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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13. 2016

여유가 있어야 진짜 여행

프랑스에서의 한 달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날은 드디어 나다운 여행을 했다 싶은 날이었다.

프랑스 여행 한 달 중에 파리는 일주일이나 있었던 곳이었다. (물론, 베르사유와 지베르니를 빼면 5일이긴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파리는 내게 최악의 도시였다. 다른 도시들에서 느꼈던 분위기, 깨끗함, 아기자기함, 따뜻함... 이 가운데 단 한 가지도 파리에는 없었다. 낭만의 도시라는 파리가 호불호가 갈리는 도시란 건 알고 있었다. 사실 주변에 유럽여행을 한 많은 지인들 중, 파리가 좋다고 했던 사람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다들 이 도시의 더러움, 소매치기, 불친절함을 논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다녀오지 못 한 많은 사람들은 파리에 대한 로망이 있는 듯하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그리고 불호를 표명했던 나의 지인들과 나는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나 반전의 마지막날이 있었다. 그 날 이후 파리에 대한 불호는 나의 잘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리 여행의 가장 큰 문제는 빡빡한 일정이었다. 파리에서만 장기 체류하는 많은 사람들이 증명하듯 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수많은 볼거리와 느낄거리를 제공한다. 때문에 여행 가기 전, 다른 도시와는 달리 파리에서의 일정을 정말 열심히 짰다.(사실 다른 도시는 일정 따위 짜지 않았다. 파리만 세세한 코스까지 다 짰더랬다.) 평소 내 스타일과 매우 다른 시도였다. 뮤지엄 패스와 몽파르나스 타워 입장권, 바토무슈 티켓 등등을 한국에서 저렴한 가격에 미리 끊어가고 그 티켓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동선을 정했다. 그리고 나는 그야말로 관광객이 되었다. 뮤지엄 패스에 발이 묶인 날은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을 둘러보며 말 그대로 뽕을 뽑으려고 했다. 그리고 내 기억 속 루브르는 최악의 공간이 되었고 다음날 몸살이 났다. 미리 끊어간 바토무슈는 움직이는 시장일 뿐 강렬한 LED 조명 때문에 파리의 아름다운 야경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낭만을 느껴보겠다고 미드나잇 인 파리 ost를 들으며 발버둥을 쳐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리고 마지막 날, 비행기 일정이 다른 동생은 그 날 아침 출국했고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이 날은 어떤 계획도 없었던 날이었다. 무엇을 할지 그때 그때 정했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관광객들에겐 유명하지 않았던

전시회였다. 몽쥬 약국에서 지인들이 부탁한 것들을 사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지하철 역사 광고를 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작가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는 것만 보고 무작정 찾아갔던 그곳은 천국이었다. 좋아하는 인상주의 화가들의 풍경화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보기만 해도 마음이 일렁거리고 따뜻해지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정말 천천히, 그림 하나하나를 보고 느낀 점을 메모하고 마음에 담아왔다.

작품 사진은 촬영 금지였다. 방명록을 한글로 쓰고 전시관을 나섰다.

다음은 에펠탑. 파리에 있으면서 자주 보고 거의 매일 갔던 그곳이지만 잔디밭에 앉아서 찬찬히 들여다본 기억이 없어서 다시 찾았다.(잔디밭에 앉아 에펠탑을 만끽하는게 나의 로망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드로잉 노트에 아직 에펠탑이 없었다. 나는 blanc 맥주 한 캔을 들고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에펠탑을 그리기 시작했다.

날이 꾸물꾸물 거렸는데도(심지어 억수같이 소나기도 내림) 온전히 나만의 시간이라고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한 바탕 소나기를 잠시 피해 Trocadero역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나와, 센강변을 걸어보기로 했다.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 처럼 차분히 파리를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드디어 하게 된 것이다. 센 강을 따라 걸으니 배를 집처럼 꾸며 놓은 곳이 꽤 많았다. 알록달록 예쁜 그 공간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햇빛이 쨍하고 내비쳤다.



꾸물거리는 날씨와 함께 운치를 더했던 왼쪽의 세느 강

오른쪽에는 센 강이 있고, 왼쪽에는 에펠타워가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파리의 낭만이 아닌가 싶었다. 왜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오른쪽엔 에펠탑

저녁엔 뭐할까 하다가 급으로 만나게 된 동행 분과 식사를 했다. 이 분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아마 이 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파리의 아름다운 밤 풍경을 모른 채 집에 돌아가지 않았을까? 파리에서 7개월째 거주하면서 가이드북을 출판할 목적으로 여러 여행객들을 만나는 프리랜서분이셨다. 때문에 파리 곳곳을 아주 잘 알고 계셨다. 내가 파리에 대해 실망만이 가득했다고 하니까 너무나 안타까워하시며 관광지가 아닌 파리의 한 곳을 데려가 주셨다. 마지막 날, 마지막 밤, 분위기 넘치는 와인바에서 즐거운 대화와 함께 와인을 한 잔 하며 너무나도 완벽한 하루를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만남이었다.


이렇게 아쉬움으로 가득 찬 채 나의 프랑스 여행이 저물어 갔다. 생각해보면 아쉬움으로 가득 찰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실망의 도시가 아닌 아쉬움의 도시가 되었던 파리를 언젠가 꼭 다시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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