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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선영 Nov 15. 2018

나는 왜 티어가르텐이 좋았나

가는 길 까지 좋은 곳이 진짜 갈만한 곳이다.  

Info.
티어가르텐(Tiergarten)은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베를린의 도시공원이다. 과거 왕의 사냥터였던 공간이 이제는 시민들의 휴식 여가공간이 된 것이다. 베를린 도심부인 미떼 지구에 속하며, 독일 의회와 연방 정부 건물 등 공공기관과 브란덴부르크문과 운터 덴 린덴, 유대인 메모리얼 파크 등 역사적 공간, 콘서트홀과 박물관 등 문화공간, 상업 오피스, 벨부 주거지역까지 다양한 도시의 주요 기능들이 티어가르텐 공원 주변으로 입지 해 있다. 번잡한 도시 공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자연에 둘러싸여 도시와 단절된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그냥 살아보기'를 위해 체류했던 베를린. 아침을 먹고 청소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더 이상 할 일이 없어졌을 때 종종 '티어가르텐'으로 향했다. 바깥 날씨를 확인한 뒤, 샌드위치를 싸서 후다닥 자전거를 타고 출발했던 그곳. 몇 번을 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자주 갔던 것 같다. 아마도 티어가르텐이라는 공원에서의 경험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서울에서도 충분히 숲에 온 듯 녹음에 둘러싸여 고요함을 느낄 수 있는 공원이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 때문에 티어가르텐이 특별히 좋았던 걸까?



집에서 공원까지
그 여정 전체가 좋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공원뿐 아니라 공원으로 가는 길, 그 경험을 좋아했던 것이다. 자전거라는 교통수단을 이용해서 빠르고 편하게 도착할 수 있다. 입지 덕분에 가는 길에 다양한 도시의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시끌벅적한 도시공간에서 길 하나만 건너면 깊은 숲 속 고요함을 만날 수 있기에, 도시의 활력과 고요함을 더욱 극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동네에서 티어가르텐(전승탑)까지 가는 자전거길 (출처: Google map) /  feat. 도시에 녹지 참 많다


그 여정은 집에서 나와 공용 자전거차고에서 자전거를 꺼내면서부터 시작된다.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25분만 올라가면 베를린을 대표하는 도시공원 티어가르텐에 도착할 수 있다.


#1. 동네길에서 삭막한 길로

집 앞에서 자전거에 올라타 출발한다. 큰 대로로 나가 자전거도로에 진입해서 북쪽으로 열심히 페달을 밟는다. 1층은 상점이고 위층부터는 주거인 건물들이 주변에 보인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서 자전거를 타는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특히 오전 일찍 출발할 때면, 통근/통학하는 자전거 무리에 합류하게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자전거를 탄게 아니라, 마치 자동차 운전자가 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올라갈수록 거리는 점점 삭막하고 다소 황량해지기 시작한다. 자동차 전용 지하도로도 나타나고 확실히 도로가 넓어진다. 중간중간 육교도 있다. 이 일대 도시경관은 삭막하고 건조하고, 심지어 못생긴 곳도 많다.


#2. 베를린의 명품 쇼핑가, 쿠담 거리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전거 전용도로가 사라지고, 운전을 조심해야 하는 때가 된다. 대형상점들이 보인다. 버스와 자동차도 많아지고 사람들도 많아진다. 쿠담 거리에 들어선 것이다. 쿠담 거리는 과거 왕궁과 왕의 사냥터(티어가르텐)를 연결하던 대로였고, 현재는 명품거리, 쇼핑거리로 유명하여 관광명소가 되었다. 확연한 도심의 활력을 느끼며 쿠담 거리를 건넌다.


#3. 교통 중심지 ZOO역

그다음에는 동물원 역(ZOO역)이 나타난다.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 교외 도시를 연결하는 버스나 지역 열차 등의 정거장으로, 언제나 사람들로 붐빈다. 동네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대도시만의 특유의 혼잡함을 느낄 수 있어서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어딘가 조금 멀리 갈 일이 생기면 항상 찾는 곳이다. 사람들과 자동차, 버스들을 헤치고 동물원 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비로소 초록색 풍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보니, 오는 길의 사진이 정말 한 장도 없다 ㅠㅠ )



#4. 도착! 그리고 고요함

약간의 오르막을 올라가 다리를 한번 건너고 나면 이제 공원의 서남부에 도착한다. 숲길로 들어가 나무로 우거진, 비어있는 벤치를 찾아 앉는다. 자전거를 세워놓고 벤치에 눕는다. 방금 전까지 인파와 자동차들로 둘러싸여 시끄러웠는데, 공원으로 들어오면 갑자기 주변이 온통 고요해진다. 초록색으로 둘러싸여 한숨 들이쉬고 나면 편안해진다. 한참 동안 멍하니 넋 놓고 앉아 있다가, 눈이 초록색에 적응을 좀 하면, 집에서 싸온 샌드위치를 꺼내 먹으면서 가져온 책을 읽는다.


