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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Oct 27. 2016

후들후들 Verdon 협곡 - 1

프랑스에서의 한 달

 깐느에서 차를 렌트한 다음 날, 우리는 차를 렌트한 목적을 위해 내달렸다. 그 목적은 바로

 Verdon 협곡


 이 곳을 처음 접하게 된 것은 대한항공의 광고를 본 뒤이다. 대한항공 게스트하우스 프랑스 시리즈 중, 무스티에 생트마리 편(https://www.youtube.com/watch?v=El-8e4Jx5w4)을 본 뒤, 이 곳은 꼭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프랑스 여행 준비와 동시에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좌절했다. 

 그곳은 뚜벅이인 나에게 범접할 수 없는 여행지였다. 반드시 렌트를 해야만 갈 수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운전을 시작한 지 겨우 3개월 차에 접어든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곳이었다. 빠른 포기와 동시에 그냥 언젠가는 가고 싶다는 의미에서 같이 갈 친구에게 이 곳을 보여주었다.(솔직히 친구가 운전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때문이라는 것이 더 맞겠다.) 역시나 친구도 이 곳을 정말 가고 싶어 했다. 작은 기대를 걸고 나는 친구에게, 혹시 운전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친구는 미국에서 유학 생활 중이라 "왠지" 운전을 잘 할 것만 같았다. 고민 끝에 친구는 한 번 렌트에도전해 보겠다고 했고, 그 덕분에 우리는 소망하던 곳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신이 났었는데...

그러나, 문제는 친구는 "아주 가끔" 미국에서 운전을 해봤다는 것이었다. 난 이 사실을 전혀 몰랐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구체적으로 묻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친구의 자신감에 순간 홀렸을지도 모르겠다.) 드넓은 미국 주차장에서 그녀는 전면 주차만 해보았다고 했다.(유럽에서 평행주차는 필수이다. 안하는 방법은 비싼 유료주차장에 주차하는 법이 있다. 그나마도 숙소나 목적지와 가까운 곳에 없는 경우가 많다. 덕분에 우리는 무거운 짐을 들고 걸어다니기도 했다.) 여행할 당시 나의 운전 경력은 6개월 차에 접어들었고, 내가 "친구보다" 운전을 더 잘한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차를 렌트하고 칸느에서 그 차를 몰고 니스로 향하는 순간에야 난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다음날 당장 우리는 verdon 협곡으로 가야 했다. '그녀에게 운전대를 맡겨야 하는가'는 '나와 그녀의 "목숨"을 그녀에게 맡겨야 하는가'의 문제로 확대됐다. 그만큼 verdon 협곡에서의 운전은 위험했다. 여행에서 "안전"을 가장 중시 여기는 나였기에, 나를 추가 운전자로 등록하든지(혹시 몰라서 국제면허증을 발급받아 가져갔었다.) 아니면 렌트 일정을 전부 포기할 것인지까지 생각했다. 이 두 가지 모두 우리의 여행 경비 손실을 의미했다. 이 고민을 했던 순간이 친구와의 여행에서 유일하게 정적이 휘돌던 순간이다. 그 만큼 우리 둘은 각자가 심각해져 고민에 빠졌다. 결국 나는 친구를 믿어보기로 했고, 친구 역시 자신을 믿어주길 바랐다. 그렇게 우리의 후들거리는 베르동 협곡 드라이브가 시작되었다.

베르동 협곡을 운전할 때의 협곡과 도로 사이에 있는 가드레일은 굉장히 낮은 편이었다. 지금 오른쪽 위에 보이는 사진에서 철조 울타리를 제거한 정도가 협곡에 있는 돌로 된 가드레일의 높이였다. 무시무시한 협곡의 높이를 고려하면 너무나도 낮아 보였다. 그러나 그나마도 협곡 전체에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 위의 사진처럼 Photo zone 이 될 만한 곳 (이런 곳엔 차를 잠시 세울 수 있도록 도로가 바깥쪽으로 더 확장되어 있다.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 철조 울타리까지 설치한 것처럼 보였다.)이나, 구불구불한 정도가 너무 심한 위험한 곳에나 설치되어 있었다. 게다가 전부 저런 돌로 되어있는 가드레일이 아니라

이처럼 나무로 된 가드레일도 많았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 그다지 안전해보이지 않는 가드레일이 설치된 협곡은 정말 후들후들 거리는 드라이브 코스였다. 초보였던 친구의 운전실력도 나를 후들거리게 했지만, 끝도 없이 올라가기만 했던 정말 깊고 깊은 협곡의 규모는 가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했다. 그런 협곡은 어느 순간이 되자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 풍경이 보여주었다. 자동차 차창 밖의 풍경이 푸른 하늘만 보일 정도로 꼭대기까지 올라온 것이다. 겁에 잔뜩 질린 상태라 사진이나 동영상에 담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일생에서 몇 번 볼 수 없는 절경을 본 것이었다.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친구가 찍은 협곡의 절경
협곡을 잇는 다리

 협곡을 오르는 내내 보조석 위에 있는 손잡이에서 손을 떼지 못했던 나는 어느 순간, 협곡 너머에 민트 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호수가 보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니 코발트블루처럼 보이기도 했다. Saint-croix 호수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보랏빛 라벤더 밭들이 펼쳐져 있었다. 노란빛 땅들도 함께 보이는 것을 보니, 우리의 생각보다 더 빨리 라벤더가 수확된 모양이었다. 

 흥분된 마음을 가지고 호수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섰다. 이렇게 깊은 산속에 저렇게 아름다운 빛깔을 가진 호수가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자연적으로 생트 크루아 호수의 색이 이런 빛을 띠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인공적으로 물을 가둬두는 바람에 이런 빛깔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한 정보는 아니다. 짙은 코발트블루처럼 보이던 라크 생트 크루아의 바로 코 앞에 오자 호수는 민트색이 되어 내게 다가왔다. 

반짝 거리고 일렁이는 민트빛 물결들이 나를 두근 거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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