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한 칸의 발견,샌프란시스코 파클렛 (2/2편)

by 서선영

샌프란시스코의 파클렛은 ‘도로공간이 자동차만 사용하는 곳이 아니다’ 라는 인식의 전환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리고 미국, 유럽, 일본 등 다양한 해외 도시에서 샌프란시스코처럼 지역사회 주도의 공공시설물로서 파클렛을 지원하는 도시들이 생겨났다. 게릴라 파클렛의 맥을 이어, 영구적인 도로변 녹지대 조성이나 도로다이어트 공사 전에 파클렛을 시범운영하는 차원으로 활용하는 도시들도 나타나고 있다.


자동차 공간을 시민에게 돌려주는 실험,
런던 해크니 파클렛


샌프란시스코와 유사하게 파클렛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지역으로 런던 해크니 자치구(London Borough of Hackney) 가 있다. 2017년 해크니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해크니 지역에 자동차를 소유한 주민이 30%에 불과하지만 대부분의 도로공간이 자동차 주차장으로 점령되었다는 사실에 문제의식을 느꼈고,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은 주민들이 도로공간을 공공공간으로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의 끝에 주차장을 주민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로 주차장 한 칸에 대한 게릴라 파클렛을 개최하였다. 이 이벤트는 시의원과 지역 주민들의 지지를 받게 되었고, 이후 2018년 해크니 자치구는 파클렛 시범사업을 추진하였다. 시범사업을 통해 관내 5개의 파클렛을 조성하였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2019년부터는 정식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게 되었다.


해크니의 파클렛 프로그램은 개인 또는 공동체가 신청하고 해크니 자치구가 평가/승인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매년 봄 연 1회 신청을 받는다. 파클렛의 디자인, 제작, 설치, 운영 및 유지관리는 모두 신청자의 담당이다. 해크니에서도 샌프란시스코처럼 파클렛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지만, 해크니의 가이드는 체크리스트 수준으로 샌프란시스코에 비하면 매우 간소한 편이다. 또한 조성된 수준도 다양하다. 신청자에 따라 내구성이 높은 파클렛도 있지만, 이동형 파클렛으로 설치한 지역도 존재한다. 이는 해크니의 파클렛 프로그램이 샌프란시스코처럼 완성된 시설물이 아닌 장기적으로는 영구적인 도로변 녹지공원으로 전환될 가능성을 열어두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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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크니 파클렛 (사진 : meristemdesign)


기후변화 대응과 주민 소통을 위한 공공공간 DIY 실험,
베를린 키츠 파클렛


한편, 독일 베를린시는 파클렛을 기후변화 대응, 주민 소통의 공간적 도구로 활용했다. 2021년 베를린시의 환경교통기후보호국의 주관으로, 시민들이 주도하여 자동차 주차 공간을 녹색 휴식 공간으로 전환하는 ‘키츠 파클렛 지원 프로그램(Kiez-Parklet-Förderprogramm)’을 추진하였다. 당장 아스팔트를 걷어내는 대규모 공사를 하기 보다는 가변형 모듈 파클렛을 통해 유연하게 기후변화에 대응한 것이다. 또한 주민이 직접 제작하고 설치/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자동차 중심의 도시공간을 사람과 자연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를 자연스럽게 형성하고자 했다. 샌프란시스코가 파클렛을 상권 활성화와 도시 미관 개선을 위해 도입했다면, 베를린은 기후 변화 대응, 주민 소통을 위해 파클렛을 활용한 것이다.


이런 목적에 따라 베를린시는 주민들이 직접 파클렛을 제작/설치하도록 지원하기 위해 파클렛 제작 가이드를 발간했고, 모듈화된 목재 재료와 DIY 워크숍 공간을 제공하였다. 제작 및 설치 관련 비용은 시에서 지원했고, 주민들은 제작/설치에 참여하고 일상적인 유지관리를 담당했다. 설치된 파클렛의 쇼유권은 베를린시에 있었고, 시는 정기적인 모니터링을 진행하였다. 2021년 부터 2023년 까지 약 100여개의 키츠 파클렛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예산 절감으로 인해 신규 지원은 잠정 중단되었고, 기존 시설을 유지관리하고 있다. 다만, 시민이나 단체가 새로운 파클렛을 설치하고자 한다면 자체 비용으로 설치를 할 수는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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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키츠 파클렛 (사진 : SenUMVK / Marc Vorwerk, SozDia Stiftung Berlin)


