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선영 Sep 20. 2018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

물놀이하는호수, 베를린 크루메랑케 

베를린 도시 근교에는 호수가 많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3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어 도시민들은 종종 호수와 숲으로 놀러 나간다. 6월, 이상고온 현상으로 30도를 웃돌던 어느 날 처음으로 크루메랑케(Krumme lanke)를 가게 되었다. 형부의 회사 동료가 추천해준 '더운 날, 주말에 물놀이하러 갈 만한 곳'이었다. 조카가 워낙 물놀이를 좋아하기도 했고, 내가 와 있는 동안 한번 다 같이 놀러 가 보자는 취지로 갓난쟁이 둘째 조카까지 모두 함께 금요일 하루 크루메랑케 물놀이를 감행하게 되었다. 


지하철, 버스를 타고 베를린 남서쪽으로 내려가 산속 오솔길을 지나 마침내 도착한 그곳. 이미 햇빛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호숫가가 가득 차 있었다. 우리도 한 자리 잡고, 짐을 풀었다. 조카는 신이 나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형부와 함께 물총을 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베를린 크루메랑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었다



자연의 물놀이, 너무 오랜만이었다.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이런 자연의 '물'을 '몸'으로 접한 지 워낙 오래된 터라, 사실 약간의 적응이 필요했다. 어릴 때, 산속 계곡 물에서 놀거나, 한탄강가에서 놀아본 기억은 있어도 너무 오래전 일이었다. 한국에서 자연하천은 거의 한강이나 집 앞 홍제천으로만 접해왔었다. 어릴 때 홍제천에 들어가서 놀긴 했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다. 한강 또한 마찬가지이다. 레저스포츠 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한강변은 해변가처럼 물놀이 하는 곳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나에겐 자연의 물은 산속 계곡 물이 아닌 이상, 깨끗하지 않은 물, 더러운 물이라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있었던 것 같다. 람들이 수영복을 입고 호수에서 물놀이를 하는 풍경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일단 앉아서 구경했다. 

나는 일단 언니와 자리에 앉아 와인을 마시면서 사람들의 모습과 자연 풍경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따뜻한 햇빛을 받았다. 와인도 한두모금 마시니 몸이 바닥에 드러눕고 붙는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긴장과 경계를 풀고 주위를 하나하나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샌드비치(Sand Beach) 구역에서 자리를 펴고 놀면 된다.



 먹으며 놀다가,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는 사람들 


우리 앞 돗자리에 삼삼오오 모여 있는 젊은이들은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은 계속 빵과 오이, 버터, 또는 과일, 와인 등 먹을 것을 만들어 나눠주었고, 나머지 사람들을 쉬엄쉬엄 그것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다가 몇몇이 물에 들어갔고, 뒤이어 한 명이 그 자리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고는 물로 들어갔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랬다. 티를 안내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위해 노력했다. 많이 다르구나 싶었다. 그들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일이 과일이나 빵을 먹고 대화하는 것처럼 일상적인 일이었다. 



 비키니 브라 정도는 풀 수 있지  


다른 돗자리에는 더 어린 친구들이 모여 있었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음악도 틀어놓고, 야심 차게 튜브보트도 사와 열심히 불고 있었다. 대학생으로 보였는데, 가지고 있는 소지품을 보니 근처 베를린 자유대 학생들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놀러 온 듯 보였다. 여학생 무리 중 남학생 한 명이 있었는데, 여학생 한 명의 남자 친구였다. 다 같이 누워서 일광욕을 하는데, 여학생들은 모두 엎드려서 브라탑을 풀었다.

과연 나는 한국에서 친구의 남자 친구가 있는데, 비키니 브라탑을 풀 수 있을까.  ㅇㅅㅇ 




 독일엔 누드비치가 있다고 들었던 게 생각났다 


어린 친구들의 자연스러움(?)에 놀라고 있는 사이, 멀리서 비키니를 모두 해제한 어머니(할머니로 보이기도 하는)가 보였다. 아, 독일엔 누드비치가 있다고 했던가. 그제야 생각이 났다. 연세가 지긋해 보이시는 어머니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유유히 호수 안으로 들어가 수영을 시작했다. 그녀가 너무나도 당당하고 아무렇지 않았기 때문일까. 순간 그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보였다. 조금 과장을 하자면, 마치 모든 것을 초월한 존재로 보였다. 아무도 그녀를 보지 않았다. 의식적으로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신경 쓰지 않는 것이었다. 타인이 어떤 모습이든 신경 쓰지 않는 이 사람들. 


과연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수영하는 기분은 과연 어떨까? 엄청 자유로운 기분이겠다는 생각은 들며 그 느낌이 궁금해지지만, 차마 나는 감행하지 못할 것 같다. 60세쯤 되면 할 수도 있으려나 싶다가도, 고개를 젓는다. 그러고 보니 3~4세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수영복을 입은 아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아이들도 많았다. 






나도 용기내어
물에 들어가 보았다.

한참을 바라보다 보니, 나도 저 풍경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지를 접어 올리고 물가로 향했다. 태양빛에 달궈진 뜨끈뜨끈한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느껴졌다. 조카는 구명조끼를 입고 물속에서 형부와 물총놀이를 하며 신나게 놀고 있었다. 조카가 있는 쪽까지 슬슬 걸어 들어가니 허벅지 중간까지 물이 올라왔다. 아 시원해라.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물이 깨끗해서 무릎 정도 깊이에서는 바닥이 보였고, 물 냄새도 나지 않았다. 깨끗했다. 수영복을 챙겨 오지 않은 것이 매우 아쉬워졌다. 서있다 보니 옆으로 작은 물고기들이 지나갔다. 조금 이따 보니 어디선가 오리 서너 마리가 나타나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지나갔다. 사람들은 물놀이를 하고, 오리와 물고기는 먹이를 찾는다. 호수는 그런 곳이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들

사람들 앞에서 옷을 벗고 수영복으로 갈아입는 일, 옷을 벗고 수영하는 일.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일텐데 이곳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저 일상이다. 어느 문화권에서는 말도 안되는 일이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평범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여행할 때 마다 느끼는 점이다. 그리고 나의 기준으로 타인을 함부로 평가하고 제단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또 배운다.



자연호수에서의 물놀이 참 부러웠다. 

그리고 가까운 거리에 물놀이할 수 있는 자연호수가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다. 언제고 쉼이 필요할 때 갔다 올 수 있는 거리. 게다가 바라보는 것뿐 아니라 들어가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자연. 그런데 원래 인간은 그렇게 살았지. 크루메랑케를 다녀와서 나는 그동안 잊고 있던 느낌을 되찾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사는 한국의 강과 하천도 언제든 몸으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되찾을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과 바람이 생겼다. 한국에서는 의식적으로 그런 바람을 갖지 않으려고 했었다. 그러기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많았었고, 이루어지기 힘든 바람을 가짐으로써 그것이 실패되는 것을 매번 확인하는 것은 너무 괴로운 일이기에, 아예 바람조차 갖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라고 싶어 졌다. 100년이 걸리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주 조금은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베를린 요가 공간은 좀 달랐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