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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Feb 08. 2017

색색이 물드는 여행

Slow trip to 제주

 2016년 11월 과 동기 동생들과 제주도로 3박 4일 여행을 떠났다. 말이 3박이지 사실 꽉 찬 2일을 놀고 돌아왔다. 부산을 왕복하는 비용보다 저렴한 가격에 저가 항공을 이용하려면, 남들이 원하지 않는 시간에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동기들과 종종 한국 여행을 해왔지만, 이번 제주 여행이 조금은 특별했던 이유는 그 전과는 다른 멤버들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늘 가던 사람이 아닌 새로운 사람과의 여행은 그만큼 설렘이 더해지는 기분이다.


이번 제주 여행은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를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제주의 자연, 다른 하나는 카페이다.  


1. 제주의 자연

[해안도로]

평대리는 내가 지난여름에도 친구들과 방문했던 곳이었다. 조용한 분위기의 카페들과 그 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바다만으로 마음이 충만해지는 곳이었다. 같은 곳을 또 간 이유는 그저 아이들과 그곳의 분위기를 공유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가지 못했던 전복집이 이 근처라 아이들과 번호표를 끊어놓고 해안도로를 드라이브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도로를 달리기만 할 뿐이었는데 다들 행복하다는 말의 연속이다. 11월이라 바람이 차긴 했지만 아직 푸른 잎들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색들의 조화가 더욱 도드라졌다.

일부는 갈색이 되어버린 풀들, 그리고 곳곳의 녹색의 잎들과 파란 바닷빛 그리고 까만 돌들. 운전하는 동안 눈앞에 펼쳐진 장면 모두 그림이 되었다.


[비자림]

평대리 근처에는 비자림이라는 아름다운 숲이 있다.

 이 곳에 있는 오래된 비자나무는 '할아버지 비자나무'라고 불린다고 했다. 그런데 이 팻말을 보자마자 동생들 왈, "아까 본 건 엄청 큰 나무는 할머니 비자나무구나." 너무도 자연스럽게 '할머니 비자나무'를 떠올린 동생들을 보며 이들에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정말 천직인가 싶었다. 내 또래 친구들과 왔다면 들을 수 없는 말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여행 내내 우리와 함께 했던 돼림이의 존재도 이들이 아직 얼마나 천진난만한지를 보여주는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번 여행의 마스코트, 돼림이

[다랑쉬 오름]

다랑쉬 오름을 오르려고 했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문 뒤였다. 캄캄한 그곳이라도 아이들은 둘러보고자 했다. 갈대밭을 보기 위해 이 근처까지 왔으니 그래도 한 번 구경이라도 하자는 심정이었다. 갈대밭은 발견하긴 했지만 캄캄해서 갈대밭이 사진에 담기지를 않았다. 그때 등장한 플래시가 팡팡 터지는 DSLR. 밤이든 낮이든 사진 찍을 때 플래시 터뜨리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 때문에 플래시를 터뜨리면서 사진을 찍는 동기 동생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사진이 너무 신비롭게 나오는 것이었다. 사진을 확인하고 다들 신이 나서 90년대를 연상시키는 모델 포즈를 하며 키득거리며 사진을 찍었다. 웃긴 사진이 많지만 그것들을 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 한 장을 올려본다.

우리과  예쁜  동생

 이 이후로는 아마도, 해가 저물 무렵엔 플래시를 터뜨리며 사진을 찍어보지 않을까 싶다.


[따라비 오름]

 우리 여행의 하이라이트. 제주의 갈대밭을 그렇게나 보고 싶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내 눈앞에 펼쳐진 갈대밭의 장관도 멋있었지만 오름 위에 올라서 바라보는 갈대밭은 또 다른 모습이었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갈대밭의 물결이 하얀 눈밭이 바다처럼 일렁이는 풍경 같았다.

갈대밭 너머로 보이는 파란 하늘 밑의 새 하얀 바람개비들(풍력발전소)도 풍광의 묘미를 더했다.


2. 그곳의 카페


[카페 바당 봉봉] 

 이곳에서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수다 떨고 사진을 찍었다. 누군가가 들으면 답답한 여행일지도 모르겠다. 이틀밖에 머물지 않는 곳에서 카페에 앉아 수다라니. 그렇지만 우리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했다. 어쩌면 바다라는 아름다운 풍경이 함께 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돌담이 예쁜 이 카페의 분위기 때문일 수도 있다.


[쓰담 뜨담]

다음날 [쓰담 뜨담]에서도 우린 똑같은 패턴으로 몇 시간 동안 그곳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수다를 떨고 사진을 찍었다.

청귤 에이드 너머로 보이는 박수기정(Photo by N)

대평리 [쓰담 뜨담]은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간, 멋진 절벽 박수기정도 함께 했다.

무엇보다 이 카페는 캘리그래피, 뜨개 공예품, 다양한 소품들이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다.

[카페 공작소]

둘째 날 아침에 찾은 이 곳은 카페 유리창과 바로 앞 길 건너에 설치된 소품을 이용해 사진 찍는 사람들로 붐빈다.

카페 유리창에 붙어있던 액자 틀과 캘리그라피
카페 유리창에 그려진 그림
길 건너에 자리하고 있던 예쁜 소품(강력한 바람에도 끄떡없음)

재미있는 것이 예쁜 곳에서 사진을 찍는 아이들의 태도가 나와는 참으로 달랐다. 그럴 때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원래 그랬나 싶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추워서 몇 장 찍고 차 안으로 잽싸게 들어왔다. 그러나 동생들은 강력한 바람에도 굴하지 않고 예쁜 배경에서 예쁜 사진을 남기고 싶다며 그 추위를 버티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혼자 왔다면 몇 장 찍고 포기하고 그냥 떠났을 나였다. 그러나 아이들 덕분에 이번에는 예쁜 바다와 함께 소품을 이용해 사진을 한 장 건졌다. 그래도 춥다고 먼저 차 안으로 들어온 뒤에 신이 나서 사진 찍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그곳에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었다.  

카페에서 산 엽서와 동화된 바다 풍경(photo by K)




  여행을 함께하는 사람에 따라 여행의 색이 달라지곤 한다. 저마다 다른 색을 가지고 있기에 내 여행도 다른 색깔로 물든다. 아이들 덕분에 찬바람을 맞아가며 사진을 찍어보았다. 플래시를 터뜨린 밤 풍경도 알 수 있었다. 할머니 비자나무도 알게 되었다. 숨이 찼지만 오름도 올랐다. 그리고 이 중 한 명은 이렇게 계획 없이 느릿느릿 여행하는 것이 처음인 친구였다. 이번 여행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한 친구이기도 했다. 나에게도 그 친구에게도 이번 여행은 새로운 색으로 가득 찬 여행이었다. 그 색깔들이 아주 마음에 든 나여서 그 친구가 '행복하다'는 말이 더 크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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