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광장으로, 밀라노 피아체 아페르테 (1/2편)

by 서선영
차량 중심 도시를 보행 도시로 만들자


2015년 유럽환경청 EEA 보고서 ‘유럽 공기의 질 2015’ 는 이탈리아를 유럽에서 가장 대기오염이 심각한 나라로 지목했으며, 그 중에서도 밀라노가 속한 포강 유역의 오염이 특히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당시 밀라노의 미세먼지(PM10 및 PM2.5)는 EU 대기질 기준을 초과하는 날이 빈번했고, 숨쉬기 힘들 정도로 대기오염이 너무 심한 때에는 시내 차량 운행을 전면 금지하는 긴급 행정 명령이 며칠씩 내려지기도 했다. 밀라노의 대기오염이 심각한 이유는 명확하다. 이탈리아 북부 핵심 산업도시로서 인구밀도와 자동차 보유 비율이 유럽 평균에 비해 매우 높고, 차량 교통과 산업 활동이 활발하여 배기가스 배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맥으로 둘러싸인 포강 유역(Po Valley)의 분지 지형에 입지한 탓에, 기온 역전 현상이 빈번해지고 풍속이 느려 공기 순환이 차단된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오염물질을 지표면 근처에 가두는 악조건을 형성하여 대기질을 더욱 악화시킨다.


한편, 같은 해 밀라노에서는 ‘지구 식량 공급, 생명의 에너지’라는 주제로 엑스포가 개최되었는데, 유럽에서 가장 대기질이 나쁜 도시가 생명의 에너지를 논한다는 아이러니가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또한 EU 집행위원회는 대기질 기준은 위반한 국가에 시정명령 또는 벌금을 부과하고 있었는데 이탈리아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기준치를 초과하여 조치가 필요한 상황 이었다.


그런데 대기오염의 주범인 자동차가 도시 공간을 잠식하는 문제는 단순히 공기의 질만을 해치는 데 그치지 않았다. 밀라노 외곽 주변부 지역은 광장과 거리가 자동차에 점령당해 시민들기 걷고 쉴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도심과 달리 공원이나 문화시설도 드물어, 주변부 주거지역 주민들은 도시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되어 있었다.


대내외적으로 해결이 시급한 두 가지 문제, 즉 대기오염과 주변부 공공공간 문제를 동시에 안고 2016년 ‘주세페 살라’가 밀라노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살라 시장은 노후 경유차의 도심 진입을 차단하고, 저공해구역을 지정하는 한편, 차량 중심의 도시 공간을 보행공간으로 되돌리는 정책들을 함께 추진하였다. 자동차를 줄이는 것과 시민의 공간을 되찾는 것, 이 두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업이 ‘피아체 아페르테(Piazze Aperte, 오픈 플라자)’ 였다.


image.png
image.png
image.png
피아체 아페르테 프로그램 (출처 : 밀라노시청)


공공공간을 빠르게 확충하자 (feat. 택티컬 어바니즘)


‘피아체 아페르테(Piazze Aperte)’는 밀라노 2030 마스터플랜과 생활권계획(Piano Quartieri) 수립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 15분도시로의 전환 등을 위하여 "공공공간의 즉각적인 확충" 필요성이 확인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프로그램은 밀라노 교통환경토지국(AMAT), 블룸버그 어소시에이츠(Bloomberg Associates), 글로벌 도시설계 이니셔티브(Global Designing Cities Initiative)가 공동으로 개발한 택티컬 어바니즘(Tactical Urbanism) 사업이다. 택티컬 어바니즘은 단기적 개입을 통한 장기적 변화를 이끌어 내는 도시설계/도시계획 수법이다. 블룸버그 어소시에이츠와 글로벌 도시설계 이니셔티브는 당시 미국에서 택티컬 어바니즘 기반의 프로젝트를 통해 공공공간을 보행공간화한 경험을 가진 단체들이었고, 대표적으로 뉴욕 타임스스퀘어의 보행광장화 사업이 있다.


image.png 피아체 아페르테의 택티컬 어바니즘 프로세스 (출처 : 밀라노시청)


그렇다면 밀라노시는 단순하게 도로 공사를 통해 보행자구역을 조성하면 될텐데, 굳이 해외 단체와의 협력까지 하면서 다소 복잡해보이는 ‘택티컬 어바니즘’ 방식을 적용했을까? 그 이유는 지방정부의 넉넉치 않은 예산과 주차장 및 차량통행제한에 대한 주민과 상인의 반대에 대한 우려 때문이었다. 도로공사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어야 했고, 지역사회의 반대로 추진 자체가 어렵거나 공사 후 사업효과성이 낮을 수 있는 리스크가 있었다. 또한 2008년부터 EU 대기질 기준치를 초과해온 밀라노시는 이제는 EU집행위원회에게 대기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고 ‘도로공사’는 너무 오래 걸리는 방법이었다. 적은 예산으로 지역사회가 참여하여 빠르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일 수 있는 방법으로 ‘택티컬 어바니즘’ 프로그램이 밀라노시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성공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의 참여와 협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현장을 임시 조성하고 시범운영하는 방식은 시민들에게도 낯선 방식이었기 때문에 밀라노시는 시범사업을 먼저 계획했다.



