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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17. 2018

베를린 요가 공간은 좀 달랐다

사람들과, 날씨로부터 열린 공간. 옐로우요가(Yellow Yoga)  

한국에서 2년 정도 꾸준히 요가를 해왔다. 일주일에 2-3회를 해왔던 터라, 베를린에 가서도 꾸준히 요가를 하고 싶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동작만 보고 얼추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알아들을 수 있는 영어 스튜디오를 찾았다. 결국 검색해서 나온 곳은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옐로 요가 스튜디오(yellow yoga)였다. 그런데 이곳의 이용방식이 좀 특이했다. 일반적인 요가 스튜디오가 아닌 것 같았다. 



Community Supported Yoga Project,
커뮤니티를 위한 요가 프로젝트라 한다. 


지역의 학생이나 소득이 적은 사람들도 적은 비용으로 요가를 즐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수업 1회 비용을 8유로, 10유로, 12유로 중 자신의 월 소득에 따라 알아서 내는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10유로가 단체가 유지될 수 있는 적정금액이었고, 12유로는 가치에 동참하고 이 단체가 지속돼 길 바란다면 낼 수 있는 금액, 그리고 8유로는 월 소득이 없거나 적을 경우 내는 금액이다. 그리고 월 단위가 아니라 1회씩 비용을 내고 이용할 수가 있어 월 단위 목돈을 내지 않아도 체험해볼 수가 있다. 학생이나 여행자에게 딱 맞는 비용제인 것 같았다. 다른 일반적인 스튜디오들도 알아보긴 했는데 대부분 월 단위 등록을 해야 했다. 나 또한 좀 길게 체류하긴 하지만 여행자 입장이다 보니 가볍게 1회 이용할 수 있는 이곳으로 정했다.  


사전 조사를 마치고 4월의 어느 날 일요일,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섰다. 내가 사는 동네는 베를린 남서쪽이고 요가 스튜디오는 동쪽이라 버스를 갈아타고 40분 정도 걸려 가는 꽤 먼 거리였다. 그래도 베를린의 요가 스튜디오 분위기는 어떤지 궁금했기에 열심히 갔다.


버스에서 내려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 한 건물의 현관 앞에 섰다. 일단 주소지는 맞는데, 간판도 하나 없다. 초인종을 누르려 보니, Yellow Yoga라는 이름이 보인다. 벨을 누르니 곧 있다가 문이 열렀다. 들어가니 또 다른 분이 보였다. 통로에는 자전거가 세워져 있었다. 


이런 통로를 지나 나가면 중정이 나온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정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아마도 1층에 유치원이 있는 것 같았다. 여느 다른 건축물처럼 이 곳도 저층은 비주거용도로, 고층은 주거로 이용되고 있다. 독일 도심지에는 이런 복합건축물이 많다. 하나의 용도로 정해져 있지 않고 변화가능한 건물. 예를 들어 이 지역에 갑자기 상업업무 수요가 늘어나면 주거였던 공간이 오피스나 상가로 이용되고, 다시 비주거가 줄어들고 주거수요가 늘어나면 오피스였던 공간은 다시 주거공간으로 바뀐다. 그때그때 변화하는 도시의 여건에 대응할 수 있는 복합용도(Mixed-use)의 건물이다. 말하자면 '도시형 건축'이다. 


스튜디오가 위치한 건물의 중정/ 스튜디오 창문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

 

나는 아이들이 놀고 있는 중정을 지나 또 다른 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다. 처음에 열고 들어온 문이 중정을 형성하는 건물들 전체의 공용문이고, 이제 들어가는 문은 중정건물을 구성하는 하나의 건물에 들어가는 문이다. 이런 건축유형은 사실 책이나 사례, 에어비앤비에서나 가끔 접해 봤더니, 진입하는 과정이 꽤 재미있었다.


