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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Oct 11. 2018

좋은 놀이터란,

도전하고 넘어질 수 있는 공간  

아침으로 전 날 사놓은 바게트를 먹고 조카와 숨바꼭질을 하며 놀다가, 집 앞 놀이터로 나갔다. 


베를린에는 정말 놀이터가 곳곳에 많지만 특히 이 동네 놀이터는 넓고 놀이기구가 많기로 유명하다. 놀이터 이름도 무려 '서커스 놀이터(Zirkus Playground)'이다. 언니네 가족은 집을 정할 때 이 놀이터가 한몫했다고 한다.


집에서 나와 몇 걸음만 걸으면 놀이터에 도착한다. 놀이터 바닥은 푹신한 모래가 깔려 있고, 정글짐의 확장판 같은 형태의 놀이시설이 있다. 우리나라의 규격화된 플라스틱 놀이터 시설과는 정말 달랐다. 지지대 여러 개와 그 사이를 연결하는 끈으로 구성된 단순한 놀이기구였고, 우리나라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비해 다소 위험해 보이기도 하는 시설물들이었다. 


게다가 놀이터 한쪽 벽면에는 현란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의 배경으로 그라피티가 보이니, 다소 신선했고, 참 베를린스러운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벽면 그래피티를 배경으로 한 놀이터 


구글맵 스트리트뷰로 보면, 2008년도 촬영 사진이 나온다. 아직 놀이터가 아닌, 공터인 모습이다. 그라피티도 단순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이터도 생기고, 그라피티도 더욱 화려해져 온 것이었다. 아마 우리나라였다면, 놀이터로 조성하면서 당연히 그라피티를 지우고, '동심의 세계'를 표현하는 귀여운 벽화를 그렸을 것 같다. 하지만 이곳은 공터에서 놀이터로 변하면서도 그라피티는 그라피티대로 진화해 왔고, 덕분에 그 특유의 분위기가 유지되어 왔다. 


마치 공터가 가지고 있던 ‘무엇으로든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놀이터가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았다. 

21 Büsingstraße, Berlin / 구글 스트리트 맵 (촬영시점 2008년)


이제 놀이터가 된 이 공간에는 아이들이 맨발로 뛰어다니고, 모래바닥에 뒹군다. 어떤 행동이든 가능한 이 곳에서 굉장히 자유롭고 행복해 보인다. 한국에서 조카는 키즈카페에서 놀거나,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에서 놀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조카는 밝게 재미있게 놀고 있지만, 어쩐지 나는, 푸른 나무들과 하늘을 배경으로,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 사이에 있는 조카의 모습이 더 좋아 보였다. 그리고 이곳의 단순해 보이는 놀이시설을 이용해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다. 


놀이터 시설/ 아이들은 마치 곡예를 하듯 줄을 타고 움직인다 


일단 이곳에서 지지대와 끈을 지형지물로 이용해 몸을 움직인다. 여기에서 저기로 끈 하나를 잡고 이동하고 오르락내리락한다. 나무나 밧줄, 철 프레임 주요 재료이다. 짧은 팔다리를 쭉쭉 뻗으며 이동하는 것을 처음 볼 때는 떨어질 것 같아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쩐지 불안정해 보이고 위험해 보였다. 하지만 그러다 떨어져도 푹신한 모래바닥이다 보니 다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이 약간의 위험함이 조카에게 더 스릴 있고 재미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놀이터에서
매번 조금 어렵게, 조금 더 새롭게 논다. 

조카는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다가 점점 익숙해질수록 더 과감하게 이곳에서 저곳으로 이동했고, 폴짝 뛰기도 했다. 몸에 익은 동작은 이미 진부한 것이 되었는지, 그전에 놀던 방식보다 더 어려운 방식을 택하거나, 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높은 곳을 향해 올라갔다. 어떨 때는 마치 나에게, "이모 나 이런 것도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의기양양해하기도 했다. 








한국에 와서도 여전히 베를린의 놀이터가 생각난다. 매번 새로운 도전을 하고, 익숙한 것에서 새로움을 추구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공간. 물론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도 기발한 놀이를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다. 놀이터가 규격화되어 있다고 해서 발현될 창의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놀이의 과정 속에서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에서 마주하게 될 도전과 실패의 순간들을 느껴볼 수 있다면, 더 단단해질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에서도 규격화된 놀이터에 대한 비판과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에 대한 노력이 꾸준히 있어 왔다. 그리고 점점 이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듯하다. 많은 건축가, 조경가들이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 프로젝트에 관심 갖고 독특하고 재미있는 놀이터 공간을 설계하며 참여하고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공공 놀이터는 면적이나 개수에서 여전히 부족한 것이 현실이고, 아파트 단지 내 설치된 놀이터는 시설 유지관리 자금 부족이라는 이유로 폐쇄되기도 한다. 키즈카페에 갈 수 없는 아이들은 어디에서 놀 수 있을까. 


놀이터를 잘 설계하고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와 동시에 도시 내에서 아이들이 맘껏 놀 수 있도록 확보된 공공공간인 놀이터를 지키는 일도 굉장히 중요하다. 더불어, 놀이터와 집을 오가는 골목 자체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이루어져야 아이들이 자랄 수 있는 도시환경이 될 수 있다. 


우리 도시는 이제야 놀이터 공간의 질에 관심을 갖는 시점이 되었다. 놀이터에 대한 관심이 놀이터의 확대, 안전한 골목길 조성 등 아이들을 위한 도시공간에 대한 관심으로 차차 확대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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