시민주도의 실험, 산 루이자 광장


비슷한 시기, 밀라노에서는 안티스모그 학부모 모임(genitori antismog)과 FIAB 치클로비(FIAB Ciclobby Onlus, 자전거 단체)가 주도하는 “트렌타미(TréntaMi):존30”(시속30km존 확대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트렌타미:존30”은 도시계획가 마테오 돈데( Matteo Dondé) 의 기획컨설팅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로, 시속 30km 도로환경을 임시로 조성해서 운영해보자는 실험방식의 캠페인이었다. 30km존 도입이 필요한 도로에 도로다이어트, 파클렛, 사선주차장의 교차배치를 통한 시케인(chicane) 등을 임시 조성하여 운영하면서 30km존 도입 가능성을 파악하고, 나아가 실제 도입으로 연결하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즉각적인 공공공간 확충을 해야 하는 밀라노시의 정책수요와 자동차 공간을 축소하여 차량 속도를 줄이고자 하는 시민단체의 수요는 딱 맞아 떨어졌다. “트렌타미:존30”은 밀라노시의 협력으로 2018년 5월 10일~13일까지 4일간의 실험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트렌타미:존30”의 대상지는 밀라노시가 지정한 5개 지역 중에서 시민단체가 선정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밀라노시는 시 외곽지역에 공공공간을 즉각적으로 확충해야 했기때문에 시급한 외곽지역 5개를 후보지로 제시했다. 시민단체는 이 가운데 ‘산 루이자 광장’ 지역을 선정하였다. 산 루이자 광장 일대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교회, 상업시설이 발달되어 있는 주거지로 평소 아동 및 어르신 보행량이 많지만 대부분의 도로공간이 차도 또는 주차장으로 조성되어 있어 안전하게 걷거나 앉을 수 있는 공공공간이 부족했다. 특히 산 루이자 광장은 수년간 불법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는 문제가 있었다.


image.png
image.png
광장 임시조성 모습(사진: Fabrizio Annibali, genitoriantismog)


시민단체는 산 루이자 광장 일대 도로의 차량 속도를 줄이면서, 공공공간을 확충하는 도로 설계를 진행했다. 산 루이자 광장 앞 불법주차공간을 보행공간으로 계획하였고, 주변 도로는 법에서 허용하는 차도의 최소폭으로 도로폭을 줄였다. 도로변 평행주차장은 사선주차장으로 바꾸고, 사선주차장을 교차 배치하여 시케인(chicane, S자형 도로)을 확보했다. 모든 교차로에서는 보도 폭을 넓혀 횡단보도 길이를 단축했다. 이를 통해 주차공간 수는 이전과 동일하지만 이중 주차를 방지하고 차량 속도 저감을 유도하고자 했다.


실제 시범사업에 앞서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이 중요했다. 시민단체는 대상지가 위치한 ‘밀라노 4구’ 시의회의 도움을 받아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3회의 주민설명회를 개최했다. 설명회에서는 “트렌타미:존30” 실험에 대한 설명과 함께, 시속 30km 제한 구역의 이점(아동 학습 차원, 상권 활성화 차원 등), 시민 참여, 지역 교통과 건강, 교통심리학, 밀라노 대기질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 발표가 있었다. 단순한 행사 공지가 아니라 시민들에게 실험 참여를 권유하는 과정이었다. 주민설명회 외에도 인근 상가 주인, 주민들과 대면 대화를 통해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수렴했고, 오프라인 전단지와 SNS를 활용하여 트렌타미:존30 실험을 알리고 의견을 받았다.


2018년 5월 10일, 드디어 ‘트렌타미 : 존30’의 시범사업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민단체 자원봉사자와 지역주민이 설계안에 따라 아스팔트위에 새로운 주차선을 그리고, 새롭게 계획한 보행공간 노면에 잔디매트를 깔았다. 불법주차장이었던 공간에 새로 생긴 카페테라스에서는 손님들이 음식을 먹거나, 주민들이 앉아 쉬어 갔다. 4일간의 운영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주민들은 시범사업기간 동안 세부적인 의견을 개진했고 그 의견을 반영해서 영구화할 것을 원했다. 또한 영구적인 변화에 대한 주민의견이 매우 높게 나타났다.


image.png
image.png
보행광장으로 재탄생한 산 루이자 광장 (사진: 밀라노시청)


임시 운영의 성과와 시민들의 수요를 반영하여, 2021년 4월 산 루이자 광장은 녹지대와 벤치가 있는 영구적인 보행광장으로 재탄생했다. 학부모모임과 자전거단체의 합심이 이루어낸 성과였다. 광장 중앙부는 보행자 전용 구역으로 지정되어 서비스 차량과 응급 차량의 통행만 허용된다. 광장 주변 교차로의 차량 속도를 줄이고, 보행자 공간의 연속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광장 전체 지면은 도로면보다 15cm 높게 조성했다고 한다.



산 루이자 광장은 시민단체와의 협업으로 4일간의 단기 실험 시범사업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이어진 밀라노시의 시범사업은 3~4개월에 걸친 실험으로 진행된다. 다음 편에서는 그러한 시범사업을 살펴보겠다.



(*자료 출처 : PIAZZE APERTE 결과보고서, 밀라노시청)



★ 다음글에서 이어집니다 :)

이전 05화주차장 한 칸의 발견,샌프란시스코 파클렛 (2/2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