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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15. 2018

베를린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

베를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그린'

한국에 돌아와서 누군가 나에게
그곳에서 무엇이 가장 좋았느냐고 물을 때면,
어김없이 ‘자연’이라 답했다.

베를린 체류 3개월 후 내 머릿속에 남은 것은 온통 그린이었다. 특히 정제된 조경이 아니라, 관리되지 않은 투박한, 제멋대로 자라나 있는 나무들에서 더욱 자연성을 느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제나 그 자연성은 눈 앞 가까이에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밖에 나가서도 언제나 울창한 나무와 함께 였다. 얼마나 가까이에 있었는지, 집안에서부터 걸어서 15분 거리의 동네 녹색공간을 얘기하려 한다. 이곳에 올 때,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은 지친 상태로 왔었는데,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은 자연 덕분에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었고, 그 기억을 공유하고 싶었다. (물론 내가 지냈던 집과 동네 환경이라 베를린시 전체를 대표하긴 무리일 것이다.)



집 안에서, 정원 녹지

매일 아침마다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거실 창문을 열어 환기시키는 것이었다. 창문을 열면 정원의 꽃과 풀이 가득히 보인다. 풀내음과 함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잠을 깨우곤 했었다. 3개월 내내 아침마다 똑같이 한 일이었는데, 하루도 예외 없이 매번 기분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미세먼지가 심했던 한국을 떠나왔고 다시 돌아가면 또 미세먼지를 참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이곳의 신선한 공기를 하루라도 허투루 넘기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거실 창밖 모습/ 그야말로 녹색천지


창문을 열면 보이던 정원은 풀이 무성해 보이지만 그래도 나름 잘 관리된 정원 때문이었다. 가끔씩 새로운 꽃이 심어져 있기도 하고, 잡초가 없어져 있기도 했다. 이 공동주택의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관리하고, 가끔 전문 정원사를 불러 점검한 결과이다. 집 안에 있다가 가끔 창 밖에 소리가 나서 보면, 어르신들이 나오셔서 꽃을 심거나 물을 주고 계시곤 했다. 눈이 마주치면 웃으며 먼저 인사를 해주신다. 안부를 서로 묻는다. 잠깐 머무르러 온 이방인 입장에서 이런 따뜻한 미소와 말 한마디는 참 고맙고 가슴 떨린다.


물론 이렇게 정원이 잘 가꾸어진 것은 이 주택이 특별히 그러한 것일 수 있다. 거리를 걸어보면 관리되지 않은 공동주택 전면 정원도 많이 보인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공동주택들은 전면에 녹지공간을 둔다.(그렇지 않은 곳에서는 개별적으로 창가에 화분을 두거나, 중정에라도 녹지공간이 있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1층 세대의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하고, 사유지의 정원이지만 길을 걷는 사람에게는 공공녹지처럼 느껴질 수 있는 공공적 기능도 있다.



집 앞 거리, 오랜 역사가 느껴지는 가로수

집을 나가 거리에 서게 되면, 가로수와 전면 정원 덕분에, 거리에서 녹지를 풍부히 느낄 수 있다. 가로수들은 대부분 키도 크고 풍성하다. 그중 키카 꽤 크고 두꺼운 고목도 가끔 보인다. 가로수가 꽤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자란 것 같다. 이는 동네의 역사를 반영한다.


집앞 거리/ 전면 정원과 가로수만으로도 녹지가 꽤 많다.


