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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Oct 18. 2018

베를린의 시장 재생 이야기

끊임없는 갈등과 조정의 과정, 마크트할레노인의 재생

마크트할레노인(Markthalle 9)은 베를린 스트리트 푸드마켓으로 종종 소개되는 곳이다. 영어로는 'market hall 9'이라는 의미이며, 지붕이 덮인 시장(covered matket)이다. 크로이츠베르크에 위치한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는 지역주민들의 일상적 시장으로 운영하고, '목요일 밤 스트리트 푸드마켓'과 같이 특정 요일에 테마가 있는 시장을 운영하고 있다.


베를린에 머물면서 2번 방문했었는데, 처음에는 공간적인 특색이 흥미로웠고, 그다음에는 다양한 음식과 사람들, 분위기에 매료되었었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어떻게 이 시장이 살아남은 걸까.


베를린에서는 '시장'이라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레베, 리들, 에데카, 데엠 등 대형마트들이 매우 저렴한 가격 경쟁력과 쾌적한 환경으로 무장하고, 우리나라보다 더 깊숙이 생활 속에 파고들어 있다. 시장은 광장이나 거리에서 열리는 주말 이벤트처럼 남아 있다. 그런 와중에 마크트할레 노인은 기존에 시장이 갖고 있는 식품판매라는 일상적 기능을 유지하면서 스트리트 푸드마켓이라는 이벤트도 운영하고 있다. 마크트할레노인은 과연 어떻게 살아남은 것일까.






1, 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부침이 많았던 시장,
지역주민들에 의해 지켜지다

베를린시는 19세기 말 급격한 인구 증가를 겪으면서, 도시 위생상의 문제, 식품 공급의 문제 등이 발생했다. 저렴한 식품의 신속하고 안정적인 공급을 위하여, 1882년 경철도(light rail)를 설치하여 신속한 유통망을 확보하였고, 1886년부터 1892년까지 철도와 연결되는 주요 지점에 총 14개의 마켓홀(Markthalle)을 조성하였다. 마켓홀지붕이 있는 시장(covered market)으로, 기존 노천시장에 비해 날씨와 관계없이 장사할 수 있었고, 식품을 보다 위생적으로 저장/관리할 수 있었다.


베를린 내 14개의 마켓홀 중 하나인 마크트할레노인은 1891년 개장하였다. 몇 개의 농가와 연결되는 입지에 조성이 되었고, 건물의 파사드는 세련되게 장식되었다. 높은 천정, 창문과 천창을 통해 채광과 통풍을 제공했으며, 주요한 운송수단인 마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입구를 넓게 만들었다. 각 4㎡ 면적인 300개의 부스가 있었고, 개장 첫 해 모든 자리가 임대되었다. 주민들은 성당 같은 큰 이 마켓홀에서 지금까지는 몰랐던 다양한 식품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호황이었다.


과거 마크트할레노인의 모습  (출처: https://markthalleneun.de/geschichte/)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4개의 마켓홀이 문을 닫았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8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전쟁 이후, 마크트할레노인을 포함한 3개의 마켓홀이 운영을 재개하였으나, 슈퍼마켓의 등장 및 확대로 운영의 어려움을 겪었다. 1969년 말, 베를린시는 국영기업 Berliner Großmarkt GmbH 에 마켓홀을 양도했고, 마크트할레노인의 상인들은 시장을 스스로 관리 운영하기 위해 조합을 설립했다. 그럼에도 매출은 정체되었다. 게다가 시장의 열악한 근무여건으로 인한 역량 있는 직원 부족, 지역 인구의 고령화로 인한 젊은 이주민들과의 갈등도 어려움을 더했다.


