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소 Sep 27. 2016

우리만의 바다

충남 서천 갈목 마을

운 좋게 자차가 생긴 뒤로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고, 운전 실력이 조금 나아진 뒤로는 근교 여행에 도전 중이다. 공주 다음으로 어디를 갈까 하다가 동기 동생이 추천해준 조용한 해변 마을인, 갈목 마을에 가기로 했다. 충남 서천에 위치해 있는 갈목 마을은 너무 조용한 곳이기 때문에, "절대 기대는 금물"이라는 당부를 들었다. 때문에 우리는 아무도 없는 해변가에서 돗자리 하나 깔아 두고 노트북으로 영화나 보자는 심산으로 출발했다.

 

집집마다 있던, 경운기와 유사한 운송수단

한 시간 사십 분여 만에 도착한 갈목 마을. 그곳에서 모래사장을 찾기 어려웠다.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몰라서 마침 산책 중이시던 동네 할머니에게 여쭈었다. 할머니께서는 하얀색 큰 건물 근처로 가면 해변가가 있다고 했다. 내비게이션이 찾지 못하는 그곳은, 할머니 내비게이션을 따라가도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냥 해안 도로를 따라가 보기로 했다. 도로를 따라가자마자 등장한 곳은 바닷물이 들어와 호수를 만들어낸 곳이었다. 

우리들의 하롱베이

그곳은 마치 베트남의 절경 하롱베이를 연상시켰다. 우리는 우리 멋대로 이 곳을 하롱베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비웃을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우리가 도착한 때는 마침 밀물 때였기 때문에 바닷물이 찰랑찰랑 거릴 정도로 꽉 차 있었다. 썰물 때 "하롱베이"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하롱베이"를 뒤로 한 채 바다를 보겠다고 차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러나 이 날은 사진에서 보이다시피, 날이 매우 흐렸다. 햇살이 없는 바닷가는 강풍으로 인해 낭만이 아닌 추위만을 우리에게 가져다주었다. 그래도 우리는 어떻게든 낭만을 느껴보겠다며 강풍을 맞으며 바닷가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여기저기 쏘다닌 결과 우리에게 찾아온 것은 배고픔이었다. 원래의 우리의 계획은 돗자리를 깔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바다내음을 만끽하면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좁은 차안에서의 점심

강풍으로 인해 좁은 차 안에서 복닥거리면서 점심을 먹는 것이었다. 미리 준비해 간 이 마트 표 연어초밥과 사과가 우리의 점심이었다. 불편하지만 기억에 남는 식사였다. 불편해서 기억에 남았는지, 배가 고파서 기억에 남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배를 두둑이 채운 우리는 도대체 그 모래사장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분명 민박집 뒤쪽에 해변이 있다는 블로그 정보를 보았기 때문에 차를 한 곳에 주차하고 민박집 뒷골목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토록 찾아 헤맸던 모래사장과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하얀 조개껍질이 가득 퍼져 있는 곱디고운 모래사장을 발견하자마자, 다들 맨발로 그 감촉을 느끼고 싶었는지 어느새 다들 신발을 벗고 바다로 달려갔다. 

덩그러니

우리 밖에 없는 모래사장에서 바다는 우리만의 것인 느낌이 들었다. 그다지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이 예쁘고도 소담한 곳이 이 순간만큼은 나의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괜히 바닷물에 발을 담가보고 돗자리에 앉아서 시시각각 색이 변하는 하늘과 바다를 찍어대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돗자리에 누워 파도소리와 어우러진 음악을 음미하기도 하고, 멀리 해지는 모습을 그냥 바라만 보기도 했다. 

이곳에 있으니, 어디를 봐도 아름다웠고, 무엇을 들어도 듣기 좋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행복했다. 

때문에 정작 동기 동생이 들고 갔던 노트북에 내장되어 있는 영화는 꺼내보지도 못했다. 영화가 없이도 우린 충분히 영화 같은 풍경을 눈에 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해가 다 지고 나서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을 때까지 이 작은 마을의 해변을 떠나지 못하다가, 찰랑찰랑 차 있던 바닷물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를 만큼 빠지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