이 동네는 프라이덴아우(Friedenau)라는 곳으로 1870년대, 부유한 중산층을 위한 주거지로 개발된 곳이다. 건물 대부분이 20세기 초에 개발되어 지금까지 큰 재건축이나 재개발 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덕분에, 150년의 시간 동안 도시녹지 인프라도 이어져 왔고, 한국에서 온 나도 풍부한 나무가 주는 자연성을 만끽할 수 있었다. 프라이덴아우의 초기 계획안을 찾지는 못했지만, 초기에 가로수 계획이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혹 계획에 없었더라도, 나중에 심을 수 있었던 것은 도로폭(가장 좁은 도로가 14m 정도)이 어느 정도는 규모 있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놀이터, 녹색 놀이 공간

집 앞 거리에서 30초 걸어가면(거의 바로 집 앞이라 할 수 있다.) 놀이터가 있다. 이곳도 녹색공간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어 그늘을 만들어준다. 참고로 이 놀이터는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놀이시설이 다양하여, 항상 아이들로 붐빈다. 엄마 아빠들은 아이들과 함께 놀거나,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기다린다. 나도 조카와 함께 놀이터에 가면, 같이 놀다가도 체력 한계로 그늘에 앉아 쉬곤 했었다. 놀이터이면서 공원의 기능도 하는 녹색공간이다.


집앞 놀이터/ 울창한 나무에 둘러싸여 덕분에 그늘도 생긴다



동네 공원, 아무렇게나 있어도 되는 공간

이제 좀 더 걸어나가 보겠다. 놀이터에서 나와 포켓파크 하나를 지나 3분 정도 걸어가면, Harry-Bresslau-Park 라는 공원이 나온다. 동네에서 비교적 넓은 이 공원에는 넓은 잔디공간과 페이브먼트 된 광장, 놀이터 등이 있다. 어디에서나 자기 자신에 충실한 베를리너들 답게, 이 동네 공원에서도 다들 각자의 방식대로 공간을 즐긴다. 풀밭에 널브러져 누워서 자거나,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는다. 돗자리를 깔고 옷을 거의 벗고 누워 일광욕을 하거나 와인과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배드민턴이나 원반을 갖고 나와 게임을 하기도 한다. 여럿이 놀기도 하고, 혼자 쉬기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기도 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크게 소란스럽지 않고, 번잡스럽지 않다. 나는 종종 혼자 있고 싶을 때나 책을 조용히 읽고 싶을 때, 이 공원으로 나와 나무 아래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한가로이 자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덩달아 더욱 한가해지고 이완되었었다.


Harry-Bresslau-Park / 아무렇게나 앉거나 눕는다. 게임도 하고 책도 읽는다. 그냥 각자 하고 싶은 걸 한다.



묘지공원, 삶과 죽음 사이를 채우는 녹지  

이제 Harry-Bresslau-Park를 나와 15~20분 정도 프라이덴 아우 북쪽 끝으로 더 걸어가 보자. 가는 길 곳곳에 역시나 포켓파크, 놀이터, 울창한 가로수 등등이 풍성했다. 동네 외곽 즈음에 도착하면 묘지공원이 있다. 묘지가 아닌 공원에 들어가는 느낌이었지만, 그럼에도 묘지가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숙연해졌었다. 공원은 굉장히 한산했다. 걷다 보면 산책하는 할머니,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나온 엄마 등등을 만났었다. 죽은 이들의 공간에 갓 태어난 아기가 산책하고 있다는 것이 묘했다. 하긴 살아있는 나도 이곳을 그저 산책 공간 정도로 다니고 있으니 아기랑 다를 게 없긴 했다. 울창한 나무과 관목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드는 착각도 들었다. 분명 바닥에는 묘지와 묘비, 그리고 지인들이 두고 간 꽃다발들이 있는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아우라를 덮어버리고도 남을 만큼 녹지가 많았다. 살짝 시선을 올리면, 그저 어딘가 숲 속에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묘지공원/ 메인건물동과 묘비가 보인다. 나무과 관목이 꽤 울창하다.


묘비공원/ 정말 이렇게나 울창했다.