상황은 점점 불안정해졌고, 조합마저 해체되었다. 마크트할레노인의 소유주인 Berliner Großmarkt GmbH는 시장을 매물로 내놓기까지 하였다. 시장이 최고액 입찰자에게 팔린다면, 대형 자본이 지역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었다. 2001년부터 시장 주변의 지역그룹은 시장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주민 법안 발의를 했고, 예술가, 정치인, 중개인 등을 동원하여 매각을 반대하였다. 그 덕분에 2010년, 최고가 입찰자에게 매각한다는 계획은 무산되었다. 대신, 2009년부터 마크트할레노인에서 수많은 프로그램을 해온 프로젝트 그룹 마크트할레노인2011년  Markthalle Neun GmbH (마크트할레노인 유한회사)이라는 회사를 설립하여 115만 유로의 고정된 금액을 지불하고 시장을 매입했다. 지역 공간이었던 재래시장이 대자본에 의한 시장경제에 넘어가는 것을 지역사회가 막아낸 것이다.




대형마트의 극심한 가격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별화된 로컬푸드센터가 되기로 했다.
 

대형마트로의 전환을 막아낸 후, 이제는 지역 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살아남는 것이 관건이었다. 시장경제 체제 속에서 '지속 가능한 지역 시장'을 유지하는 것은, 대자본의 유입을 막은 것 이상으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독일은 유럽 국가 내에서도 일상적 식품의 물가가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를린은 더 저렴한 편이다. 마트 간 극심한 가격경쟁으로, 심지어 생산원가보다 낮은 판매가로 팔게 되는 경우가 있을 정도라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마크트할레노인의 팀은 시장을 단순한 '식품 공급처'로만 보지 않았다. "식품을 구입한다는 것은 지역 주민의 일상생활이고, 시장은 생산자들의 삶, 나아가 경제 사회적 관계의 장(場)이다."


마크트할레노인은 지역 주민들의 계획을 수용하고,  '지역에서 생산한 식품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선순환 로컬푸드 구조'를 구상했다. 어디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는 대형마트의 상품과의 차별화를 위해 사람과 동물, 환경을 고려하며, '로컬푸드 포인트'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시장의 기본 기능인 '판매' 뿐 아니라 '생산'도 고려한 콘셉트이다. 이와 더불어, 도시, 농업, 생물다양성,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비판적으로 다루는 프로젝트를 위한 플랫폼 기능을 하기도 한다. 지속 가능하고 세계적으로 공정한 식품시스템에 대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토론도 촉진한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취지로 시장을 재생하는 데 있어, 대출 은행을 찾는데에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리고 지어진지 120년이 넘은 건물이다 보니, 시설 관리와 난방 등에 드는 지출이 은행 월 상환금보다 많다. 상인들로부터 받는 임차료로 이 지출을 간신히 메꾸는 수준으로, 시장 내 작은 카페 2개를 운영하여 나오는 수익 정도가 있다고 한다.


목요일마다 열리는 스트리트푸드마켓,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 관광객들로 붐빈다.


높은 층고와 천창 덕분에  매대가 즐비한 시장 골목이 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들의 놀이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시장 전경을 볼 수 있다. 공간을 입체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건강하게 식품을 공급하려 했는데,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주민들과는 점점 멀어진다.

하지만, 건강한 식품의 생산과 유통에는 '돈'이 더 들게 된다. 그것은 곧 식품 가격의 상승으로 이어진다. 마크트할레노인이 위치한 크로이츠베르크는 베를린에서 가장 저렴한 동네 중 하나로, 주로 가난한 예술가, 학생들이 많이 산다. 지금은 조금씩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소득 수준이 낮은 계층이 우세한 지역이다. 이들은 식품의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가격을 먼저 따질 수밖에 없다. 마크트할레노인의 식품들이 가치를 찾는 동안, 크로이츠베르크 지역 주민들은 그곳에서 쇼핑을 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이런 여건을 감안하여, 마크트할레노인 팀은 기존 방침과 다르게 시장 내 기업형 마트인 Aldi를 남겨둘 계획이라고 한다.


또한 마크트할레노인이 점점 인기를 얻게 되면서, 관광객, 음식 애호가, 힙스터 등의 외지인들의 방문이 급격히 늘어났다. 조용했던 거리는 방문객들로 채워졌고, 쓰레기, 담배연기로 주거환경이 침해받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소음과 쓰레기 문제, 그리고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두려움 등 불만을 제기하였고, 마크트할레노인 팀은 주민들과의 워크숍을 통해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였다. 가장 심각한 문제인 소음과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해 포스터 2장을 제작하여 주변 거리과 인근 기관에 부착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주민 워크숍이 지속 운영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처음에 비해 참여 주민이 현저히 적어졌다고 한다.




