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안일했다.

그래, 그랬었다.

by 쏘일

너무 안일했다.

아프시다는 요양원의 전화에도

나와 엄마가 왔는데도 눈도 뜨지 않던 모습에도

식사를 많이 못하시고 있다는 요양원 요양보호사의 말씀에도

마음이 돌덩이처럼 무거울 뿐 계속 되뇌었었다.

'그렇다고 다시 모셔올 수도 없어.'


23일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후 여유롭게 아침을 보내는데

요양원 요양보호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르신 상태가 갑자기 너무 안 좋아져서 지금 병원이에요. 전해질이랑 혈액 수치가

많이 심각하다고 입원해야 할 듯한데 보호자분이 와주셔야겠어요."

"지금 어디 병원이죠? 바로 갈게요."

부랴부랴 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병실에 누워계신 아빠는 몇 일사이 그렇지 않아도 마른 몸이 더 삐쩍 말라 보인다.

움푹 들어간 볼을 보며 아빠를 불러봐도 눈도 뜨지 않으신다.

응급실 간호사의 설명을 듣고 원무과에서 입원수속을 밟고 응급실로 돌아오니

아빠에게 코를 통해 기관 내 삽관을 시도하고 있다.

요양원에서 오신 분들의 이야기로는 며칠 동안 아빠가 음식을 거의 드시지 않으셨다 한다.

며칠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서일까 기관 내 삽입을 하다가 다시 빼기를 간호사가 반복한다.

줄이 들어갔다가 나올 때마다 괴로워하는 아빠의 표정이 보기에 힘겹다.

네 번째 삽관을 빼내는 간호사에게 조심히 묻는다.

"잘 안 들어가나요?"

"네, 안에 뭐가 걸리는지 자꾸 끝이 휘어지네요."

하며 옆에 있는 간호사에게 다시 새로운 삽관 재료를 챙겨 오라고 한다.

계속 보고 있기 괴롭기만 해서 우선 동생과 응급실 밖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오래지 않아 보호자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우선 중환자실로 옮겨야 한다고 따라오라며 아빠가 누워있는 이동용 침대를 엘리베이터에 싣는다.

아빠를 보니 삽관할 때보다 숨 쉬는 게 편안해 보인다.

어느새 아빠의 팔에는 영양제와 수액 등이 꽂혀 있다.

아빠를 중환자실로 들여보내고 필요한 물품들을 구입해 들여보냈다.

중환자실은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다는 얘기에 병원을 돌아 나왔다.

"오늘 엄마를 안 모시고 오길 잘했다. 아빠 삽관할 때 봤으면 엄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서로 이야기하며 집으로 향했다.


아빠의 입원은 어느새 네 번째였다.

처음 독감예방접종을 하신 후 정신을 놓고 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2주를 계셨다.

하루에 한 번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볼 수 있었던 아빠는 눈을 맞추지 못하고 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눈을 꼭 감고 계신 아빠를 보고 혼자 중얼거리다 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눈을 뜨고 계셨다.

그렇게 2주가 지나 여러 수치들이 정상을 가리킬 때 아빠는 퇴원을 했고

2주간의 병원 생활로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욕창을 얻었었다.

집에 간호조무사가 매일같이 와서 욕창 치료를 하고

깔끔한 엄마의 노력으로 아빠는 조금씩 기력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 걸을 수가 없었다.

4등급 판정을 받고 주간보호센터를 다니시던 아빠는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지냈고

2등급에서 결국엔 1등급 판정을 받았다.

몇 번의 요양보호사가 바뀌고 엄마의 케어가 본인만의 스타일이 생기면서

아빠는 얼굴이 피고 좋아졌지만 엄마의 어깨와 무릎은 고장이 나기 시작했다.

자식들의 적극적인 권유로 엄마는 어렵게 아빠를 요양병원에 입원시킬 수 있었다.

그런데 입원 3일 만에 또 일이 났다.

심박수가 높아서 중대형 병원으로 검사를 나왔다.

병원에서는 아빠의 염증 수치가 높다고 입원을 권했다.

입원 한 아빠의 입 안에는 밥풀이 가득 들어 있었다.

물 도 한 모금 제대로 안 줬나 보다며 엄마는 남의 손에 맡긴 것을 후회했다.

그렇게 아빠는 치료 후 다시 집으로 모셔오게 되었다.

아빠의 상태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조금씩 안 좋아졌다.

신장 쪽이 안 좋아서 열이 오르거나 소변색이 이상해질 땐 밤새 엄마가 잠 못 주무시고 지켰다.

어느 날은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 또 병원입원을 했다.

그렇게 치료를 받고 다시 집에 오 시고를 반복했다.

어느새 아빠를 모신 지 3년이 넘어섰다.

78. 아빠의 나이 80세까지는 모신다던 엄마에게 나는 적극적으로 요양원을 권했다.

기억을 잃어가는 아빠에게

불편하고 아플 때마다 툭툭 튀어나오는 욕이 듣기 싫었다.

욕 좀 그만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잠을 잘 못 주무시고 쇠약해지는 엄마를 보며

아빠가 빨리 돌아가시길 속으로 빌 때도 있었다.

그래, 그랬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다음날 오빠와 엄마가 면회시간에 맞춰 병실을 찾았다.

아빠는 여전히 아무 미동도 없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오늘, 내일 돌아가실 듯하다고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단다.

30분 면회시간을 넘기고 엄마를 병원에서 가까운 우리 집에 내려주고 오빠는 근무를 가기로 했다.

오전 11시가 넘는 시간 모두 끼니를 때우지 못해 우선 밥을 먹고 어떻게 할지 생각하기로 했다.

식당을 가기 위해 차에 시동을 걸로 5분도 채 되지 않아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000 환자분 이제 얼마 남지 않으신 듯해요. 수치가 이렇게 떨어지면 곧 돌아가시더라고요.

빨리 와주세요."

급히 차를 돌려 병원에 도착하니

"000 님 오후 1시 32분 임종하셨습니다." 한다.

우리 도착시간은 1시 38분이었다. 그렇게 아빠가 떠났다.

우리에게 어떤 인사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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