문이 열리자 좁은 계단실이 보였다. 2개층 정도 올라가니 자그마한 플랫 하나가 나왔다. 탁 트인 스튜디오 공간과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이전 클래스를 들은 사람들이 나갈 채비를 하며 정리 중이었다. 강사로 보이는 사람이 안쪽에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녀에게 비용을 내는 듯했다. 또는 어떤 카드를 내고 도장을 받기도 했다. 웹사이트에서 봤던 회원권을 구입한 사람들인가 보다. 나도 가서 처음 왔다고 하며 비용을 내려고 하니, 처음 왔으면 양식 하나를 작성해야 한다며 종이 한잔을 건네주었다. 이름과 거주지 등 간단한 정보를 기입하고, 10유로를 냈다. 



탈의실은 없는 이 곳.
다들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는다. 


집에서 요가복을 입고 온 나는 한쪽 구석에 가방을 두고 매트를 펼치러 가려는데, 내 주위의 사람들이 옷을 벗고 요가복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한국에서 여성전용 요가 스튜디오를 다녔고, 여성 전용이라 할지라도 탈의실과 스튜디오가 분리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남녀 모두 이용하는 곳이면서도, 따로 탈의실이 없었다. 남녀 할 것 없이, 타인의 속 살이 갑자기 나타나니 눈을 어디 둬야 할지 모르게 당황스러웠다. 이곳의 문화이긴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인지라, 아무렇지 않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애써 태연한 척 하며, 스튜디오 중앙으로 나갔다. 




큰 창으로 들어오는 빛, 
꽃과 나무들과 함께하는 


미리 자리 잡은 사람들을 보며 눈치껏 매트를 깔고 자리를 잡았다. 아직 시작하기까지 여유가 남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중정이 보이는 큰 창으로 빛과 바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창문 너머 맞은편으로는 가정집 베란다가 보였다. 창 턱이 내 무릎 정도 높이라, 매트에 앉아서도 밖이 훤히 잘 보였다. 창가에는 꽃병이 있다. 역시 꽃을 사랑하는 독일 사람들 답다. 


그러고 보면 한국에서의 스튜디오에서는 창문이 있어도 닫고 밀폐된 상태에서 '핫요가' 스타일로 했었는데, 여기는 이렇게 태양빛과 바람을 맞을 수 있는 공간이라 색다르고 좋았다. 날씨가 워낙 좋아 선선해서 기분이 더 좋기도 했고.


한쪽 면은 큰 창이 있어, 빛이 충분히 들어온다.

 


어느 동작 하나도 같지 않았다.
내 맘대로 요가하는 사람들. 


일요일이라 그런지, 어느새 스튜디오는 빼곡하게 가득 채워졌다. 한 30%는 남자분들인 것 같았고, 내 옆에는 덩치 좋은 터키 아저씨가 앉았다. 강사의 움직임에 따라 수업이 시작되었다. 최대한 강사의 움직임을 보면서 열심히 따라하고 있는데, 주변을 보니 갑자기 긴장이 풀리고 재미있어 졌다. 


이 일요일의 클래스는 전문적으로 요가를 하는 사람들보다는 호기심에 체험해보거나, 나처럼 여행온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보니 요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그들은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강사의 동작을 따라하고 있었는데, 전혀 비슷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고, 동작을 그냥 무시하고 자기만의 움직임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사도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 듯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요가 동작 하나하나에 신경쓰기 보다는 자기의 몸에 집중하는 사람들. 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그저 이 시간 동안은 정확한 동작도 중요하지만, 내 몸에 더 집중하고 싶어졌다. 그러고보면 강사님들은 언제나 동작 하나하나 보다는 내 몸에, 내 호흡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었는데, 내가 진정으로 그러지 못했었구나 싶었다. 



땀을 흠뻑 흘리고 나니,
한국을 떠나 베를린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이제야 내가 이곳에 발을 붙이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묵었던 여독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기도 했다. 한국에서 올 때 짊어지고 왔던 걱정과 두려움들이 땀과 함께 쓸려 나간듯 했다. 내 생활터전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베를린이라는 곳에 와서도 나는 바로 '한국의 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곳에서 하던 생각의 관성이 자꾸만 작용했었다. 나는 이제 그곳이 아닌 여기에 있는데.