한편으로는, 이런 공원은 우리와 문화적으로 정말 다르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 문화에서 묘지는 산 높은 곳에 위치한 곳, 조상님이 계시는 신성한 곳인데, 이들은 자신들의 삶 바로 옆에 둔다. 심지어 내 가족의 묘지가 일반 불특정 다수의 공원이 된다. 죽음을 바로 옆에 두는 그들. 죽음을 옆에 둠으로써 삶을 더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이 공원 또한 나무와 식물에 둘러싸여 있다. 도시 주거지에 위치한 묘지이지만, 워낙 울창하다 보니 공원에 들어오면 외부와 단절되어 전혀 다른 공간에 와 있는 기분도 든다.








내가 지냈던 동네에는 집 앞, 거리, 공원 등 도처에 녹지가 있었다. 독일은 국민들이 모두 일정 거리 내에 공원에 접근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법으로 정했다 하더라도, 기존 도시에서 여유공간이 확보되기 어렵다면 실현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그 공원은 정말로 잘 이용되고 있다. 항상 사람들, 특히 엄마 아빠와 아이들이 많았는데, 공원이나 놀이터가 많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이용할 사람들이 시간적 여유가 없다면, 이용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동네에서 이렇게 자연이 풍부할 수 있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여건들 덕분인 것 같다.


오픈스페이스를 고려한 도시계획,
녹지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법.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놀고,
공원에서 여가를 보낼 수 있는 시간적 여유.

150년 전 계획된 이 동네의 도시공간체계는, 지금을 살아가는 이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담아내고 있다. 가로공간 및 건물 전면 공간은 가로수, 주택 전면 정원, 곳곳의 소공원 공간으로서 도시에 녹지 어메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가로수가 소공원 등의 녹지공간들이 150년 전에 계획되었던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비교적 여유 있게 계획된 도로폭(14m) 덕분에 자동차 이동, 보행자 공간, 가로수 공간, 녹지대 등이 가로공간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동네에서 지내면서, 한국 도시공간이 많이 생각났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가면, 한강, 서울숲, 월드컵경기장 공원, 어린이대공원 등 큰 훌륭한 녹지공간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내 집 앞에서, 우리 동네에서는 녹지공간을 일상적으로 접하기 어려웠다. 뒷산을 오르면 가능하겠지만, 누워서 뒹굴거리고 게임하고 아이와 함께 노는 등의 여가를 보내기엔 마땅치 않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눈을 두는 곳 어디에서나
녹색이 보였던 그곳


그곳에서 나는 뾰족해졌었던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아마도 내 삶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였을수 있으나, 녹색공간이 준 순간순간의 감흥은 나에게 너무 소중했었고 지금도 남아있다. 도시에 살면서도 자연성을 가까이할 수 있다는 것이 내 삶의 질에 주는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도처에 공공녹지가 풍부한 도시와,

돈을 주고 사면 집 주변에 녹지를 둘 수 있는 도시.

둘 중에 어느 곳이 자연성이 풍부하고, 그것이 도시매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실제로 베를린은 유럽에서 가장 녹지가 많은 도시 중 하나이며, 어떤 이는 베를린의 창조성이 그린에서 나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 또한 100% 공감이다. 하지만 또 다른 기사에서는 베를린이 녹지공간을 조성해오는데 노력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개발로 인해 소멸된 자연도 많다고 한다. 그리고 조경관리사 인력 부족으로 도시녹지공간의 관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하긴 인력문제와 예산 문제 등으로 베를린의 자연이 지나치게 울창했던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그렇게 관리가 좀 덜 된 녹지공간이 더 좋긴 했지만.



글이 좀 길었지만, 한번은 베를린에서 내가 가장 많이 머물렀던 동네의 녹지공간에 대해, 걷는 시퀀스대로 후기를 남겨보고 싶었다. 사실 2017년 가을, 처음 베를린에 갔을 때는 이 관리 부실의 무성한 녹지가 세련되지 않게만 보였었다. 하지만 이번 2018년 3개월 동안 나는 오히려 이 거친 모습에 더 반했었기에. 베를린에 갈 계획이라면, 다소 거칠지만 울창한 이 일상적인 녹지를 충분히 만끽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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