2024년 베를린에 방문했을 때, 실제 키츠 파클렛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투박하지만 일정한 모듈로 제작되어 통일감을 주었고, 설치된 지 좀 시간이 흘러 사용감이 있었지만 쓰레기가 없었다. 화분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있어서 평소에 관리가 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파클렛에 앉아 책을 읽는 어르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와 엄마 등등 소소하게 일상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규모 공사가 아닌, 주민들이 직접 만든 투박한 파클렛이 동네의 풍경을 바꾸고 있었다. 주차장 한칸을 점유한 덕분에, 자동차 통행이 조금은 줄었을 것이고, 폭염의 날씨에서 주차된 자동차와 아스팔트가 내뿜는 열기 대신 나무와 식물이 동네의 기온을 조금은 낮춰주겠구나 하는 상상이 가능한 모습이었다. 집앞의 작은 변화가 가져오는 사회적, 환경적 영향을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보도도 확보되어 있고, 가로수도 있어서 우리의 도로공간에 비해 충분히 쾌적한 편인데도, 주차장을 한칸씩 파클렛으로 만들며 좀 더 걷기 좋고 녹지가 많은 도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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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에서 만난 파클렛


한국 민간차원의 시도, 팝업 파클렛

한국에서 파클렛은 2017년 서울시 가로 설계관리 가이드에서 차도 설계기법의 하나로 소개되었었고, 2019년 국토교통부 훈령 <도시지역도로 설계 지침>에 교통정온화를 위한 시설로 도입되었다(현재 ‘도시지역도로 설계 지침’은 2021년 폐지되었고, <사람중심도로 설계지침>에 규정되어 있다.). 법적인 근거는 이미 2019년에 도입되어 있었지만 공공 차원에서 파클렛을 추진한 사례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민간 차원에서의 시도가 일부 이루어지고 있다.


소소도시는 샌프란시스코의 파킹데이 및 파클렛에 영감을 받아 국내 도시에서 ‘팝업 파클렛’을 시도해오고 있다. 택티컬 어바니즘의 실천으로서 팝업 파클렛, 팝업 보행친화도로를 '공공사업'의 test 단계로 운영하여, 이후 공식 사업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제안하고 있다. 국내에 제도적으로 도입이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공공사업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2022년 4월, 대전 소제동 대동천변로 약 50m 거리의 불법주차공간을 파클렛으로 꾸미고, 10일간 운영한 것이 첫번째 시도였다. 보행자와 상인들의 반응은 좋았다. 여기서 용기를 얻은 우리는 같은해 10월 서울 성수동 뚝도시장 주차장에서 두번째 팝업 파클렛을 개최했다. 이후 현재까지 매년 1~2회의 팝업 파클렛은 지원사업이나 기업 사회공헌 사업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팝업 파클렛을 개최할 때 마다 행정의 협조를 통해 진행하고, 개최 이후 후속 사업을 제안해오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공식적인 공공사업으로 연결된 사례는 없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점점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조만간 우리의 도시정부들도 택티컬 어바니즘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게 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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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및 성동구 팝업 파클렛 & 보행친화도로 (사진 : 서선영)




주차장 한 칸은 자동차 한 대가 머무는 좁은 공간에 불과할지 모른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이 작은 실험은 전 세계 도시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 땅의 주인은 자동차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해크니의 파클렛에서 시민들이 쉬어가고, 베를린의 어르신이 파클렛에 앉아 책을 읽는 모습을 볼 때, 현재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더라도 본래 그 자리는 시민 모두의 공간이라 할 수 있다.


한국에서도 도로공간의 주인을 사람으로 되돌리려는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보행자우선도로가 제도화되었고, 사람중심도로 설계지침이 마련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자동차 먼저’라는 사회적 인식이 견고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안돼" 라고 섣불리 단정하지는 않길 바란다. 샌프란시스코의 파클렛도 처음부터 법적 근거가 완벽해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주차료를 내고 공원으로 쓰겠다'는 위트 있는 빈틈 찾기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실마리를 찾아보면 어떨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대한 마스터플랜이 아니라, 자동차가 차지한 주차장 한 칸에 화분 하나를 놓을 수 있는 작은 용기, 그리고 자동차 대신 삶을 위한 길을 요구하는 우리들의 행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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