마크트할레노인은 현재 진행형이다.

주요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이 북적북적대고 SNS, 미디어에 많이 소개된다고 해서, 이것이 시장 재생의 성공사례라고 '지금' 단정 지을 수 없다. 시장의 성공은 그들의 컨셉/비전인 '로컬푸드 포인트'로 자리 잡았을 때 일 것이다. 성공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방문객 수'가 아니라, '누가' 모였는 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크트할레노인에 지금 모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시장의 재생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올해로 7년째이다. 아무래도 지금 성공을 논하기에는 아직은 이른 것 같다. 로컬푸드 포인트라는 콘셉트에 맞게, 진짜 지역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장을 보는 시장이자 주민들이 모이는 사회적 관계의 장이 되기 위해서는 힘들고 오래 걸리더라도, 마크할레노인을 운영하는 팀, 시장 상인들, 지역 주민들 등이 모여 대화를 통해 하나하나 문제를 찾고 해결해 나가는 수밖에 다른 방도는 없다.





마크트할레노인은 공공의 개입이나 지원금, 지원센터 등의 투입없이, 시장 내에서 '알아서' 의사소통을 위한 갈등해결을 해나가고 있다. 오랜 시간 쌓아온 대화와 협업의 문화 덕분일까.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해 공적자금과 외부인력이 투입되고, 상인을 '교육'시키는 우리의 외재적 방식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시간이 필요한 일을, 국가나 공공에서 급하게 '촉진'하고 '유도' 한다고 10년 걸릴 일이 3년 만에 될까? 


이 이야기는 전통시장 활성화에 매진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는 사람과 콘셉트,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지속된 덕분이라 하고 싶다. 


사람

마크트할레노인에는 2001년부터 시장 주변에서 시장 살리기를 위한 움직임이 있었고, 2009년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한 크리에이터 그룹이 있었다. 이들은 시장을 위한 다양한 로컬 이벤트를 개최해왔고, 지역 주민들과 대형마트로 전화되는 것을 막아내고, 회사를 설립하여 직접 매각하기도 하였다. 계약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 그룹이 지역에서 활동해오면서 주민들의 신뢰를 얻었고, 대표성을 갖고 있다고 어느 정도 인정이 되었기에, 그리고 그들의 '로컬푸드 포인트'라는 컨셉이 가치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콘셉트  

마크트할레노인에서 정한 콘셉트 '로컬푸드 포인트'는 사람과 동물, 환경을 존중하면서 도시에서 어떻게 다른 식품, 다른 쇼핑이 가능할지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장을 단순한 거래장소가 아닌, 사회적 공간으로 본 것이다. 이 콘셉트는 이들 그 자체이다. 이것은 시장에서 판매하는 식품의 생산부터 유통과정, 판매과정 모든 곳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시장에서 열리는 다양한 행사나 프로젝트들도 이러한 콘셉트 하에 구상되고 발굴되는 것들이다. 모든 이들이 공유하며, 이를 염두에 두고 일을 추진한다. 결정해야 할 복잡한 사항이 발생하면 콘셉트를 생각해 본다. 구호에 지나지 않는 비전이 아니라, 시장에서 살아 움직이는 비전이 되어 있다.


시스템

시장 전체를 관리/운영하고 기획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 지역주민들과의 지속적인 대화의 장을 열고 워크숍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동식, 분리식 매대를 활용하여 시장 공간을 요일별 테마별로 운영한다. 관광객 대상의 푸드마켓과 지역민 대상의 일반시장을 분리하여 지나치게 관광화 되는 것을 피한다. 이런 방식은 모든 매대가 관광객 대상 업종으로 바뀌어 주민들의 일상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주민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우리의 많은 시장들에게 참고할만한 방식이 될 것 같다.








참고

https://markthalleneun.de/geschichte/

https://www.eurozine.com/making-the-market/

https://cooperativecity.org/2016/12/23/markthalle-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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