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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07. 2018

주택가 골목이 불편한 이유

196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은 2018년 우리에게 유효하다.

나는 5층짜리 신축빌라에 재작년 이사와 살고 있다. 우리 빌라 옆에는 똑같이 생긴 빌라가 또 하나 있다. 같은 업체에서 공사를 한 모양이다. 빌라 바로 앞 길은 3-4m의 좁은 도로이다. 그 도로를 사이에 두고 마당이 있는 작은 단독주택과 2-3층 규모의 다세대주택이 마주하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빌라는 아마도 그런 주택들을 허물어지었을 것이다.


우리 집에서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집 앞 골목을 걸어나가 등촌로13길을 지나, 등촌로와의 교차로를 건너야 한다. 우리 집이 위치한 블록*은 봉제산 자락의 다세대 다가구주택 밀집지역이다.

(*임의로, 보차분리 도로에 의해 구분된 일단의 구역이라 하겠다. 이 블록 내부에는 보차혼용도로뿐이다.)


중소형(거의 소형) 필지가 4m, 6m도로(보차혼용)를 사이에 두고 빼곡히 밀집해 있다. 블록 내 도로망은 굉장히 촘촘하다. 몇 개 도로가 일방통행으로 지정되고 극히 드물게 도로폭이 약간 넓은 몇 개의 도로가 있는 것 외에 이동성 및 이용성 측면에서 위계가 부재하다. 필지 내 건축물은 재건축을 통해 최대 허용 건폐율을 모두 달성함에 따라, 밀도는 더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기존의 도시인프라가 수용할 수 있는 밀도 규모를 넘어가다 보니 주거환경은 조금씩 나빠지고 있다. 도로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자동차도 많아졌다. 통행량이 많아지면 상권의 활성화라는 효과도 있지만, 혼잡도가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도 많다.


그런데, 왜 일반주택지의 골목환경은 이런 걸까

먼저 어떻게 골목이 형성되었는지 들여다보자.

내가 살고 있는 동네는 1960년대 대한주택공사가 시행한 화곡 토지구획정리사업의 결과이다. 중소형 단독주택 건설을 위하여 필지와 도로가 구획되었다. 필지는 작은 마당을 가진 1-2층의 단독주택 규모에 맞게 규모가 설정되었고, 저층의 단일세대 주택이다 보니 도로 등 인프라도 규모가 크지 않았다. 저밀도를 예상했으니 4, 6m 도로로 충분히 서비스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도시녹지나 교통체계에 대한 고민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당시 주거문화에서는 단독주택의 마당에 각자 개인정원을 꾸몄으니, 녹지어메니티가 자연스럽게 충당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까. 또는 애초에  공공녹지가 계획요소가 아니었거나, 있더라도 대공원의 구역을 구획하는 정도이지 가로녹지와 같은 요소는 비중이 미비했을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단독주택의 저밀주거를 위해 구획되었던 화곡지구는 2-3층 다세대다가구주택으로 재건축되었다가, 최근 들어 4-5층의 필로티 빌라로 빠르게 재건축되어가면서 지역의 모습이 급격이 바뀌고 있다. 단독주택이 갖고 있던 공간적 여유와 개인 녹지, 가로를 향해 열려있는 커다란 창문과 대문, 야외계단 등은 사라졌고, 필지 대지선을 빼곡히 채우며 1층 필로티 주차장과 차가운 대리석으로 무장한 빌라가 나타났다.


집앞 골목의 모습/ 좌측의 신축빌라와 우측의 단독주택,다세대주택이 대조적으로 지역의 주택역사를 보여준다.


이제는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신축빌라, 단독주택, 다세대주택이 혼재되어 있는 것이 익숙한 풍경이 되었고, 4-5층의 빌라들로만 이루어진 골목도 있다. 다행히 우리집 앞 단독주택, 다세대주택은 아직 남아있어, 그나마 숨통이 트일 수 있는 공간적 여유가 있다. 단독주택 마당의 나무는 녹지를 찾아볼 수 없는 이 골목에서 그나마 자연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남아있는 저 주택들은 언제든 헐려 높은 빌라가 되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인다. 그렇게 된다면 일대의 주거환경은 더 나빠지겠지만, 현재로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좁은 골목을 지나 걸어나가면 등촌로13길을 만난다. 등촌로13길은 화곡지구의 가로망 구조상 내부 도로들이 모여 외부로 연결되는 중심도로이다.


등촌로13길의 출근길 풍경. 사람들은 밀려오는 차를 피해 일렬로 걸어야 한다.