그런 관성들이 이제서야 조금씩 빠져나가는 듯 했다. 





수업이 끝나고 보니 다들 공용 수건과 세정제를 갖고 와서 각자 자기가 사용한 매트를 닦고, 빨랫줄에 걸어놓았다. 나도 순서를 기다렸다가 세정제를 뿌려 수건으로 매트를 닦았다. 자리를 정리하고, 짐을 챙겼다. 한번 둘러보고 복잡한 사람들 틈에서 나와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심한 허기가 몰려왔다. 어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 이 후로 2번인가 정도 더 갔던 것 같다. 너무 멀기도 하고, 베를린에서 지내다 보니 한 시간에 10유로(한국돈 13,000원)라는 비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다. 그래서 몇 번 가다가, 그냥 집에서 매트를 깔고 요가를 했다. 밋업을 나가볼까도 했지만, 매번 시간이 안 맞아거나(귀찮아서;;) 그냥 셀프요가로 해결했다. 







엘로우 요가 스튜디오에서의 공간과 경험은 너무 좋았었다. 빛과 바람이 풍성하게 들어오는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여전히 기억난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바깥바람과 태양광을 느낄 수 있는 요가 스튜디오가 있을까? 왜 내가 다녔던 곳들은 전부 밀폐되고 어두운 스튜디오였을까. 왜 이렇게 다를까. 이유에 대해 생각해 봤다. 


기후와 문화가 다르다.

베를린은 우리나라보다 위도가 높아 초여름까지도 선선하고 습하지 않다. 햇볕은 강해도 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서늘해진다. 대형마트 외에는 에어컨이 있는 곳이 거의 없다. 당연히 집에도 없고 버스, 지하철에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온이 올라간다면 최대한 자연바람을 통풍을 시킨다. 일단은 자연적 환경에 사람들이 최대한 맞춘다. 

반면 우리나라는 덥고 습하다. 게다가 점점 폭염이 심해지고 있다. 야외 거리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건물 안과 집, 버스, 지하철은 에어컨으로 기온이 조절된다. 그러므로 요가 스튜디오도 에어컨으로 기온을 조절한다. 여럿이 한 공간에서 움직이다 보면 실내온도가 더 올라가기 마련이니 조절이 필요해진다. 물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공조시스템으로 공간환경을 통제한다. 


주변 여건의 차이가 크다. 

옐로 요가는 크로이츠베르크 중심가 근처에 위치해 있었다. 나름 번화한 동네였다. 가로변으로는 카페나 레스토랑, 서점 등이 있었고, 요가 스튜디오는 현관을 지나 중정으로 들어가야 했다. 일단 안 쪽에 위치해 있어, 거리변 소음이 차단되어 조용하고 안정된 분위기 조성이 가능하다. 그리고 중정의 나무들과 맞은편 테라스, 하늘까지 아름다운 풍경이 만들어진다. 열린 공간에서 날씨를 느끼며 명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요가 스튜디오는 대부분 자동차 도로변 상가건물에 위치해 있다. 창문을 열면 시끄러운 자동차 소음이 들려온다.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혼란스러운 간판과 건물 경관이 펼쳐진다. 조용하게 정신을 집중해야 하는 공간이다보니, 시끄러운 소음과 현란한 간판들을 차단해야 한다. 그러려면 공간을 닫아야 한다. 





나는 서울로 돌아와서 집 앞 요가 스튜디오를 등록했다. 이곳은 역시 전에 다니던 것처럼 여성전용이고, 탈의실과 사물함이 별도로 있다. 밀폐되고 통제되는 공간에서 요가를 한다. 깨끗하고 편하고 쾌적하긴 하다. 한국이라는 도시의 특성상, 닫힌 공간이어야 조용함이 가능하긴 하다. 

가끔씩 엘로우 요가 스튜디오의 열린 공간이 떠오른다. 도시에 위치해 있었지만 정감 있고 좀 더 자연에 가까웠던 공간. 요가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베를린 옐로 요가 이용 추천한다. 그 공간이 주는 느낌, 괜찮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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