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더...
2025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빠는 떠났다.
이 날은 엄마의 생신 이틀 전이었다.
"아빠가 자기 잊지 말라고 엄마 생신 전에 가셨나 봐."
농담처럼 주고받는다.
"그리고 보면 가시려고 준비하신 것 같기도 해.
갑자기 요양원에 가게 된 것도 그렇고 곡기를 끊으신 것도 그렇고."
애써 아픔을 감추려 서로를 다독인다.
애써 슬픔을 감추려 아픔을 외면한다.
우리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장례식장 창밖으로 쏟아지는 눈보라에 내일 화장터 갈 일이 걱정이다.
아빠의 죽음 앞에서도 현실적인 걱정이 앞선다.
25일 저녁 5시 입관식이 치러진다.
아빠는 주무시고 계신 듯 얼굴이 깨끗하다.
흔들어 깨우면 벌떡 일어날 듯 한 모습에 아빠를 만지지 못했다.
오열하는 엄마와 오빠, 동생을 보면서 나는 마냥 서있었다.
뺨 위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감추듯 훔치면서...
속으로
'아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아빤 나를 원망할까? 이해할까? 미안할까? 미워할까? 사랑할까?
장례식장에 놓인 아빠의 영정 사진을 보며 동생과 이야기했었다.
"아빠와의 추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좋은 기억이 많지가 않네, 추억거리가 참 없다."
한 사람 가는 길이 참 간소하다.
이렇게 무엇하나 쥐고 가지고 못할 길 우린 왜 그리 아등바등 사는 걸까?
이틀간 장례를 치르고 아침 8시에 예약된 화장터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서두른다.
사는 동안 곱지 않았던 형제간이지만 아빠 가시는 길 함께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다.
아빠가 누워계시는 동안 가끔 찾아와 선심 베풀 듯 봉투하나 두고 가는 그들이 미웠다.
'아빠 아프시지 않을 때 좀 다니지. 이제야 와서 이게 뭐야. 아빠는 기억도 못하는데.'
미움과 상처로 서로 등 돌리고 안 보고 산지 여러 해였다.
가족 행사가 있을 때 잠깐씩 만나 아무 일 없다는 듯 인사하고 돌아서고는 했었다.
그런 그들을 미워했었다.
화장터로 향하는 버스 안은 조용하다.
눈이 얼어 미끄러운 길을 조심히 아빠가 계신 리무진을 따라 우리가 탄 버스가 올라간다.
화장터에 들어서니 돌아가신 분이 여럿인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다.
그리고 보니 어제 장례식장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요즘 화장터 자리가 안 나서 3일장이 아니라 4일장을 치른다고 했었다.
그리고 보면 이른 시간이나마 자리가 난 것이 다행이다.
한 시간 반 정도를 기다리니 한 사람이 작은 함으로 돌아왔다.
아빠는 엄마가 마련해 놓은 절에서 운영하는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스님의 염불과 함께 봉환의식을 한 후 네모 칸 안에 들어찬 차가운 함을 쓰다듬는다.
"아빠, 미안해. 또 올게. 자주 올게. 이제 아프지 마."
버스를 타고 되돌아 나오는 길
산을 찾은 사람들의 표정이 밝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푸른 하늘이 눈부시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는데 세상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찌 됐든 우리도 먹어야 하고 자야 하고 웃고 살아갈 것이다.
문득문득 떠오르는 추억거리를 안주 삼아서 그때 그랬지! 할 때가 오겠지.
알츠하이머 판정을 받은 지 8년이 넘었고 3년은 누워만 계셨던 아빠!
사춘기 때부터 아빠와 참 많이도 싸웠었다.
나뿐 아니라 오빠와 엄마와 동생까지 우리 가족은 돌아가면서 서로를 상처 냈었다.
그래서일까? 추억할만한 게 없는 줄 알았다.
나를 아프게만 했었다고 생각했었다.
20대 초반 수술을 앞둔 나의 손을 꼭 잡아주던 아빠가 있었다.
중학생 때 아빠의 오토바이 뒷자리에 타기 위해 일부러 늦게 일어나기도 했었다.
겨울이면 뒷산에서 주워온 은행을 화로에다 구워 주시기도 하셨다.
죽은 나무에서 느타리버섯을 채취해 와 맛있는 버섯탕을 끓여 주시기도 하셨다.
초등학생 때쯤으로 기억한다.
오빠와 내가 밤을 한 봉지 동네 어른들께 부업으로 받아왔었다.
얼마나 힘든 일인지도 모르고 돈을 벌겠다고 그걸 냉큼 받아온 우리에게 엄마, 아빠는
한마디도 않으시고 새벽녘까지 함께 밤 껍데기를 벗기셨다.
그렇게 한 망을 보내고 받은 돈이 500원이었다.
그 돈을 어떻게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시간이 싫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 납골당 아빠 자리에 붙일 사진을 찾기 위해 앨범을 뒤적였다.
그 속의 아빠는 참 젊었다.
흑백사진부터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사진들을 보다 보니
기억에는 없는 아빠와 물놀이 사진이 있다.
부러운 듯 동생이 이야기한다.
"언니랑 오빠는 아빠랑 물놀이도 했네."
"그러게 그랬었네."
우리는 멋들어지게 선글라스를 끼고 흐뭇하게 웃고 있는 아빠의 사진을 고른다.
아빠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그 삶이 참 안타깝다.
왜 더 즐겁게 살지 못하셨을까?
왜 더 서로를 아끼고 살지 못했을까?
왜 더 감사함을 표현하지 못했을까?
왜 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왜 더 안아주지 않았을까?
안타까움은 돌고돌아 나에게 아픔이 된다.
후회가 된다.
상처는 어느새 갈 곳 없이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