이 일대 가로망 구조 상, 등촌로13길이 메인도로로 기능한다. 주변으로는 분식집, 음식점, 술집, 미용실, 네일숍, 편의점, 베이커리, 부동산 등등 근린시설이 밀집해 있어 주민들은 단순 통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점을 이용하는 행위도 일어난다. 하지만 그 이상의 사회적 활동을 포착하기 힘들다. 차량통행이 너무 잦고, 보행자 공간이 없어, 걷기만 해도 위태롭기 때문이다. 길가에 서서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나란히 걷기에 위험하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한 골목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더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뭘까. 개별적인 재건축에 의해 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골목환경이 나빠지고 있으니, 재건축이 문제인가? 한데 재건축 자체가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도시적 차원의 관리가 부재한 것이 원인이다.

도시에서의 재건축행위는 도시경제가 순환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재건축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다. 그 행위를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게 관리하는 체계가 부족한 것이 원인이다. 골목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블록단위 또는 구역 단위의 건축 매스, 건축물과 공공공간, 가로공간, 이동성, 녹지 등에 대하여 지역사회의 합의를 통해 비전 및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고, 그에 따라 개발하면서, 현재의 블록 및 가로의 시스템을 개선해나가야 한다. 이때 지역주민과 상인, 문화기획자, 마을활동가, 건축가와 조경가, 도시계획가, 행정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고, 지지부진하고 장기적인 과정을 밟아 나가야 한다.

(만일 지역사회가 자발적으로 블록 단위 또는 구역 단위로 관리방안을 수립하고자 한다면, 활용할 만한 제도도 있고, 지역단위 비법정계획을 수립할 수도 있다. 실제로 자체적인 마스터플랜을 수립한 자치구도 있었으나 그런 계획이 있다는 것을 구민들은 몰랐다. 좋은 계획이었으나 보고서로만 남게 되었다.)


또한 다양한 도시 여건을 반영하지 못하는 현 용도지역지구제의 한계도 있다. 건축물대장을 떼어 보면 해당 필지의 용도지구를 알 수 있는데, 그 용도지구에 따라 필지의 건폐율, 용적률이 정해진다. 지구단위계획 등 별도 계획이 적용되어 있다면 그 계획에 따르게 되겠지만, 일반적인 다세대다가구주택밀집지역은 대부분 용도지역으로 밀도가 정해진다. 규모, 인접도로, 가로망, 주변 용도 등 필지의 컨디션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용도지구에 따라 건폐율과 용적률 기준이 적용되다 보니, 면적이 작고 좁은 도로에 인접한 필지임에도 건물은 자꾸만 더 높아진다. 지역마다 물리적 여건이 굉장히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용도지역이라는 잣대 하나만으로 밀도를 산정하는 것은 도시변화를 적절히 통제하기 못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은 꽤 오래전부터 인지되어 왔고, 관련된 연구도 많이 진행되어왔다. 앞으로 도시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제도로 되길 기대해 본다.  





도시는 한번 계획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 그동안 국가나 지자체가 전면철거를 통해 기존 도시를 지워버린 일을 수없이 해오긴 하였지만, 과거 역사를 통해 그로 인한 폐해를 여실히 배우지 않았던가. 우리는 과거 저밀도를 겨냥하고 계획된 토지구획정리사업지구의 필지 구조와 가로 체계를 기반으로, 고밀도가 되어버린 현재의 도시공간을 좀 더 살기 좋게 개선해 나가야 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공간적 여유가 없고, 지대와 부동산 구조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들이 있어, 이는 분명 꽤나 어려운 임무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며,
참여활동이 내게 이롭고 흥미로운 작업일  때 가능하다.

한 사람의 전문가가 계획을 세워 관리하기에는 우리 도시의 문제는 너무 복잡하고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필요하다. 도시계획이나 제도가 삶과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일단 관심을 가져야 한다. 관심을 갖기 위해서는 나와 관련이 있어야 하고, 내가 참여했을 때 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도시계획 참여활동이 거리가 멀지만, 행정 및 시민단체를 통해 점점 그 간극을 좁혀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런 참여활동은 귀찮은 데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또다른 사회생활이 될 수 있다. 직업적 일이나 유흥, 여가와는 또 다른 종류의 작업으로 내 삶을 더욱 다채롭게 보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로움을 내가 느낄 때, 참여가 자연스럽게 자발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앞으로 내가 사는 동네를 관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불편한 것을 건의하고, 나아가 미래상을 그려보는 일에 참여하고 결정하는 활동이 언젠가는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일상적인 활동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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