데이는 택티컬 어바니즘의 대표적 사례
한편, 게릴라 이벤트에서 시작하여 한 도시의 공공 프로그램(파클렛)으로 정착한 '파킹데이(Park(ing) day)'는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의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우리말로 전술적 도시주의라 번역할 수 있는 ‘택티컬 어바니즘’은 2010년대 Street Plans Collaborative의 마이크 라이든과 앤서니 가르시아가 택티컬 어바니즘 가이드북을 발간하면서 확산되기 시작한 용어이다. 택티컬 어바니즘은 저비용, 소규모, 일시적인 개입을 통해 도시 환경을 신속하게 개선하고 장기적인 도시 변화를 이끌어내는 도시계획/도시설계 수법이다. 거창하고 장기적인 마스터플랜 대신, 저비용, 고효율, 단기적인 개입을 통해 도시 환경을 즉각적으로 개선하여 사업 효과를 사전에 검증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후 실시설계와 공사로 연결하기 때문에 공공 예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집행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택티컬 어바니즘이라는 용어가 정립되기 전에도 게릴라 어바니즘, DIY 어바니즘 등 이미 있어 왔던 방식이지만, Street Plans Collaborative 가 2010년대부터 '린 스타트업'에 기반하여 "Build-Measure-Learn"의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면서 택티컬 어바니즘이라는 개념으로 정리되어가는 추세이다.
택티컬 어바니즘은 저성장, 인구감소 등으로 세수가 부족해지고, 디지털 기술 발전, 기후변화 등 대외적으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 예측가능성이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 현시점에서 공공사업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잡고 있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을 기점으로 수많은 도시들이 정책과 제도에 택티컬 어바니즘을 활발히 적용하게 되었다.
파킹데이는 장기적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을 사람중심으로 바꾸는 목적을 갖고 도로변 주차장에 대한 저비용, 소규모, 일시적인 개입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택티컬 어바니즘의 초기 test 단계 사례라 할 수 있다. 또한 가로시설물로서 제도화된 샌프란시스코의 파클렛은 파킹데이의 초기 test 를 통해 정책/제도화된 것으로 택티컬 어바니즘의 종착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팬데믹 대응 "상업 파클렛"의 도입
2020년 코로나 팬데믹 시기, 파클렛 프로그램은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코로나로 위기에 처한 소상공인들을 지원하기 위해 보도나 도로변 주차장을 영업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Shared Spaces’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파클렛을 그 하위 카테고리로 흡수한 것이다. 이제 파클렛은 기존의 공공공간에 더하여, 상업공간까지 그 용도가 확장되었다. 파클렛은 이제 공공 파클렛, 이동형 상업 파클렛, 상업 파클렛의 총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상업 파클렛은 취식을 위하여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지붕과 벽을 설치하게 되면서, 기존에 개방적인 구조에서 폐쇄적인 구조로 변화하게 되었다. 2010년 시범사업으로 설치된 ‘콜롬버스 애비뉴 파클렛’도 초기에는 개방적인 공원 형태의 구조물이었으나, 2020년 지붕과 벽으로 둘러싸인 폐쇄적인 파클렛으로 리모델링 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파클렛은 상권 활성화를 견인한 전략으로 긍정적인 인식이 있으면서도 동시에 공공공간의 사유화에 대한 비판도 이루어지고 있다. 영업공간으로서 파클렛 용도를 확대하면서 폐쇄적인 디자인의 파클렛이 늘어나다 보니 가로경관을 해치고, 공공공간을 특정 업체가 사유화하는 것(수수료를 지불한다 하더라도)이 도시에 좋은 일인지 등등 비판의 목소리가 일고 있다.
파클렛이 생겨난 최초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파클렛이 논란의 소재가 되고 있지만, 이 아이디어는 다른 도시에서 각 지역의 여건에 맞게 변형되어 적용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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