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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Sep 28. 2018

몸이 불편해도 괜찮아

휠체어를 타도 어디든 갈 수 있는 무장애도시

베를린에서 길을 걸으면서 문득문득 도드라지게 보였던 모습이 있었다. 휠체어를 탄 사람들이나, 장애인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들을 일상적으로 버스를 탈 때나, 길을 걸을 때, 카페에서, 도심 관광지에서 어디에서든 자주 마주쳤었다. '베를린에는 장애인들이 왜 이렇게 많지?'라는 생각이 문득 스쳤고, 그다음에 바로, '장애인들이 다닐 수 있는 환경이라 그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횡단보도 모습, 단차가 거의 없고 중앙에는 보행자구간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가로공간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 휠체어를 탄 사람이어도 힘들지 않게 이동할 수 있었다. 보도와 차도의 단차가 낮고, 횡단보도에는 전 구간이 거의 경사로로 되어 있다. 보도와 차도의 단차가 낮아 꼭 횡단보도 구간이 아니더라도 차도에서 보도로 올라가거나 내려올 수 있어 보였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는 보도와 차도의 단차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렇지만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단차는 그들의 접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휠체어를 탄 사람이 무단횡단을 할 수 있다는 얘기가 아니다.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행위를 몸이 불편한 사람도 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것이다.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안 하는 것과 불가능해서 못 하는 것은 전혀 다르다. 


버스나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에도 이들은 본인들이 원한다면 언제든 이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그의 탑승에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 준다. 누구도 독촉하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안전하게 타는 것인지 확인하는 정도의 눈길이다. 


이런 모습 뒤에는 베를린 시의 노력이 있어왔다. 


https://youtu.be/BgSuQ5fhFuw

Short film: Berlin accessible for all 2020


베를린 시는 시민이나 방문객 모두가 도시에서 자유롭게 이동해야 한다고 선언한다. 개인용무를 보거나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은 곧 더 높은 '삶의 질'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는 일상적으로 다니는 길, 교통수단을 선택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일상, 일, 여가시간을 결정하고 구성하는데 제한받고 싶어하지 않는다. 몸이 편하든, 불편하든 누구나 같은 마음이다. 

베를린시는 이런 차원에서 시민들에게 '모두를 위한 무장애도시'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시는 공공건축과 공공공간이 더 많은 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오고 있고, 도시개발 및 주택국의 주요 업무분야로 '무장애 건설 Barrier-free construction' 이 있다. 모든 이에게 장애물없는 도시공간을 조성하는 업무이다. 홈페이지에는 공공공간과 공공건축에 대한 매뉴얼이 올라와 있다. 2011년 버전부터 2018년 최근 업데이트된 버전까지 올라와 있다. 또한 관련 법령의 항목과 이벤트를 위해 조성하는 임시적인 건물을 무장애공간으로 만드는 가이드라인까지 올라와 있다. 


베를린시는 이런 노력을 바탕으로 EU 차원의 '모두를 위한 무장애도시(Barrier-free city for all)' 워킹그룹에 참여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헬싱키, 리스본, 리옹, 오슬로, 파리, 프라하, 베니스,  바르샤바 등의 도시가 참여하는 네트워크이다.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면서 무장애도시의 테마와 주요 이슈를 논하고, 사례를 공유한다. 2018년에는 4월에 18번째 미팅이 프라하에서 개최되었었다. 


(출처 : 베를린시청 홈페이지)







물론 베를린시의 홈페이지를 통해 정보를 파악한 것이기 때문에, 시의 정책과 제도, 그리고 EU 차원의 워킹그룹이 어떻게 추진되고, 그것이 도시공간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자세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도시의 방문객 입장으로서 3개월 동안, 걸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자전거를 타고, 또는 조카의 유모차를 끌며 이동해본 결과, 장애물이 크게 느꼈던 적은 없었다. 오히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 기차를 탈 수 있어서, 유모차를 끌고 지하철과 버스를 아무 어려움 없이 탈 수 있었다. 