(*공원에 도착해서야 사진을 좀 찍었다.)


동물원을 지나 다리를 건너, 티어가르텐에 들어가는 진입구
잔디와 나무로 채워진 녹색의 빛나는 공간



#5. 구석구석 다니기

티어가르텐은 굉장히 넓다. 배를 채웠으니 슬슬 공원을 누벼보러 출발한다. 자전거를 타고 숲 속을 달리면 마치 교외 어느 시골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든다. 달리다 보면 다시 도시영역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전승탑, 브란덴부르크문, 유대인 메모리얼 파크 등의 주요 관광지점을 볼 수 있다. 공원의 영역과 도시의 영역은 가로로 경계 지어 있다. 공원과 도시 사이에 놓인 가로는 그 둘을 구분 짓기도 하고, 연결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면 나의 티어가르텐 외출은 끝난다. 이제 집으로 다시 돌아간다.


티어가르텐 중심 로터리의 전승탑, 관광객들로 붐빈다.


티어가르텐 동측에 인접한 유태인 메모리얼파크,  티어가르텐공원의 나무들이 배경으로 보인다.


티어가르텐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분데스스트라쎄, 멀리 브란덴부르크문과 TV타워가 보인다.






나는 공원까지 자전거를 타고 오며 바람과 공기를 느끼고, 도시를 구경한 것부터, 공원에 도착하여 마치 교외 어느 숲에 온 것 같은 이 순간까지의 총체적 경험이 좋았다. 그리고 "오는 길"이 짜증스럽고 번잡스러웠다면 이렇게 기분이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살아온 곳이 그곳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서울의 상황이 떠올랐다. 서울 집에서 한강공원이 거리상은 먼 거리가 아니었지만, 가는 길은 정말 고난의 연속이었다. 원칙상 차도에서 달려야 하지만 위협적인 자동차의 눈치를 보느라 불안하다. 자동차가 너무 많을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잠시 보도로 올라가는데, 보도에서도 편하지 않다. 주거지 이면도로를 지날 때에도 자동차에 밀려 편하게 나가기가 어렵다. 자전거도로가 확보된 동네로 진입하면 그나마 낫긴 하다. 하지만 자전거도로는 당연하다는 듯 끊어져 있거나 시설물에 가려져 있고, 차도와의 단차는 높아 엉덩이가 들썩거리기 일쑤다. 온갖 신경을 곤두세워야만 한강이라는 자전거의 천국에 도착할 수 있다. 아마도 한강공원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자전거도로가 연속된 곳이지 않을까. 한강에서 신나게 달리다가도 집에 돌아갈 생각을 하면 힘들어진다. 그 길을 다시 가야 하다니. 나에게 한강공원에서의 경험은 반쪽짜리 '좋음'이었다.


그리고 뒤이어, 용산공원이 떠올랐다. 산이 많은 서울은 평면지도로 보면 녹지공간이 풍부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차원적으로 보면 표시된 녹색은 대부분이 산이다. 이 경사진 지형은 일상적 여가휴식공간이 되기 어렵다. 오르막 내리막길의 산길에서는 머물러 쉬고, 여럿이서 모여 놀고, 지나거나 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일이 어렵다. 이런 서울의 상황에서, 용산 미군기지의 공원화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도시 한가운데 평지에 공원이 조성된다니. 아직 제대로 된 청사진이 없는 복잡한 상황이지만, 서울의 어엿한 도시공원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믿는다.


많은 전문가들과 시민들이 관심을 갖는 만큼 좋은 공원으로 만들어지길 바란다. 다만, 다음의 두 가지 차원의 노력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원 내부뿐 아니라,
- 공원과 도시의 경계/주변부 관리하기
- 보행, 자전거, 대중교통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여건 만들기


도심부에 위치한 대공원이 주는 최대 장점은, 혼잡한 도시에서 1분 만에 깊은 숲 속 고요함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누구나 원하는 도심의 편의성과 대자연의 쾌적함을 거의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때, 도시에서 자연으로, 자연에서 도시로 넘어가고 넘어오는 그 '전환의 과정'이 이루어지는 시퀀스의 디자인이 중요하다. 단적인 예로, 자전거를 타거나 보행로로 걸어 편하게 공원으로 진입하는 것과, 대형 주차장을 통과하여 공원에 진입하는 것은 매우 다르다.


베를린의 티어가르텐을 보며, 우리의 용산공원이 어떻게 접근해서 어떻게 진입하면 좋을지 생각하게 되었고, 바라게 되었다. 서울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사람으로서, 좋은 도시공원이 만들어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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