 '이동의 자유, 교통수단 선택의 자유'가
이런 거 구나.  

한국에서도 몇년 전 무장애도시, 유니버셜디자인, 배리어프리... 라는 단어들이 유행처럼 지자체 정책 사항으로 올라왔던 적이 있다. 무장애도시를 검색해보면 지자체의 홈페이지와 기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몇개 구간을 개선하고 이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도시 전체의 '이동성'을 고려한 것이라기 보다는 보기 좋은 사진 한장을 위해, 딱 그 부분만 개선한 것 같은 느낌이다. 일부 구간만 배리어프리로 디자인한다고 도시 이동성이 향상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우리는 도시에서 끊임없이 움직이고 이동한다. 이동할 때의 장애가 없는 것이 무장애도시이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에서는 이동성 개념이 함께 따라오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유는 아마 무장애도시로의 도시공간 개선이라는 것이 가시적으로 확연히 드러나지 않아서 같다. 턱을 낮추고 경사로를 조성하는 등 디테일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휠체어를 타거나 유모차를 끌고 이동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변화로 체감되 겠지만, 신체건강한 사람들은 잘 느낄 수 없을 수 있다. 가시적인 성과로 잘 드러나지 않고, 정책입안자들은 대부분 신체건강한 사람들일테니 그 불편함을 잘 모른다. 길에서도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잘 보이지 않으니, 왠지 세상은 건강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무장애도시 만들기가 장기적인 정책으로 채택되기는 힘들 것이다. 


이런 정책의 결과는 한국의 버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그동안 한국의 버스에 설치된 장애인용 좌석과 기구가 작동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 없다. 버스 안에 장애인용 공간을 만들어 놓는다고 장애인들이 과연 버스를 탈 수 있겠는가. 일단 집에서 나와서부터가 장애물 천국이니, 집밖으로 나오는 것부터가 어려움이다. 어렵게 정류장까지 왔어도, 많은 사람들의 짜증섞인 시선을 받으면서 버스를 마음편히 탈 수 있을까.





한국에서도 인간은 헌법에 명시된 신체의 자유를 갖는다. 하지만 도시환경은 신체가 건강한 사람에게만 그것이 적용되는 것 같다. 휠체어를 탔거나, 신체에 불편함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민폐가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장애인 관련 기사에 불편하면 왜 밖에 나오냐 라는 댓글을 보고 충격받았던 것도 생각났다. 사람은 집 안에 있다가도 밖에 나가서 바람도 쐬고 싶고 사람들도 만나고 구경하고 싶어 한다. 누구나 그러하다. 그런데 신체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것이 불가능하고, 신체가 불편하니 개인이 감수해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누구에게 있는가. 한국에서 장애인학교 건립을 반대했던 지역도 떠올랐다. 반대 의견 중에 아이들이 보기에 교육상 안 좋다는 이야기를 보고 실소가 났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신체 건강한 사람뿐 아니라, 어린아이, 노인, 아픈 사람들, 몸이 불편한 사람들 등 다양한 신체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신체조건에 따라 그들의 기본 욕구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마주칠 때, 그들이 함께 섞이는 풍경이 자연스러울 때,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몸이 불편한 사람도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사는 세상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그런 것이 도시의 교육적 기능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가 정상이라고 부르는 범주를 벗어나는 장애인들을 눈에 보이지 않게 치우고, 정상인들만 사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과연 교육에 좋은 것일까. 오히려 '진짜 세상'을 모른 채,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면서 개방성과 포용성을 갖지 못한 어른을 만드는 것 아닐까.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 그리고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른다. 특히 부정적 감정이나 불편함, 고통에 대해서는 상상력이 잘 발휘되지 않는 것 같다. 


다수의 건강한 사람들 중심으로 조성된 도시에서 소수의 몸이 불편한 사람은 그 불편을 오로지 개인의 문제로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건강한 사람들도 몸이 불편해 질텐데...

신체가 건강한 사람이 기준이 아니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 노약자를 중심으로 환경을 만든다면, 모든 사람들이 신체의 자유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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